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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원하는 카톡에만 답을 한다

읽씹, 안씹의 내용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

by 메이다니

처음엔 그냥 바쁜 줄 알았다.

퇴근하고 지친 몸을 눕힌 채, 나도 늦은 밤 간신히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은 좀 어땠어?"

답이 없었다.

그러고는 다음 날, 내 말엔 전혀 반응하지 않고 이렇게 답이 왔다.

"혹시 넷플릭스에서 '광장' 봤어? 재밌더라."

당황스럽진 않았다. 하지만 뭔가 찜찜했다.

내가 건넨 말은 허공에 흩어지고, 그녀가 던진 화제에만 빛이 닿는 느낌.

그때 느꼈다. 그녀는,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에만 답을 한다는 것을.



“응, 그건 몰랐어.”

사실 처음엔 그녀의 방식이 좋았다.

말을 걸면 금방 답했고, 유머에도 센스 있게 응수했다.

혼잣말 같은 내 넋두리에도 ‘ㅋㅋ’ 혹은 ‘아 그건 좀 그렇지’라며 반응해주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달라졌다.

무언가 나누고 싶어 마음을 내보이면, 그 말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다른 화제가 새로 뜨듯, 그녀의 톡은 전혀 다른 이야기로 이어졌다.

"나 요즘 회사에서 좀 힘들어."

→ "우리 예전에 갔던 식당 기억나?"

"어제 좀 기분 안 좋았어."

→ (읽씹)

"요즘 너는 어때?"

→ "오늘 하늘 완전 예쁘더라, 사진 보낼게."

그녀는 대화를 피하는 게 아니라, 선택하고 있었다.

내가 꺼낸 이야기 중에서, 그녀가 대답할 만한 것만 받아들이는 듯한 느낌.

그리고 그걸 나는 ‘거절’이 아닌 ‘무관심’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침묵도 하나의 답이다

사람은 다 다르다. 어떤 이는 말로 마음을 전하고, 어떤 이는 침묵으로 감정을 드러낸다.

나는 전자였고, 그녀는 후자였다.

하지만 문제는, 나는 그녀의 침묵을 ‘신호’로 읽지 못했고, 그녀는 내 메시지를 ‘기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한 번은 용기 내서 직접 물어봤다.

"내가 뭔가 물어보면, 잘 안 읽거나 대답 안 하는 거 같아"

그녀는 당황한 듯 말했다.

"내가?"

그 반응에 나는 '역시'라고 혼자 웃어넘겼다.

어째서인지 그후로는 서운한 감정이 들지 않는다.

왜냐면 나도 선택적 대화를 시작했기 때문에


"내가?" 라고 이야기했던 그녀에게선 미안한 감정은 없었다

그도 그럴게 그녀는 '그녀가 원하는 이야기는' 모두 진행했기 때문에.

다른 말들은 수면에 가라앉는 수준이 아니라 그냥 없었던 대화였다.

원하는 릴스가 아니면 다음으로 넘겨버리는 것 같이


하지만 ‘의도’와 ‘느낌’은 다르다.

그녀는 악의가 없었지만, 나는 아팠다.

그녀는 내 마음을 해치지 않았지만, 나는 다쳤다.



메신저는 작은 사회다

채팅창은 작지만, 감정은 크다.

한 줄의 말, 혹은 한 줄의 침묵이 며칠을 끌기도 한다.

관계의 시작과 끝이, 이제는 이 작은 말풍선 안에서 오간다.

그녀가 원하는 말에만 반응한다는 건,

결국 ‘너의 감정은 지금 내 우선순위가 아니야’라는 무언의 메시지처럼 느껴진다.

그녀가 던진 화제에 내가 응답하지 않으면, 곧 대화는 끝난다.

하지만 내가 던진 감정엔, 그녀는 묵묵부답이다.

그럴 때면 관계는 균형을 잃는다.

‘한쪽만 기대고 있는 의자’처럼 위태롭다.



나는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걸까

시간이 지나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원래 사람 사이엔 이 정도의 거리감은 있는 거 아닐까?"

"그녀는 여전히 날 좋아하지만, 표현 방식이 다를 뿐일 거야."

그렇게 마음을 합리화하다 보면, 어느샌가 나 자신을 지우기 시작한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가 아니라,

‘내가 이 관계에서 무엇을 느끼는지’가 점점 중요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감정은 언제나 ‘사실’이다.

상대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내가 외로움을 느꼈다면 그건 진짜다.

무시당했다고 느꼈다면, 그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감정이다.



그녀가 원했던 건, 가벼운 대화

돌이켜보면 그녀는 처음부터 깊은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다.

자신의 상처를 쉽게 꺼내는 사람이 아니었고,

관계도 선을 지키는 스타일이었다.

그녀에게 카톡은 ‘정보 교환’이나 ‘기분 전환’의 도구였을지 모른다.

그 이상을 기대한 나의 마음이, 그녀에게는 부담이었을 수도 있다.

그녀는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불편한 말은 피하는 게 예의 아닌가?”

“나는 가벼운 이야기로도 충분히 교감한다고 느끼는데.”

“그 사람은 왜 자꾸 진지한 얘기를 하려 하지?”



진심은 방식이 아니라 타이밍이다

사실 사랑이든 우정이든, 관계는 타이밍이다.

한 사람이 건넨 말에, 다른 사람이 그 시점에 얼마나 열려 있느냐.

그게 맞물려야 대화는 진심으로 흐른다.

그녀는 닫혀 있었고, 나는 열려 있었다.

그녀는 가볍게 걸었고, 나는 깊게 들어갔다.

그 시차가 우리 사이의 거리를 만들었다.



남한테 맞출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왜 내 카톡에 대답하지 않았을까?

정말 바빠서?

감정이 없어서?

귀찮아서?

혹은,

그녀가 원하는 대화의 방식이 그것이었기 때문에?

지금은 안다.

그녀는 단지 자신이 편한 방식대로 소통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방식에 맞추며 나를 잃어갔던 것이다.



너의 침묵에서 읽은 진심

대화는 말이 아니라 ‘반응’으로 이어진다.

그녀의 침묵은, 그녀의 방식이자 메시지였다.

그리고 나는, 더는 그 침묵을 해석하지 않기로 했다.

카톡창은 오해를 낳는다.

하지만 내가 그 오해를 키울 필요는 없다.

때로 내가 만나는 사람이 카톡창에서는 다른 모습으로 등장할지라도

때로는 나와 말이 잘 통하던 사람이 카톡창에서는 대답을 무시하더라도.

그건 무시가 아니라 대답이다.

우리는 그 대답을 듣고 우리의 대답을 하면 된다. 우리도 역시 읽씹으로 대답할 수 있다.

읽씹에 담긴 진심을 읽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소모하진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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