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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너머 꿈

브런치 작가의 삶으로

by 박규리


38년 동안 나는 아이들과 울고 웃었다.


시골 학교의 작은 교실, 먼지 낀 창문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었지만 여전히 솜털이 일어날 정도로 3월은 추웠다. 선생님이 부르는 노래가 풍금 소리에 맞추어 내게 공기처럼 번져와 어린 내 가슴을 데우고 있었다. ' 발도 움직이고 손으로 누르면서 저렇게 멋진 소리를 내는구나!' '나도 언젠가 저렇게 노래하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어야지.' 풍금을 연주하며 노래를 가르쳐준 선생님의 모습은 어린 내게 큰 감동을 주었다. 학교에서 처음 배운 '우리들은 일 학년'과 '솜사탕' 노래가 내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만들었다. 이렇게 강한 선생님의 인상이 나에게 꿈을 갖게 했고 또 나를 움직이게 했다. 초등학교 1학년 가슴에서 피어난 이 꿈은 월출산 자락에 자리한 작은 산골 마을을 넘어 널리 퍼져 나갔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광주로, 서울로 유학을 거듭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어렵게 얻은 기회였기에, 꿈을 이루기 위해 내 딴에는 죽을 듯이 노력했다. 교사가 된 뒤에도 멈추지 않고 배웠다. 교과 수업만으로는 부족했다. 상담과 코칭, 코다이 음악교육, 회복적 생활교육까지 닥치는 대로 배우고 익혔다. 아이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가르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차츰 내 교실은 통제와 강압이 아닌 존중과 돌봄의 문화를 바탕으로 교육하는 공간이 되어갔다.

이렇듯 아이들을 존중과 돌봄의 방식으로 평화로운 학급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때다. 갑자기 빈맥이 찾아왔다. 엠블런스에 실려 가 병원에 입원했다. 그로 인해 병가를 냈고 아쉽게 미리 퇴직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몸을 돌보지 않아 무리였나 보다. 명예퇴직을 앞두고 아이들과 헤어지는 날 서클을 하기로 하였다. 모두들 둥그렇게 원으로 앉았다.

그리고 한 사람씩 돌아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님과 생활하며 좋았던 것, 아쉬웠던 것, 그리고 앞으로 더 노력해 볼 것이 무엇인지' 아이들은 차례대로 자신의 소중한 마음을 꺼내놓았다. 내가 내어놓은 이야기, 친구들의 이야기 등 서로의 진심 어린 이야기를 들으면서 더 경건해지고 진지해졌다. 손 편지를 써서 내놓은 친구도 있었다. 그날 아이들의 목소리와 눈빛은 오래도록 내 마음을 울렸다.


건강과 안부를 빌며 마무리 인사를 하고 교실을 나오는 순간 내 가슴이 미련으로 쿵 내려앉았다. 또 텅 비어버린 가슴을 바람이 후리고 지나갔다. 이렇게 아이들과 헤어지고 한동안 나를 추스르지 못했다. 건강도 건강이지만 38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온 전차가 한순간에 멈추고 말았으니 미련과 아쉬움, 그리고 슬픔이 한꺼번에 내게 덮쳐왔다.


텅 빈 그 자리를 채운 것은 글쓰기였다. 아이들과 함께 했던 순간, 즐거운 체육시간의 웃음소리, 과학실험 때 반짝이던 눈망울, 코다이 손기호로 노래하던 교실의 흥겨움, 매주 월요일 아침과 금요일 오후에 가진 성찰의 시간들을 <함께 쌓아 올린 행복>이란 이름의 전자책으로 기록하였다. 그 모든 기억을 글로 적어 나가며 마음이 차츰 단단해졌다. 글은 내 안의 빈자리를 토닥이고 채워주는 따뜻한 치유의 손 같았다. 문장을 쓰는 동안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었고 다시 살아갈 힘이 새싹처럼 조금씩 피어났다. 이 귀한 경험이 나를 작가의 길로 이끌었다.


은퇴 후에도 배움은 멈추지 않았다. 서예를 배우며 전서를 쓰고, 새로운 만남 속에서 다시 글감을 얻었다.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며 용기를 냈고, 마침내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다. 승인 메일을 받던 순간, 가슴이 또 한 번 두근거렸다. 분필 대신 펜을 든 또 다른 교실이 내 앞에 열린 것이다.


브런치에 내 글을 한편씩 올리기 시작했다. 은퇴를 하고 서예선생님을 만난 이야기도 글감이 되었다. 전서를 쓰며 알아간 중봉과 만호제력의 원리로 내 삶을 성찰했다. 뉴북스에서 도반들과 글 배움과 글 나눔을 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아티스트웨이를 만났다. 또 생전 생각해보지 못한 아티스트 데이트를 즐기면서 내가 얼마나 즐기지 못하는 삶을 살았는지 알게 되었다.


브런치에 글쓰기를 통해 나를 조금씩 알아 갔지만 브런치스토리를 통해 다른 작가와 소통하는 행운을 얻었다. 이렇게 많은 작가의 글을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까? 브런치라서 가능했다. 글바다에서 헤엄치며 다양한 작가의 글을 구독했다. 다름도 인정하고 잘 쓴 글에는 샘도 났다. 나도 잘 쓰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도 알게 되었다. 하나씩 쌓이는 글은 또 나에게 성취감을 주었고 나의 글을 응원하는 독자들을 통해 쓸 힘을 얻었다.


그랬다. 나는 한 번의 꿈을 다 살았다. 초등교사로서의 38년은 내게 큰 축복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에만 머물지 않았다. 이제는 꿈너머의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서예, 라인댄스, 요가, 요리, 영어*족부사 공부… 일상의 경험들이 하나씩 글이 되어 독자 앞에 놓일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뿌듯하고 바빠진다.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말을 걸던 그때처럼, 이제는 독자들에게 말을 건넨다. 이것이 내가 찾은 두 번째 교실, 그리고 꿈너머 꿈으로 당당히 걸어가는 작가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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