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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영호 Apr 04. 2024

기차에서 생긴 일

2024년 4월 4일 목요일

런던 주변지역에서 런던으로 이동하는 대표적인 교통수단은 기차이다. 물론 자동차로 이동할 수도 있지만 교통체증으로 시간이 많이 걸리기에, 직장인들은 주로 기차를 이용한다. 문제는 기차의 노후화와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지연이나 운행 중단 등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자주 발생한다.


영국에서 두 번째로 맞이한 여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퇴근 후 워털루역(WATERLOO STATION)에서 집으로 가는 기차를 탄다. 스테이션 하나를 지나고 기차가 갑작스럽게 멈춰 선다.


기차가 역과 역 사이에 정차한 관계로 내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기차 내부는 말 그대로 찜통으로 변한다. 이 날의 기온은 이례적으로 30도가 넘은 상황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사람들이 책을 읽거나 핸드폰을 보고 있다. 상황에 비해 너무도 평온하다.


약 한 시간을 그 상태로 머물러 있다가 기차가 다시 운행을 재개한다.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짜증이 온몸을 감싼다. 너무 진을 뺀 관계로 역에서 집까지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픽업을 부탁한다.


영국에서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바람이 많이 불어도, 날이 너무 더워도, 기차는 정상적으로 운행되지 않는다. 때때로 기차에 몸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운행이 장시간 중단된다.


이런 영국의 교통 상황을 경험하던 중 미국으로 출장을 가게 된다. 휴스턴, 워싱턴 D.C., 뉴욕, 스탠퍼드 등 대도시들을 이동해야 하는 일정이었다. 이동수단으로 주로 비행기를 이용했지만, 워싱턴에서 뉴욕으로 이동할 때는 기차를 이용했다.


비즈니스 관계에 있는 현지인 두 명과 기차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는데 기차가 멈춰 선다. 안내방송이 나온다. 기차에 결함이 발생하여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 정차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다행히 에어컨이 작동되고 있어 내부가 덥지는 않았다. 그 상태로 10분 정도가 지나자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대화가 시작된다. 내용은 매우 가볍다. 내가 앉아있던 자리도 예외가 아니었다.


순식간에 파티 분위기가 되어버린 그런 느낌이었다. 30분 정도 지나자 기차의 승무원이 지나간다. 사람들은 승무원에게 컴플레인을 하거나 진행 상황을 묻지 않는다. 오히려 승무원에게 농담을 건넨다. 기차를 밀어야 하면 도와줄 테니 언제든지 얘기하라는 등의 농담이었다.


그렇게 한참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 사이에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시계를 보니 약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오히려 유쾌하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절대로 영국의 문화를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같은 상황 속에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뿐이다.


사람의 인생을 긴 여정으로 보고, 한번쯤 이런 측면에서 인생을 바라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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