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결혼이라는 걸 했다.
이상한 사람과.
지금생각해 보면,
모든 결혼의 공통점은,
이상한 사람이랑 한다는 점인 것 같다.
각설하고,
때는 신혼이라 남편의 보양을 위해
서툰 솜씨에 이것저것 해먹이던 때인데,
마침 시골에서 농사짓는 시부모님께서
보내주신(보내주신지 오오 오래된;;) 늙은 호박으로
호박죽과 전을 부쳐 먹이겠다는
일념으로
개수대에서 호박을 씻고 있던 중이었다.
(님아, 그 호박을 가르지 마오)
대충 씻고 칼로 반을 가르는 순간, (안돼하지 마)
...!!!
안에서 뭔가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얗고 통통한 속살을 드러낸 그것은,
구더기였다.
비위가 상하니 라바로 통칭한다.(근데 정말 닮았..)
정확히 말하자면 라바들이었다.
따뜻하고 먹을 거 많은 호박이라는 지상낙원에
똬리를 튼 지 오래된 것 같은 라바들은
얼마나 잘 먹고 지냈는지 애기 새끼손가락정도의 크기만큼 오동통하게 살이 쪄 있었다.
어두운 호박요람에서
갑자기 빛을 보게 된 라바들은
격렬하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타닷타닷'
바닥 라바, 싱크대 라바, 가스레인지 라바..
어디 할 것 없이 미친 듯이 튀어 올랐는데
그때 잠깐 걔네 표정을 본 것 같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 라바친구들이 내 눈높이까지 뛰어올랐기 때문이다.
이렇듯,
내겐 항상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보통 사람들이 굳이 겪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나는 겪으면서 살아간다.
거기엔 나의 약간.. 아니 좀 많이 모자람이
기여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번엔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방팔방 튀어 오르는 라바들과 눈을 마주치면서
머릿속으로 별의별 생각이 다 스쳐 지나갔다.
내가 뭐 많이 잘못해서 벌 받는 놀부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똥 누는 어린애 똥 닦아준 적은 있는데 주저앉힌 적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없는 거 같은데.. 내가 뭘 잘못했길래 호박을 갈랐는데 구더기가 쏟아져 나오는 건지.. 아니면 내가 호박마차를 잘 못 건드려 요정 아줌마한테 혼이 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정신을 수습하고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싹 쓸어서
종량제봉투에 넣어 이중으로 묶어
쓰레기장에 갖다가 버렸다.
지금도
한 번씩 그때의 악몽을 꾼다.
'타닷타닷'소리와 함께
라바 대숙청의 날에 살아남은
한 마리의 라바가
남편 키 정도로 자라서
내게 복수해 오는 꿈.
... 남편인가?
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