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에서 Turn은 반환점을 되돌아가는 동작으로, 턴에서 속도가 줄지 않아야 후반 레이스를 유리하게 이끌고 나아갈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반환점을 돌아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 순간이 그리고 그 반환점을 도는 위치가 나에 의한 것일수도, 타인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수영 동작에서 완벽한 턴을 구사해 후반 레이스에 역전을 노리는 것처럼 인생에서도 반환점을 도는 그 턴은 무척 중요하다.
내 전공은 스포츠윤리학이다. 스포츠윤리학이란, 스포츠에서 마땅히 있어야할 것과 행해야할 것, 그리고 바람직한 것을 제시하고 근거짓는 규범적인 학문이다. 쉽게 말하면 스포츠인이 행동하는데 요구되는 행동 원칙, 도덕적 표준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
지난 2015년, 스포츠윤리라는 학문을 만나게 되었다. 2015년은 나에게 있어 수영선수로서 경기력이 가장 전성기에 올랐던 해이자 어찌보면 가장 아프고 힘들었던, 악몽 같았던 한 해였다.
2015년은 '빛고을' 광주광역시에서 “2015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가 열린 해였다. 2년 간격으로 열리는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는 만 25세 이하라는 나이 제한 규정이 있기 때문에 당시 저에게 광주 대회는 인생의 마지막 하계유니버시아드 출전 기회였다.
그래서 꼭 출전하고 싶었다. 마지막 기회인만큼 국가대표로 선발되기 위해 정말 열심히 훈련하고 준비했다.
2015년 4월 16일부터 20일까지 울산에서 2015 동아수영대회 겸 국가대표선발전이 열렸다. 이 대회에서 광주 유니버시아드와 카잔 세계선수권에 출전할 국가대표가 결정되기 때문에 선수들에게 이 대회는 무척 중요한 대회였다.
그래서인지 여자 자유형 100m 결선 경기 스타트대에 올라서기 전, 저는 바짝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애써 침착하려고 노력해도 대회가 가진 중요성, 그리고 국가대표로 오직 1등만이 뽑힐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1등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 등으로 인해 긴장이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물에 뛰어드니 레이스는 기분좋게 나아갔고, 턴을 한 후 옆을 보았을 땐 다른 선수들이 아래에 있는것을 확인했다. 이후 후반 레이스는 무섭게 치고 나아갈 수 있었다.
터치 패드를 찍은 다음, 고개를 들어 전광판의 순위를 확인했다.
"56초44, 대회신기록"
내 이름이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그렇게 국가대표선발전에서 9년만에 대회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1위를 차지했다. 그토록 원했던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출전할 수 있게 됐다는 생각에 눈물이 날 만큼 기뻤다.
지도해주신 코치님과 응원해주신 팀 부모님들은 나보다 더 크게 기뻐해주셨다. 며칠 뒤, 당시 코치로 지도하고 있는 아이들과 학부모님들께서는 "국가대표 된 걸 축하한다"는 인사와 함께 "선생님 응원하려고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입장권을 샀다"는 말을 내게 건냈다.
선발전이 끝난 이후, 곧바로 발표되어야 할 국가대표 명단이 한 달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았다. 이상했다. 불안한 마음에 코치님께 수영연맹에 한번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지만 코치님께서는 "곧 나오겠지. 기다려봐~ 1등이 무슨 걱정이야?!"라는 말로 나를 달랬다.
하지만 불안은 이내 현실이 되었다. 국가대표 명단이 발표됐고, 내 이름은 없었다.
'이런 식이면 선수 생활을 해서 뭐하냐... 그만두자...'
2015년 6월, 나는 수영을 그만뒀습니다. 선수 생활을 접고 아이들을 지도하는 일과 다니던 대학원 석사 공부에만 매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제자 중에 한 아이가 묻는다.
"선생님~ 선생님이 1등했는데, 왜 국가대표가 아니에요?"
이 물음에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쓴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너무 속상했다. 아이들에겐 좋은 것만 보여줘도 모자랄 텐데, 나 때문에 아이들이 어른들의 추한 면을 본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아팠다.
당시 나는 석사과정을 다니면서 체육교육을 전공하고 있었다. 더 좋은 지도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날 이후, 그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질문, "스포츠의 가치는 공정인데, 이게 내가 평생을 해온 스포츠의 본모습인가?"에 대한 답을 찾고 싶어졌다. 답을 찾고, 그 답을 지도하는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전공을 체육교육에서 스포츠철학의 한 분과인 스포츠윤리로 바꾸었고, 더 깊은 공부를 하고자 했다.
2015년 9월, 스포츠윤리라는 학문을 알아가기 위해 에너지를 쏟고 있던 나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코치님이었다.
"잘 지내니?"
왜인지 모르지만 코치님의 이 한마디에 눈물이 쏟아졌다. 코치님은 말없이 울고만 있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사람들 때문에 네가 선수 생활 접고, 네 할 일을 못하게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이렇게 끝내는 건 정말 아니다. 선수로 다시 나와서 전국체전 준비해보자."
코치님께서는 생각해보고 답을 달라시며 전화를 끊었고, 그날 밤새 고민했다. 당시 연맹에 이의를 제기했다는 이유로 수영계 실세들로부터 '찍힌 애'였기 때문에 또 다른 상처를 입게 되진 않을까 겁이 났다.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렇게 겁을 내고 도망다녀야 하는지', 그저 억울하고 서러워 눈물이 그치질 않았던 밤이다.
용기를 내 다시 훈련장으로 나갔다. “선생님이 1등”이라던 아이들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비록 “선생님이 왜 국가대표가 못됐는지” 대답해 주진 못했지만, 그래도 “선생님이 1등”이라는 아이들의 말이 맞다는 걸 입증해 보이고 싶었다. 그러면 상처받은 내 마음도 조금은 치유될 것 같았다.
그 해 시즌 마지막 대회인 전국체전까지 남은 6주 동안 정말 이를 악물고 훈련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전국체전에서 다시 한번 1위를 기록하며 시상대 맨 위에 섰다. 이 날 우승으로 좀 더 밝아졌고, 선수로서 잃어버렸던 자신감도 많이 되찾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2015년은 분명 악몽같은 한 해였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나빴던 것만은 아니었다. 비록 몸과 마음은 많이 아프고 힘들었지만, 그 덕분에 스포츠윤리라는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현역 수영선수 생활을 계속 이어가며 동시에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스포츠윤리를 강의할 수 있는 것은 경험한 이 사건을 통해 스포츠가 지닌 공정의 가치 이외에도 스포츠의 본질에 대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해 오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에서뿐만 아니라, 각 종목 단체와 협회, 구단을 다니며 현장에 있는 스포츠인에게 스포츠윤리를 이야기하고, 공정과 옳고 그름에 대해 토론한다.
타의에 의한 반환점이라도 후반레이스를 더 잘 나아가기 위한 추전력을 얻는 턴이라면 전반레이스보다 더 나은 후반레이스가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