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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Sep 20. 2022

감기 예방에 좋은 ‘배숙’

Id H’ 음료

‘배 썩은 것은 딸 주고, 밤 썩은 것은 며느리 준다’라고 할 만큼 배는 좋은 과일이다. 배는 폐의 열을 내리고, 기관지의 진액 생성을 도와 기침, 감기, 천식을 낫게 한다고 ‘동의보감’에 기록되어 있다. ‘심본초강목’에도 배는 심장을 시원하게 하고, 폐 기능을 좋게 하며, 간 기능을 강화하여 숙취를 빨리 풀어준다고 한다.

과일을 손에 꼽으라면 배를 빼놓을 수 있으랴. 예를 갖추는 데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과일이 배이다. 조율이시, 즉 대추, 밤, 감과 함께 배가 제사상에 올라야 한다. 회갑연이나 아이 돌잔치, 고사나 상량 상차림에도 배는 앞줄에 자리한다. 제사상 차림은 집마다 전통이 있는데, 남이 와서 과일 순서를 들먹인다고 해서 ‘남의 제사에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는 속담이 유래할 정도이다.

배의 본초명은 ‘이(梨)’이다. 중국에서는 배가 몸에 이롭고 그 성질이 순조로워 이(利)의 의미를 붙여 이(梨)라고 불렀다. 과일 중에 으뜸이라 하여 과종(果宗)이라 하며, 맛이 젖 같아서 옥유(玉乳), 꿀 같다고 밀부(密父)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별을 뜻하는 ‘이(離)’와 발음이 같아 연인끼리는 배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학교인 ‘이화학당(梨花學堂)’에도 배꽃이 피었다. 학교를 설립한 미국인 선교사 메리 스크랜튼 부인의 공적을 치하하고 격려하는 뜻에서 고종황제와 명성황후는 교명을 지어주었다. 당시 학당 주변에 배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배꽃처럼 맑고 깨끗하고 아름다워지라는 뜻에서 ‘이화(梨花)’라고 하였다.

배의 성질은 달고 약간 시고 시원하다. 폐와 위로 귀경하고, 윤조와 청열 작용을 한다.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목소리가 잠길 때는 배즙을 마시면 좋다. 감기로 목이 아프거나 마른기침이 날 때, 목 안이 아프고 열이 있어 배즙마저 삼키기 어려울 때는 꿀을 타고 얼음을 넣어 차게 해서 마시면 좋다. 배는 진액을 더해 갈증을 풀어주고 폐를 촉촉하게 하며 담을 삭인다.


울산의 지인이 해마다 농사지은 배를 한 상자 보내준다. 배가 어찌나 실한지 크기가 사발만 하다. 냉장고에 두어 개 남은 배를 끄집어내어 배숙을 만든다. 배숙은 궁중요리 중 하나로 이숙(梨熟)이라고도 부르는데 ‘요리된 배’라는 뜻이다. 먼저 생강을 끓인 물에 후추 박은 배와 대추를 넣어 다시 끓인 후 꿀을 타서 먹는다. 후추와 꿀은 배의 서늘한 성질을 잡아주고 촉촉함과 단맛을 더해 준다. 배숙은 찬 기운이 엄습하는 계절에 유용한 우리나라 전통 화채 음료이다.

한때 ‘Id H’ 음료가 화자 된 적이 있었다. 외국인이 마트에 와서 Id H 음료를 달라고 하는데, 주인은 영어로 말하는 음료를 찾을 수가 없었다. 주인이 어리바리하여 보이자 외국인이 직접 음료를 들고 왔는데 ‘Id H’, 즉 ‘배’ 음료였다는 우스개 이야기이다.

‘배 먹고 이 닦기’하는 것도 좋으리라. 식사 후식으로 배를 먹으면 조금의 양치 효과가 있다. 배 먹으면서 이도 자연스레 닦이니 일거양득 하는 셈이 아닌가.


Tip: 배는 열을 내려준다.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은 생 배를 먹고, 몸이 찬 사람은 익혀서 먹는 게 좋다. 배를 익히면 성질이 평해지고, 오장의 음을 지양한다. 또한, 배는 모과나 유자와 함께 먹으면 궁합이 좋다. 기관지에 좋은 배와 모과, 비타민이 많은 유자를 같이 조리하면 겨울철 감기 예방에 도움을 준다. 불고기나 육회에 배를 섞어 먹으면 효소작용하여 소화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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