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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Oct 08. 2022

노란 소국(小菊) 빛깔을 닮은 ‘치자 밥’

갱년기 여성의 답답한 속을 풀어주는 '건강 밥'


가을 해가 짧다. 저녁 찬거리 시장을 봐온 두 개의 봉지를 들고 종종걸음을 하였다. 큰길 건너가 집인데 삼거리 길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신호등 있는 건널목을 건너려면 왼쪽 길을 한참 걸어서 돌아가야 하고, 오른쪽으로 가면 거리는 조금 가까운데 나즈막한 언덕 육교를 건너서 가야 한다.

무심코 하늘을 보았더니 저녁 햇살이 곱다. 발걸음은 언덕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길옆 숲에는 개망초가 드문드문 피어서 반긴다. 강아지풀도 여문 씨앗을 달았다. 그런데 저기, 철조망 사이로 노란 소국이 막 피어나기 시작한다. 산그늘에 실린 국화 향기가 코끝에 매달린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쳤다. 두어 가지 꺾어 들고는 두리번거렸다. 누가 본 건 아닐 테지. 얼른 비닐봉지에 담았다. 집에 오자마자 꽃부터 살폈다.


불현듯 국화빛깔을 저녁 밥상에 올리고 싶었다. 국화꽃을 혼자 즐기기엔 아까웠다. 꽃밥을 하자니 국화 꽃잎을 따야 한다. ‘그건 아니지’ 고개를 흔들었다. 아, 치자가 있었네~^^

치자열매를 물에 담갔다. 치자 물로 염색하고 전만 부치랴, 치자 물로 밥을 해도 별식이지 않은가. 불린 쌀을 솥에 안치고 치자 우린 물로 밥을 짓는다. 밥 짓는 방법은 평상시와 다를 게 없다.

동의보감에 ‘치자의 성질은 차고, 맛이 쓰며, 독은 없다. 주로 가슴과 대소장의 열, 위 속의 열로 속이 답답한 것을 낫게 하고 열독을 없앤다’라고 나와 있다. 치자는 불면증, 기관지 등 여러 가지에 사용된다. 그중에서도 가슴에 와닿는 것이 있으니 갱년기 여성의 답답한 속을 풀어준다는 것이다.

저녁밥상에 오롯이 가을을 불러앉혔다. 꽃 보며 꽃빛깔 닮은 밥, 노란 밥을 먹는다.  어느 여류 시인의 치자꽃 시를 웅얼거린다.


사랑하는 사람을 달래 보내고
돌아서 돌계단을 오르는 스님 눈가에
설운 눈물방울 쓸쓸히 피는 것을
종탑 뒤에 몰래 숨어 보고야 말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법당문 하나만 열어 놓고
기도하는 소리가 빗물에 우는 듯 들렸습니다.
밀어내던 가슴은 못이 되어 오히려
제 가슴을 아프게 뚫는 것인지
목탁소리만 저 홀로 바닥을 뒹굴다
끊어질 듯 이어지곤 하였습니다.
여자는 돌계단 밑 치자꽃 아래
한참을 앉았다 일어서더니
오늘따라 엷은 가랑비 듣는 소리와
짝을 찾는 쑥국새 울음소리 가득한 산길을
휘청이며 떠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멀어지는 여자의 젖은 어깨를 보며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인 줄 알 것 같았습니다.
한 번도 그 누구를 사랑한 적 없어서
한 번도 사랑 받지 못한 사람이야말로
가장 가난한 줄도 알 것 같았습니다.
떠난 사람보다 더 섧게만 보이는 잿빛 등도
저물도록 독경소리 그치지 않는 산중도 그만 싫어,
나는 괜시리 내가 버림받는 여자가 되어
버릴수록 더 깊어지는 산길에 하염없이 앉았습니다-치자꽃 설화/ 박규리


Tip:

치자는 성질이 찬 음식이라 혈압이 낮거나, 몸이 찬 사람은 많이 먹지 않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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