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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다연 Oct 30. 2022

03) Dolphinkick

"Dophinkick"은 물 속에서 양발을 모아 접영킥을 차는 것으로, 추진력을 받기 위한 동작이다.


얼핏 보면 "우와~"하는 감탄이 나올정도로 매우 아름다운 동작이지만, 강한 추진력을 얻기 위해선 힘의 강약조절이 무척 중요한 동작이다. 


멀리서 보면, 부러워보이는 삶이지만 그 안에서 그 삶을 살아가는 이는 때론 치열하게 때론 전략적으로 하루하루를 구성하고 있다. 



2022년 3월 15일, 김천전국수영대회 여자 일반부 자유형 50m 결선, 터치패드를 찍은 다음 습관적으로 고개를 들어 전광판을 쳐다본다. 내 이름이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2016년 MBC전국수영대회 이후 처음 보는 장면... 

믿기지 않았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 밖으로 나왔다.

경기장에 계신 많은 분들이 31살 노장 선수의 우승을 축하해주었다. 하지만 결과를 만끽하기도 전에 부리나케 숙소로 달려갔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원격 수업 강의 준비를 한다.

      

지난 겨울 내내 열심히 준비했고, 또 어제 김천실내수영장에서 워밍업을 마치고 돌아와 몇번을 들여다 본 수업 자료들을 소리 내어 읽고 또 읽어 본다. 혹시 놓친 것이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한다.


5시간의 체육사철학과 스포츠윤리학 강의가 끝난 뒤, 간단히 저녁 식사를 하고 다시 노트북을 켠다. 그리고 학과 자료를 검토하고, 학회에 투고하기 위해 써 온 논문을 읽으며, 문장을 다듬는다. 논문을 투고하고 시계를 보니, 밤 12시가 훌쩍 지났다. 이렇게 6년 만에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하루가 끝났다.



숙소 침대에 누워 오늘 받은 '깜짝 선물,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우승'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 날의 기록은 26초48, 내 최고 기록인 25초65에 1초 가까이 뒤쳐진 기록이었다.

만족스럽진 않지만, 시합 전 어느 정도 예상했던 기록에 가까웠다.


이번 김천전국수영대회는 2022년 시즌 첫 대회였다. 그래서인지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생각과 고민이 많았다.


수영을 처음 시작한 건 7살, 처음 전문선수로 등록한 건 11살

실업팀 선수생활 12년차, 현재 나이 31세...


은퇴를 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나이... 체력은 떨어지고, 예전에 다친 부상 부위는 여전히 내 맘처럼 잘 안 움직여주는 '한물간 노장선수', 대학 강의와 연구, 논문과 학교 행정 등으로 연습 시간조차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는 부족한 훈련량...


이 모든 것들을 생각하면 이제 그만 수영이라는 끈을 놓아야 하는 게 아닌지 고민했다.



"잘 생각해봐. 발레가 재밌었는지, 칭찬받는게 재밌었는지. 칭찬받는게 좋았다면 그만둬도 돼. 근데 발레가 좋았다면 다시 생각해.”

요즘 푹 빠져있는 김태리 배우의 "스물다섯, 스물하나"라는 드라마에 나온 대사.

TV로 이 장면을 보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영이 좋다. 수영으로 욕을 그렇게 많이 먹었는데도 여전히 수영이 좋다. 교수가 된 지금, 수영때문에 주위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과 오해를 받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수영이 좋다.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지금 내 인생에서 수영이 빠진다면 수업을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할까?', '논문을 더 많이 쓸 수 있을까? 연구 용역을 지금보다 더 많이 따낼 수 있을까?'

대답은 항상 '아니요'로 끝이 난다.

선수로서 터무니 없이 부족한 하루 1시간 정도의 훈련량. 취미로, 건강을 위해서 수영 강습을 듣거나 자유수영을 하시는 일반 분들과 비슷한 시간. 오랜 선수 생활을 해온 나에게 퇴근 이후 하루 1시간의 수영은 고된 훈련이라 할 수 없다. 오히려 바쁘고 지치기 쉬운 저의 일상에 에너지가 되어 주곤한다.

어쩌면 이 모든 말들이 한물간 노장선수의 욕심에서 비롯된 자기합리화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물러나야 할 때, 그만둬야 할 때를 모르는 지금 제 모습이 어쩌면 추해보일 수 있고, 어쩌면 미련해 보일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남들의 시선이 어떻든 나는 수영이 좋다. 그래서 매일 아침 6시에 학교로 출근해 저녁 6시에 퇴근하고, 곧바로 수영장을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다음 날 수업 준비와 논문 작성을 위해 날밤을 샌다. 좋아하는 수영을 하기 위해서...

      

오랜만에 따낸 금메달을 되새겨본다. 좋아하는 걸 놔버리지 않은 저에게 마치 하늘이 주신 ‘작은 선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오늘 하루는 이런 선물이 없었어도 충분히 행복했다. 하루 동안 하기로 계획한 모든 일을 했고, 무엇보다 좋아하는 수영을 마음껏 했으니까.


이런 삶을 누군가는 굉장히 부러워하고 동경하고 누군가는 시샘하고 질투한다. 어쩌면 막연히 좋아보이는 그 삶을 위해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약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단단하게 돌핀킥의 동작처럼 강약을 조절하며 우아한 동작을 선보이는 전략을 세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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