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활동가의 대중파워 형성기
앞선 글에서 크게 2가지 주제를 다루었다. 하나는 대중파워를 만들어 가는 주체인 ‘자원활동가’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중파워를 형성하기 위한 ‘디지털 전략’에 대한 것이다.
이제 새로운 챕터의 글을 통해, 대중파워를 형성해 나간 오프라인 캠페인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2021년 광진구에서 진행한 주민참여조례의 대표청구인으로 활동하여 90일 간 주민 6천 여명의 청원을 달성하였다. 이를 위해 전체적인 기획부터 자료 및 현황조사, 학습과 자문, 연대 협력, 주민 간담회, 행정 프로세스, 홍보전략, 자원활동가 시스템 운영, 디지털 기술의 활용, 캠페인 운영 등 다양한 업무를 총괄하였다.
비단 NGO(비영리)의 프로젝트가 아니더라도 다수의 사람들을 모아 내거나 설득해야 하는 과업을 앞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참고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021년 봄, 일본 스가 내각이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기로 결정했다.
일본 정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결정
日 후쿠시마 여전히 방사능 오염… 어린이·여성 위험"
日 후쿠시마 소아 갑상선암 67배… 아이들이 사라진 마을
“뉴스 보셨어요? 일본 올림픽 때도 그러더니 방사능 이슈는 잠잠하면 올라오네요”
“맞아요. 해결되지 않은 문제니까요. 그런데 이거 방출하면 우리도 영향을 받는 건가”
방사능 안전문제는 미래당에서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이슈였다. 2019년 일본에서 올림픽 준비에 한창일 때도 관련 이슈가 있었다. 우리는 대한체육회에 공문을 전달하고 일본 올림픽 준비위원회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시 일본 정부는 ‘부흥 올림픽’을 내걸고 있었는데 후쿠시마산 식재료로 선수단 식사를 제공하고, 후쿠시마 원전 근처에서 야구와 소프트볼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성화봉송의 출발도 후쿠시마 원전과 불과 20km 떨어진 축구경기장으로 결정을 하고 이 모든 사실을 내외부에 당당하게 홍보하고 있었다.
목적은 명확했다. ‘우리 이제 괜찮아, 후쿠시마 안전해’라는 메시지를 내고 싶었던 것이었다. 일본 정부는 올림픽을 계기로 자국 국민들과 전 세계에 이를 알리고자 했다. 하지만 후쿠시마 방사능 안전문제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은 일본 사람들을 포함하여 전 세계가 알고 있었다.
“이거 우리도 영향이 있어요. 오염수가 태평양을 건너 미국이나 남미 쪽에 영향을 주고 동해나 제주도로 돌아오는 시뮬레이션이 이미 진행되었더라고요”
“다른 무엇보다 나이가 어린아이들과 여성이 방사성 물질에 취약하다고 해요”
“그린피스 같은 환경단체들이 연구보고서도 내고 다른 나라 정부나 시민들과 연대해서 일본을 압박하고 있는데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요즘 오염수 방류한다고 하더니 MBC 나 KBS에서 다큐 프로그램을 계속 틀어주더라고요. 일본 시민들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는데, 그분들도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더라고요. 일본 내 반대 움직임도 상당한데 언론에서 전혀 다뤄 주질 않는다고 해요”
여러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음식을 어린아이들이 섭취하는 것이었다. 기사를 찾아보니 특히 태아와 영유아는 성인보다 방사능에 20배 이상 취약하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어 있었다. 나이가 어릴수록 치명적이라는 것인데, 몸에 들어간 방사성 물질이 어린아이들의 몸 안에서 사라지지 않고 평생에 걸쳐 나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었다.
미래당 활동가들은 대부분 20,30대였고 아이를 키우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모두들 관심이 많은 주제였기 때문에 저마다 할 이야기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근데 이 문제는 좀 국가적인 사안이잖아. 우리는 지역구 위원회고 이건 중앙당에서 다뤄야 할 문제 같아요”
“그렇죠, 정부에서 노력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게 막아진다고 막아지는 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어제 시사고발 프로그램 보니까 일본에서 수산물 수입하는데 구멍이 많더라고요”
이 문제는 이 정도로 마무리되는 듯했다.
“축하드립니다. 임신 5주 차입니다. 아기는 12월에 만날 수 있겠어요~”
2021년 4월, 나는 아내와 함께 산부인과에 진료를 받으러 갔고 우리 가족에게 새로운 친구가 찾아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사실 실감이 나질 않았다. 특별히 임신을 준비하고 계획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초음파 사진에 무슨 작은 점 같은 것이 보였다. 저 작은 점이 자라서 아이가 된다니..
방사성 물질이 태아와 어린아이들에게 가장 치명적이라는 뉴스가 떠올랐다.
나는 미래당 광진구 활동가들에게 ‘주민참여조례’의 추진을 제안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조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국회에서 만드는 것이 ‘법’이고 보다 작은 단위인 지방자치단체에서 만드는 것을 ‘조례’라고 부른다. 국회법은 국가를 두고 만들어지는 상위법이고 조례는 해당 자치단체에서 만들어 그곳에서만 적용되는 하위법이다. ‘광진구 자율방범대 지원 조례’, ‘광진구 장수축하금 지급 조례’ , ‘광진구 주차장 관리 조례’ 같이 보다 작은 단위의 문제를 다룬다.
주민참여조례란 주민이 직접 참여하여 우리 마을의 제도를 만드는 일이다. 주민의 참여와 자치를 촉진하기 위한 제도로써 주민투표제, 주민소환제와 함께 ‘자치 3법’ 또는 ‘주민참여 3법’이라 불린다. 국회의원, 시의원, 구의원이 발의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지역에서 일정 수 이상의 주민이 청원을 하면 의회에 발의가 되는 방식이다. 광진구에서 주민참여 조례를 추진할 경우, 당시 광진구 전체 구민의 2% 인 6150여 명의 청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주민참여조례가 떠오른 것은 구로구 김희서 의원과의 인연 덕분이었다. 2018년, 당내 활동가를 대상으로 진행한 워크숍에 의원님을 섭외한 적이 있었다. 김희서 의원은 구로구에서 ‘방사능 안전급식 조례’를 전국에서 최초로 지자체에 도입하였으며 이를 주민참여의 방식으로 성공시켰다. 조례가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들으며 놀랐던 기억이 난다.
‘수천 명의 주민참여를 통해 제도를 만들어내다니.. 우리도 주민참여조례를 추진해볼 수 있을까?’
구로구는 방사능 안전급식 조례 시행의 모범사례다. 안전검사가 의무화되어 있지 않은 어린이집과 관내 유치원, 초중고 전체를 대상으로 급식 식자재에 대한 방사능 정밀 검사를 시행하고 이를 구청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때문에 학부모들은 보다 안심하고 아이들에게 급식을 먹일 수 있어서 만족도가 매우 높다.
구로구 이후 서울 동대문구, 중구, 노원구, 서초구, 강남구 등 8개 구에, 울산과 천안, 광주, 강원도, 경남도 등 전국 14개 자치단체에 방사능 안전급식 조례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조례가 있다고 해서 모두 똑같이 모범적으로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조례는 만들어졌지만 예산도 편성하지 않고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은 것이다. 유행처럼 만들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깡통 조례’ 다. 이러한 사례는 김희서 의원이 주민참여조례를 통해 추진된 정책이 가지는 장점을 강조했던 포인트이기도 하다.
주민참여를 통해 만들어진 조례는 제대로 작동할 수밖에 없는 ‘황금 조례’ 다. 수천 명 이상의 주민들이 이 조례안의 취지에 공감하고 이를 추진할 것을 직접 청원을 했기 때문이다. 조례의 제정 이후에도 주민들의 관심도가 남 다르기에 실효적인 시행이 가능하다. 또한 선출직 정치인인 시장이나 구청장, 의원들 역시 주민들의 관심이 높은 제도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대중파워가 지속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2018년 주민참여조례 강의를 들으며 놀라워하던 내가 3년 후 이를 직접 추진하는 당사자가 될 줄이야, 그 당시에는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