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eam line"은 "유선형 자세"라고 불리우며, 수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세로 물의 저항을 줄여 더 빨리 수영을 가능하게 하는 동작이다.
2016년 10월, 전국체전 여자 자유형 100m에서 개인 최고기록 55초91을 기록했다. 전국체전이 끝나고 개인적인 고민에 빠졌다. 당시 선수와 코치를 겸하고 있었던 나는 내가 지도하는 제자들에게 더 많은 것들을 가르쳐주고 싶었고, 선수로서도 발전하는 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 하지만 마음만 앞섰지, 스스로 느끼기에 선수로서도, 코치로서도 부족한 게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마음 한켠에는 늘 새로운 배움에 대한 갈증이 가득했다.
전국체전에서 자유형 100m 개인 최고기록을 작성하자 이런 갈증은 더 커졌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선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도전과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코치님께 DP팀의 제자들을 잠시 맡아주십사 부탁을 드리고 수영 선진국인 미국이나 호주로 3개월간의 전지훈련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인터넷으로 미국과 호주에 있는 전문 팀들을 검색해 팀에 합류해 훈련할 수 있는 곳들을 찾았다.
미국 서든 캘리포니아 대학, USC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그 이유는 당시 USC 수영팀을 이끌고 있던 데이브 살로(Dave Salo) 코치때문이었다. 운동생리학 박사 출신의 데이브 살로 코치는 USC 수영팀을 미국 NCAA 최강의 수영팀 중 하나로 만들며 올해의 수영코치 상을 휩쓴 미국 최고의 수영 지도자 중 한명이었으며, 2015년 FINA세계선수권 대회를 비롯해 미국 여자대표팀 감독을 여러 차례 역임했기 때문에 나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최고의 지도자로 생각했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였다. '이렇게 세계적인 지도자가 저를 받아줄 것인가?'였다.
USC 수영팀은 아무나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소 FINA B기록을 통과한 사람만이 USC 수영팀에 입단신청서를 보낼 수 있었다. 다행히도 그 당시엔 55초면 B기록이 아닌 A기록에 근접했기 때문에 나는 입단신청서를 낼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입단신청서와 함께 전국체전 당시 경기 영상들, 그리고 정성껏 써내려간 자기 소개서를 데이브 살로 코치에게 보냈다. 그리고 며칠을 마음 졸이며 답신을 기다렸다.
일주일쯤 지났을 무렵, 드디어 데이브 살로 코치로부터 답신이 왔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 잡고, 조심스럽게 마우스를 클릭했다.
"우리와 함께 해도 좋다. 함께 훈련할 날을 기다리겠다"
기뻐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던 나는 하루라도 더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그 길로 곧바로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다.
USC에서 보낸 3개월은 저의 30년 인생 가운데 가장 큰 힐링의 시간이었고,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매일 아침 8시 입수를 했고, 오전 10시에 퇴수, 오후 3시에 다시 입수, 오후 5시에 퇴수를 하는 날이 반복되었다. 비시즌이다 보니 수영장 레인을 미터가 아닌 야드에서 훈련했지만 그런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매일 반복되는 이런 똑같은 일상이 너무 행복하게만 느껴졌다.
내 몸 근육 하나 하나에 집중했고, 수영에만 집중했던,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라이언 록티, 코너드 와이어, 해일리 앤더슨, 블라드미어 모로조브 등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선수들과 매일 훈련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큰 기쁨이었다. 매일 함께 훈련하면서 훈련에 임하는 이들의 마인드, 행동 하나 하나를 유심히 보면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던 건 덤이었다.
데이브 살로 코치와의 훈련은 제가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살로 코치는 벽 한번을 차고 나갈 때, 돌핀 킥 한번을 찰 때, 스트록 한번을 밀 때, 터치패드를 찍을 때, 모든 순간을 집중하도록 나를 이끌어주었다.
데이브 살로 코치의 훈련 지도 방법 또한 무척 신선했다. 살로 코치는 당시 나의 약점이었던 스타트와 킥을 보완하기 위해 메디신볼을 들고 배영킥을 차게 했다. 또 스타트를 해서 바닥을 차고 난 뒤에 튀어올라 돌핀킥을 차게 했다. 한국에서는 단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훈련 방법이었다. 돌아가면 제자들에게도 적용해봐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열심히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시간들은 한층 더 나아진 수영으로 보답 받았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지난 3개월간 배우고 익힌 것들을 검증하는 차원에서 미국에서 열린 NCAA 대회에 출전했다. 자유형 50m 2위, 100m 1위라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안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내가 USC훈련을 통해 많은걸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때로는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저항이 되는 많은 것들을 털어버리고 저항을 최소화하는 Stream line을 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에는 그 많은 것들을 뒤로한채 하나에만 집중하는 것이 무모해보이고 두려운 마음이었지만, 저항을 줄인 탓에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