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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환자일 수 없었다

2025년 4월 10일 진료 기록

by Mia 이미아

나의 새벽, 외로운 마음이 먼저 깨어났다.


오전 9시, ○○○○ 병원 비뇨기과로 요역동학 검사를 받으러 갔다. 이전 초진은 무성의했다. 검사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어떤 불편이 따를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었다. 그저 예약 안내만 받은 채 돌아섰던 기억이 남아 있었다. 검사실에 들어서자 여자 간호사가 있었다. 그 순간, 마음이 조금 놓였다.


간호사는 절박뇨가 언제부터였는지, 얼마나 불편한지, 어떤 상황에서 심해지는지를 차분히 물었다. 의사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질문이었다. 3년째 계속된 불명열, 하루 3리터 이상의 수분 섭취. 내 이야기를 들은 간호사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기록이 안 되어 있나요?”

내가 물었다.

간호사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검사 의뢰에는 ‘척수낭종이 있어서 실금 증상이 있는지 확인해 달라’는 문장만 적혀 있어요.”


문진이 끝난 뒤, 간호사는 검사의 방법과 목적, 예상되는 불편함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제야 긴장이 조금 풀렸다.




증상을 묻고, 몸을 배려해 준 단 한 사람


그녀는 이 병원에서 처음으로 내 통증에 귀 기울여 준 사람이었다. 간호사는 허리와 다리 통증을 고려해 자세와 각도를 꼼꼼히 조정해 주었다. 신경외과 근무 경험이 있다는 그녀는 내 증상에 공감하며, “교수들은 자기 분야 외엔 잘 몰라요”라며 조용히 나를 위로했다.


검사 중 생리식염수 관이 새서 재시행하는 사고가 있었지만, 검사 시간이 길어지면서 대화를 더 나누게 되었다. 한 시간여의 검사를 내 몸은 견디기 힘들어했지만, 불편함보다는 처음으로 ‘진료실이 아닌 곳’에서 이해받았다는 안도감이 컸다.



신경외과 진료실, 말은 없고 시선은 남편에게


10시 50분, 신경외과 초진. 7명의 대기 끝에 들어간 진료실은 차가웠다. 의사는 MRI를 힐끗 보더니 말했다. “이건 신경 문제 아닐 겁니다. 척수낭종이 증상과 관련 있는 경우는 드물어요. 그래도 촬영한 지 좀 됐으니 다시 찍어보죠.”


내가 제출한 MRI는 고작 6개월 전, 지난해 10월 촬영한 것이었다. 나는 지난 1년간 지속된 통증과 배뇨·배변 문제를 설명하려 했지만, 의사는 내 말을 자르며 준비된 대사처럼 이어갔다. 설명은 허공에 흩어졌다. 나는 다시 한번, 내 말이 벽에 부딪히는 듯한 답답함을 온몸으로 느껴야 했다.



“장보기조차 버겁다”고 말하자, 그는 마지못해 촉진을 하더니 “다시 MRI 찍고 보죠.”라고 했다. MRI 비용은 95만 원이었다. 진료실에서는 검사 방법이나 필요성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었다. 내 통증 때문에 기계에 눕기 힘들면 수면마취가 필요하다는 말도, 여기에 상주하는 마취 전문의가 없어 외부 촬영이 필요하다는 말도 모두 간호사에게서 들었다. 외부 촬영 시 30만 원 판독비가 들 수 있다는 말은 설명이 아니라 경고처럼 들렸다.


진료 중, 의사는 내 뒤편의 남편을 자꾸 쳐다봤다. 내가 혼자였다면, 이 진료는 어떻게 끝났을까. 그동안의 경험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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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문제일 리 없다’는 말의 반복


오후에는 비뇨기과 검사 결과 확인 진료가 있었다. 의사는 모니터만 바라보다 말했다.
“본인 방광에는 문제가 없어.”

그렇다. 반말이었다. 설명도 없었다.


신경인성 여부를 묻자

“그건 내가 알 수 없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남편과 내가 번갈아 질문했지만, 끝내 명확한 답은 들을 수 없었다.


“그럼 진료의뢰서에 있던 검사는 한 건가요?”

내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답했다.
“네.”

진료의뢰서의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

'신경인성 방광 여부에 대한 평가'를 의뢰한다는 내용이었다.

의사의 말은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았다.



질문에는 침묵이 돌아왔고, 해석은 환자의 몫이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다섯 시간을 병원에 머물렀다. 한 시간 이상 앉아 있기도 힘든 몸은 이미 한계를 넘었다. 그 마지막, 의사의 무심한 한마디 앞에서 나는 더 이상 설명을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비뇨기과 검사비만 20만 원이었다. 그러나 내가 받은 건 ‘정상’이라는 수치와 “잘 모르겠다”는 말뿐이었다. 명확한 의뢰서에 대한 답변조차 없었다. 지난 1년, 다시 병원을 찾은 뒤로 단 한 번도 “그건 우리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라는 말을 듣지 못했다.


모르면 차라리 솔직히 인정하고, 다른 과나 병원을 추천해 줄 수도 있지 않은가. 왜 나의 증상은 늘 묵살당하는 걸까. 내가 무엇을 잘못한 걸까. 규격에 맞지 않는 증상이라는 이유로, 정해진 질문지에 답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나는 진료실 안에서 ‘환자’가 아닌, 한 인간으로도 인정받지 못했다.


아프지만 진단되지 않은 사람들, 고통은 분명한데 증거는 없는 사람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방치된다. ‘불편’이라는 단어는 내 고통을 담기에 너무 작고 가볍다.


침묵과 무표정한 시선이 오가는 진료실. 그 안에서 설명은 언제나 환자의 몫이었다. 그리고 결국, 그 해석 역시 내가 감당해야 했다. 고통은 끝까지 내 책임으로 남았다.



진료의뢰서 내용: 요추관내 지주막하 낭종 관찰되는 분으로 만성 절박뇨 증상이 있어 신경인성 방광 여부에 대한 평가 의뢰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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