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영호 Apr 07. 2024

영국의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2024년 4월 7일 토요일

영국 주재원 부임 직후 가족들과 살 집을 구하고, 인터넷과 케이블 TV 연결을 신청했다. 놀랍게도 설치하는데 거의 한 달이 걸렸다. 차사고로 운전석 쪽 문에 덴트가 생겼다. 보험사가 수리를 위해 차를 가져갔고, 다시 돌려받는 데 한 달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우리나라에서는 수일 내에 끝날 수 있는 일들이 영국에서는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되는 한국에서 살아온 나로서는 영국이라는 나라가 답답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지인들의 경우 이러 환경과 기다림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익숙해져 있었다.


기차가 연착되어 20-30분이 지연되어도 사람들은 플랫폼에서 차분히 기다린다. 기차가 한 시간을 넘게 정차하고 있어도 동요하지 않고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자기 할 일을 한다. 고속도로에 사고가 발생해 경찰이 전 차선을 차단한다. 사고 조사 및 처리를 위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 사이 차들이 쌓이고 쌓인다. 그러나 모두 차에서 조용히 기다린다.


아이들에게도 기다림에 대한 교육은 철저하다. 일상생활에 있어 아이들에게 기다리라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심지어 부모가 대화하고 있을 때 아이가 부모에게 말을 걸면, 대화 중이니 끝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느리게 흘러가는 모든 것들에 익숙해지기 시작한다. 처음에 답답하게 느껴졌던 것들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심리적으로 조금씩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다.


늘 조급하고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온 나에게 영국인들의 삶은 나의 삶에 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무언가에 휩쓸려 흘러가던 나에게 멈춰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객관적 시간은 공평하게 흐르고 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등장하는 시간의 상대성과 같이 시간의 흐름은 개인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음을 느낀다.


영국을 떠난 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영국인의 삶이 던진 그 질문은 늘 머릿속에 남아있다. 그리고 가끔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시간에 대한 개념과 자세가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닐지 생각해 본다.



이전 11화 영국은 매너의 나라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