암을 치료하기 위해 항암치료를 받지만
그것의 부작용과 또 싸워야 한다라는 사실이
가혹하고 아이러니하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부작용 때문에 무섭다며
받기 싫다는 엄마를 꾸역꾸역 병원 문 앞까지
데려놓는 것이 과연 올해 가장 잘한 일 중 하나일까?
기억력이나 움직임 등이
적어도 두 단계정도 퇴보한 상태의 엄마는
가끔 생뚱맞은 소리로 날 웃기지만
폐부를 찌르는 말 또한 까먹지 않으신다.
내가 얼마나 살 수 있다고 핸드폰을 바꾸니?
같이 사는 것이 둘한테 어떤 이득이 있을까?
하루를 돌아다니면 하루를 쉬어야 하는
징검다리형 인간이 되어버린 엄마는
아직도 평소에 좋아하시던 영화와 빙수를
포기하지 못하시고 기어코 하루를 쏟아부으신다.
대머리를 감추려 두건을 쓰시고 부지런히
어디선가 영화를 보고 오셨다고 했다.
시장에서 7천 원짜리 동태찌개를,
입가심으로 3천 원짜리 빙수를 드시고
세상 만족한 목소리로 영화에 대한 평을
수화기 너머로 쏟아내신다.
때로는 느리게, 조금 더 느리게.
누워있던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을 기세로.
다만 나만 느낄 수 있게 엄마의 목소리는
다른 때에 비해 유독 힘이 없다.
'엄마, 열심히 살아볼게'
라는 뜬금없는 문자메세지.
살아본다 라는 말은 금방이라도
포기할 수도 있는 것처럼 들려온다.
생각만으로도 올해 추석은 작년 추석만큼
나에게는 쉽지 않을 날이 될 것 같다.
벌써부터 달력 속 빨간색만큼
두 눈이 충혈되고 그저 잊기위해
책상 위 안약을 퍼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