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ke Out”
“Brake Out”은 입수 후 수중에서 잠영을 한 뒤, 수면으로 올라오는 순간을 말하며, 물을 깨고 나온다고 하여 브레이크아웃으로 불린다.
고요하지만 추진력을 얻기 위해 분주한 물 속에서 총알처럼 물을 깨고 튀어나오는 그 순간.
우리는 티나지 않게, 남들은 모르게 내실을 다지다가 어느순간 그 포텐을 터뜨려야 하는 순간이 온다.
이러한 부분은 수영에서 “Brake Out”과 무척 닮았다.
내 나이 스물여섯, 첫 강의는 다행히 대학교 운동부 학생들이었다. 학부생이니 나이는 나보다 어렸고, 씨름부와 축구부 학생들로 내가 운동선배이니 더 없이 편하게 진행되었다. 순조롭게 진행된 나의 첫 강의는 자신감을 한껏 얻으며 마쳤고, 그 이후 배정된 강의는 운동부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였다. 나도 스물한 살 때부터 운동부지도자를 했지만, 보통의 지도자들은 30대에서 50대 사이가 보편적인 연령대여서 강의 배정 때부터 적잖이 긴장을 했다.
강의 당일, 역시나 누가 봐도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 앉아있었다.
그분들이 보는 나는 얼마나 어려보일까 순간 걱정이 조금 되었다.
의자 뒤로 잔뜩기대어 엉덩이를 앞으로 빼고 거의 눕는 식으로 앉아있는 선생님들도 몇 있었다.
그렇다고 쫄 수는 없었다. 수영대회에서 경기 입장 전 소집실에서 크고작은 신경전들이 늘 벌어지는데, 그 때 쫄면 게임은 시작도 전에 진게임이나 다름없다.
마치 그런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거침없이 강의를 시작했다.
나는 강의 시작에 앞서 내 소개를 할 때가 기분이 제일 좋다.
“안녕하세요, 오늘 강의를 맡은 스포츠윤리교육 강사 임다연입니다.”
라고 하면 어쩐지 뻘쭘한 박수소리들이 들려온다.
그리고 뒤이어 “저는 일곱 살 때 처음 운동을 시작했고, 현재까지도 운동선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면 관심없던 눈빛들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자신들과 상관없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하러 온사람인줄 알았는데...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니... 하고 관심을 두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 때 나는 한 문장의 질문을 늘 던진다.
“여기서 퀴즈, 그럼 제가 어떤 종목의 선수일까요?”
이 때부터 내 교육생들은 텐션이 한 껏 올라간다.
내가 제일 많이 들어본 종목은 “골프”였다. 그 이유는 셔츠나 블라우스를 입으면 강의도중 팔을 걷게 되는데, 그 때 드러난 팔이 검게 타서... 라고..
워낙 피부가 까무잡잡해서 야외에서 태우는 종목인줄 알았나보다.
그리고 “배드핀턴”이나 “테니스”, “리듬체조”나 “피겨”, “사격”이나 “양궁” 등이 나온다.
아, “역도”나 “복싱”, “다이빙”등이 나오기도한다.
물론 가끔 나를 알아봐주는 교육생들도 있다. 그래서 어느 교육장소에 가면, 그 질문을 하기도 전에 수영선수요! 하고 외친다.
그건 또 그나름대로 뿌듯함이 느껴진다.
무튼 내 아버지뻘 되는 사람들 앞에서 스포츠윤리교육을 한다는 것은 여간 쉬운일이 아니다.
결국 이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여러분, 나쁜짓하지말고 착하게사세요.”인데...
딸 뻘한테 이런 얘길듣는다고 과연 효과가 있을까?
이 날도 어김없이 자기소개에서 얼음장같던 분위기를 깨부쉈다.
그리고 최대한 정중하게, 진솔하게 하지만 단호하게 강의를 이어갔다.
내 강의 전략은 간단하다.
먼저 이들의 노력과 힘듦을 다독여준다. 즉, “저는 여러분들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어요.” 라는 메시지로 시작한다.
사실 스포츠 지도자, 스포츠 선수, 스포츠 학부모, 스포츠 심판 등 내가 주로 교육하는 사람들은 많은 고통을 감내하며 온 사람들임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어려운일이아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이들의 역할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한다. 일개 코치가 아니라 스포츠계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리고 내 제자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각인시켜준다. 늘 옆에 있을 땐 그 소중함을 모르듯 지도자는 선수를 위해 늘 희생하지만, 어느순간 서로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이 온다. 또한 스스로가 스포츠계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사람이지를 안다면 나같아도 착하게 행동하겠다.
마지막으로 “착하게 사세요”를 한 번에 말하지 않는다.
마지막 ppt 장에 이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앞에 30개의 ppt장을 복선으로 깔아둔다.
결국, 내가 왜 착하게 살아야하는지 어떻게 착하게 살아야하는지를 이들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이정도면 아무리 딸 뻘이어도 본인들의 고정관념에 조금은 노크를 하지않을까 하는 자신감이 생긴다. 그래서 늘 강의가 끝나면 엄청나게 호의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질문이 쇄도한다.
결국, 우리가 누군가를 대할 때 그 사람에 대한 공감을 하고, 이들이 가진 영향력을 인정해주고, 때로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직설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상대방이 스스로 느낄 수 있게끔 조심조심히 노크를 한다면 우리사회의 인간관계도 더 윤리적으로 변화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뜻깊은 강의를 잘 전달하기 위해 수년간 남몰래 거울을 보고 연습해왔다.
초반의 어리숙한 티는 벗고, 이제는 정말 "스포츠윤리 전공자", "스포츠윤리 전문가"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Brake Out”을 타이밍 적절하게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