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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만 있고 귀는 없는 사람들

by 메이다니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사람을 만난다. 겉보기엔 대화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이다.


질문은 하지 않고, 내 이야기는 잘라버리고, 자기 할 말만 계속 이어간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듣지 않는다'.


입은 열려 있지만, 귀는 닫혀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과 마주하고 있으면, 어느 순간 문득 깨닫게 된다.


‘나는 지금,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독백을 듣고 있구나.’


그들은 말을 멈추지 않는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흘려보내기 위해 말을 한다. 그리고 그 말들은 점점 커지고, 쌓이고, 밀려와 결국 나를 덮친다.


나는 듣고 있다. 하지만, 듣는 게 아니다. 그 사람이 '내 말'을 듣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내가 굳이 이 말을 해야 하나 싶어지기 때문이다.


말하는 사람에게는 쾌감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말로 뱉어내며 정리하고, 상대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통해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


하지만 귀가 없는 사람들은, 그 쾌감에 중독되어 있다. 그들은 대화의 쾌감이 아니라, ‘지배’의 쾌감을 느낀다. 말로써 누군가를 설득하고, 움직이고, 압도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서 희열을 느낀다.


그래서 그들은 듣지 않는다. 아니, 못 듣는다. 듣기 시작하면, 상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자기만의 왕국이 무너질 수 있으니까.


그들은 말로 자신을 지키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과 대화를 해야만 할 때, 우리는 어떤 전략을 써야 할까?


회피? 무반응? 혹은, 똑같이 되갚기?


그 어떤 방법도 쉽지 않다. 특히 그 사람이 회사 동료이거나, 가족이거나, 애인일 경우.


나는 그런 사람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이런 방식으로 접근해 보기로 했다.


하나. '내가 듣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도적으로 드러내기.


이건 아이러니하게 들리겠지만, 듣지 않는 사람에게 ‘당신은 지금 듣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듣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말할 때, 그 사람의 말 속 키워드를 반복해주는 식으로.


"아까 말한 '그 프로젝트에서 네가 혼자 감당했다는 부분' 그거 말인데…"


그 순간 그들은 잠깐 멈춘다. 자신이 한 말을 진짜로 들은 사람이 있다는 걸 인식하는 순간.


그 작은 인식이, 균열이 된다. 자아로 가득 찬 말의 벽에 생긴 균열.


둘. '나는 너의 말에 반응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신호를 보내기.


이건 정중한 방식으로 경계를 긋는 행위다. 내가 그의 말에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겠다는 태도.


예를 들어, 말이 폭주하는 순간에는 살짝 시선을 피하거나, 화제를 돌리는 식이다. "그 이야기 재미있긴 한데, 나 이 얘기도 좀 해도 돼?"


이건 무례하지 않으면서도, 대화의 주도권을 균등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그 사람의 말의 기세가 줄어드는 지점은 언제나, ‘대화가 아니다’라는 걸 인식할 때이다.


셋. 마음을 닫지 않되, 거리를 둔다.


입만 있는 사람과 계속 가까이 있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귀를 닫고 말하고만 싶어진다. 그건 자기방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결국 나 역시 '귀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중요한 건, 그 사람을 내 세계의 중심에 놓지 않는 일이다. 그 사람의 말이 옳든 그르든, 그건 그의 세계의 일일 뿐, 나의 진실과 전부 겹칠 필요는 없다.


말로 타인을 잠식하려는 사람에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지금 여긴 너만의 무대가 아니야'라는 걸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입만 있고 귀는 없는 사람들과 가끔 대화를 나눈다.


예전엔 그런 대화가 너무 피곤해서 혼자 조용히 도망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졌다. 그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나의 귀를 지키는 방법을 알게 되었으니까.


대화란 건, 결국 말의 싸움이 아니라 ‘존중’의 균형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나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누군가와 이야기 나누는 법을 연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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