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25. 월요일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다산북스 출판]
수월한 침묵과 자멸적 용기
몸에 꽉 끼는 옷을 입고 사는 사람이 있다.
조금의 여유도 없는 이 옷을 벗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가 가진 유일한 옷이기 때문이다.
단출하지만 찬란하고 아름다운..!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아주 우연히,
벼랑 틈 사이로
한 어린아이가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의지한 채
매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상황을 보아하니
하루 이틀 매달려 있었던 것이 아닌 듯하다.
놀란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다급하게 사실을 알리지만,
옆 집 A도, 아랫집 B도
대수롭지 않은 듯, 하지만 목에 가시가 걸린 듯,
싱거운 이야기를 한다며
퉁박을 주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함부로 나서지 말라는
애정을 담은 훈계의 눈짓을 날리며.
(보지 말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곰곰이 생각한다.
팔을 뻗어 아이를 구하는 일은
아주 사소한 일이지만,
그에게는 중대한 일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팔을 뻗는 순간
전신을 감싸는 그 아름다운 옷이 터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꼬박 하루를 고민한다.
그리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세상의 단 한벌뿐인 그 옷을 입고,
벼랑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