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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드리겠습니다라며, 왜 연락 안 해?

5일째 그 말에 붙잡힌 나를 위하여

by 메이다니

면접을 보고 나온 지 다섯째 날이다.

그날, 면접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내부 논의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소도 지었다.

“아, 네. 기다리겠습니다.”

참 잘도 말했다. 나도 그 말이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



‘연락드리겠습니다’는 사실상 종결어미다.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말들이 있다.

“밥 한번 먹자.” = 우리 둘 다 그럴 생각 없다.

“다음에 보자.” = 다음은 오지 않는다.

“연락드리겠습니다.” = 연락 안 한다. 못 한다도 아니고, 안 한다.


왜 그런 말을 할까? 왜 차라리 ‘이번에는 어렵겠습니다’라고 말하지 못할까?

아니다. 말할 수 있다. 다만, 말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왜냐고?

사람은 잔인한 말을 꺼리는 착한 겁쟁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면접관도 안다.

‘당신은 저희 회사가 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를 말로 하기엔 너무 불편하다는 걸.

그 말을 입에 담는 순간, 나는 나쁜 사람이 되고, 당신은 거절당한 사람이 되니까.

그러느니 차라리 ‘연락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고,

그냥...

사라진다.


이 얼마나 매끄럽고 비겁한 말인가.

답정너가 아니라 답회피충이다.




문제는 그 말을 계속 곱씹는 사람이다.


나다.

그 말을 다섯째 날까지 곱씹고 있는 사람.


첫날엔 희망이 있었다.

‘아직 내부 논의 중이겠지. 바쁠 수 있지.’

둘째 날엔 기도했다.

‘적어도 떨어졌다면 문자라도... 문자는 금방 보낼 수 있잖아...?’

셋째 날엔 자괴감이 왔다.

‘내가 뭘 잘못했나? 저 질문에 답을 너무 길게 했나?’

넷째 날엔 분노했다.

‘야. 연락드린다며. 나 지금 폰 밑에 깔려 죽겠다.’

다섯째 날엔 체념했다.

‘연락이 올 리 없지. 근데... 혹시 모르니까 진동 모드는 풀어놔야지.’


나는 알고 있다.

그들이 나를 뽑지 않으리라는 걸.

하지만 이상하게, ‘연락드리겠습니다’라는 말 한 마디가 나를 이토록 붙잡는다.


왜냐하면 그 말은 희망처럼 들렸으니까.

희망은 대체 왜 그렇게 사람을 붙드는 걸까?



연락주겠다던, 그 말의 속뜻은 대체 뭘까?


‘연락드리겠습니다’는 문자 그대로 보자면 중립적이다.

연락을 드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 하지만 해석은 다양하다.


1. 사회적 예의 버전

“지금 탈락이라고 말하긴 좀 미안하니까, 형식상 저렇게 말해놓자.”

→ 전형적인 사회적 가면. 너도 알고 나도 안다. 예의라는 탈락통보.


2. 희망 고문 버전

“우리 진짜 아직 결정 못했어. 가능성 있어. 근데 네가 그 2%인지 확신은 없어.”

→ 마치 짝사랑 상대가 “나는 네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라고 말해놓고 사라지는 거랑 비슷하다.

그 사람은 너에게 문을 열어둔 게 아니라, 그냥 닫는 소리를 하지 않은 것뿐이다.


3. 자기보호 버전

“네가 이 면접을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나를 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 그러니까 ‘연락드릴게요’라는 말로 나에 대한 악감정을 희석시키려는 방어적 언어.


4. 직장인의 회피 버전

“우린 시스템상 불합격 연락을 안 해. 어쩔 수 없어. 나도 월급쟁이야.”

→ 이건 슬프다. 진짜 ‘그 사람’은 그 말을 진심으로 하려고 했을지도 모르는데, 조직의 시스템이 그의 인간다움을 짓눌렀다.


결국 ‘연락드릴게요’는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모두를 위한 최선의 거짓말이다.

그러니까, 그 말이 더 무섭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기다린다.


‘연락 안 오면 탈락이라는 뜻이야.’

그걸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근데 왜 기다릴까?


사람이 원래 그렇게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기다림”은 인간의 가장 오래된 감정 중 하나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누군가의 반응을 기다리고,

말 한마디를 되새기며 ‘진짜 뜻’을 찾고.

애초에 인간은 신의 계시조차 기다리는 동물이다.

하물며 면접관의 연락쯤이야...



그래서 나는 다짐한다.


‘연락드릴게요’ 같은 말은 쓰지 않기로.


그냥 말하자.

“이번엔 어려울 것 같아요.

그래도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게 그렇게 어려운 말일까?


아마... 어렵긴 할 거다.

왜냐하면 나도 누군가에게 연락을 안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호의로 시작한 관계를 애매하게 끊어본 적 있다.

답장해야지 생각하다가 이틀 지나고, 그게 삼일이 되고, 그러다 아예 못 보낸 적도 있다.

그러니까, 나는 안다.

면접관의 말이 악의가 아니라는 것도.

그저 미루고, 무심해지고, 그러다 아예 없었던 일처럼 되어버린 다는 걸.



결국 ‘연락드리겠습니다’는 말,

그건 그냥 하나의 벽이다.


소통을 막는, 아주 공손하고 단단한 벽.

그 벽에 기대어 나는 오늘도 핸드폰을 뒤집어 놓는다.

전화가 와도 놀라지 않게,

전화가 안 와도 실망하지 않게.


다섯째 날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 말, 네 잘못 아냐. 그냥 너무 착하게 들은 거야.”


그리고 내일이 여섯째 날이라면,

조금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그 말을 웃으며 넘길 수 있기를 바란다.

‘연락드릴게요’는 끝이 아니라,

그냥 끝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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