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을 추억하는 주전부리
뻥튀기 아저씨가 왔다. 아저씨는 아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아저씨는 볕이 잘 드는 담벼락 옆에 가마니 거죽을 둘러 바람을 막고, 몸통이 올챙이처럼 볼록한 뻥튀기 기계를 돌렸다. 잘게 패어 놓은 나무토막이 자그마한 산을 이루어도 하루가 지나면 동이 났다.
뻥 아저씨는 기계 입을 열어 둥근 배 안에 곡식을 붓고 쇠꼬챙이로 단단히 입구를 조였다. 자리를 고정한 기계 아래쪽에는 장작개비를 넣은 화덕이 놓였다. 한 손으로는 기계를 돌리고 다른 손으로 나무토막을 넣어가며 불 조절을 하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왼손을 번쩍 들어 은빛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이제 튀밥이 다 되어가나 보다’ 굉음이 울리기 전에 뛰어야 했다. “걸음아 나 살려라.” 귀를 막고 겨우 몇 미터 달렸나 싶을 때 “뻥!” 소리가 들렸다.
알라딘의 요술 램프처럼 하얀 연기가 한 뭉텅이 하늘로 솟구쳤다. “우와!” 달리던 방향을 돌려 우르르 뻥튀기 기계 앞으로 몰려갔다. 철사로 얼기설기 엮어 튀밥을 받아내는 철망 망태기에서 튀어나온 뻥을 줍느라 땅바닥에 코를 박았다. 희한도 하지, 한 됫박 옥수수가 기계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는 한 자루가 되었다. 동화 속 램프의 요정 ‘지니’는 배불뚝이 뻥튀기 기계 속에도 살고 있었다.
사카린을 넣어 달달하고 파삭한 튀밥은 가을철부터 다문다문 입을 즐겁게 해주었다.
어머니가 오일장에 가서 튀겨오기도 했으나 동네에 뻥튀기 아저씨가 며칠씩 머무를 때는 설이 가까워져 올 즈음이다.
뻥 아저씨는 ‘피리 부는 아저씨’ 못지않게 동네 아이들을 끌어모았다. 아저씨는 뻥을 한 주먹씩 나눠주었다. 집에 가서 어머니한테 뻥을 튀겨달라 떼를 쓰라고 했다. 어머니는 못 이기는 척 두어 되 곡식을 자루에 담아주었다.
튀밥이 변신했다. 사랑채 가마솥에서 곤 고구마엿과 수수엿이 튀밥과 어우러져 조화를 부렸다. 참깨, 들깨도 한 다리 거들었다. 집안에 단내가 흘렀다. 설음식 준비하는 어머니는 힘이 들든 말든 먹을 게 많아서 마냥 좋았다. 할아버지, 할머니께 세배하러 오는 이웃들 다과상에 강정이 올랐다.
예부터 내려오는 일상생활 지침서인 『규합총서(閨閤叢書)』에 보면 강정에 대해 언급해 놓았다. “강정이 씹어 날림에 십 리를 놀래더라.” 찹쌀을 잘 일궈서 만든 강정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강정을 튀겼을 때 팽창되고 바싹 튀겨진 것이 좋은데 ‘속 빈 강정’일수록 높게 친다. 네모난 것은 ‘산자’, 누에고치 모양은 ‘견병(繭餠)’, 더 잘게 썰어 튀긴 것은 ‘빙사과’라 한다. 찹쌀을 반죽하여 말렸다가 만드는 게 원래 강정이지만 곡류를 엿에 버무린 것도 강정으로 칭한다.
엿물을 만들어 버무려 만든 것이 엿강정이다. 가정에서 쉽게 만들 수 있는 엿강정의 재료는 쌀, 콩, 깨 등 종류가 다양하다. 예전에는 명절에만 먹던 귀한 음식이었으나 요즘에는 워낙 먹을거리가 흔해서, 강정은 그야말로 설 추억을 대신하는 대표 음식이 되었다.
설이 가까워지면 입가심용으로라도 강정을 만든다. 강정도 시류에 편승하여 퓨전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과일과 채소로 정과를 만들어 모양을 내고, 색깔 있는 식재료 분말을 섞어 물을 들인다. 굳이 돈을 들여 재료를 장만하기보다 냉장고에 잠자고 있는 견과류와 유자청, 녹차 등을 사용하면 된다.
설맞이가 달달하다.
Tip: 엿강정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시럽이다. 설탕을 많이 넣으면 딱딱해지고, 물엿을 많이 넣으면 잘 굳지 않는다. 시럽 농도는 설탕 1C, 물엿 1C, 물 3T, 소금 약간 넣어 끓여서 사용한다. 쌀 튀밥 155g에 시럽 1/2C을 넣어 버무리면 알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