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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인지 공격인지 애매한 말도 있다

by 메이다니

“너는 원래 잘하잖아.”
이 말이 참 고맙고, 또 참 얄밉다.
좋은 말인데 기분이 안 좋다. 기분이 안 좋은데, 대놓고 화낼 수는 없다. 그런 말을 들으면 머릿속이 바빠진다. 칭찬이라고 받아들이자니 억울하고, 공격이라고 생각하자니 너무 예민한 것 같고. 결국 괜히 혼자 기분 나쁜 사람이 되는 수밖에 없다.

말이라는 건 원래 그렇다.
똑같은 문장도 누구한테 들었는지, 언제 들었는지, 그날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들린다.
문장은 같아도 맥락이 다르면 뜻도, 느낌도 달라진다.

그런데 어떤 말들은 유독 그렇다.
말의 구조 자체가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던져져 있기 때문이다.
칭찬 같기도 하고, 비꼬는 것 같기도 한 말들.
다정한 듯한 말투로 공격하고, 공격인 듯하면서도 "좋게 한 말인데?" 하고 빠져나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말 앞에서 애매한 표정을 짓는 나.

예를 들면 이런 것들.

“와, 그걸 어떻게 다 참았어? 진짜 대단하다.”
“너는 진짜 말 안 하고도 혼자 알아서 하더라.”
“넌 왜 이렇게 꼼꼼하냐? 그게 너의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지.”

말이 길어질수록 감정도 길게 남는다.
나는 왜 이 말들이 싫었는지를, 듣고 나서 한참 뒤에야 깨달을 때가 많았다.
그때는 그냥 가볍게 넘겼던 말이, 밤늦게 이불 속에서 자꾸 떠오른다.
그 사람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돌이켜보면 이런 말들은 대체로 관계 안에서의 힘의 균형이 어긋날 때 등장한다.
상대는 나를 칭찬하면서도, 동시에 나보다 ‘우위에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런 말을 한다.

“넌 진짜 똑똑해. 근데 그래서 사람들이 좀 부담스러워하지 않아?”
“나는 너처럼은 못 해. 난 좀 덜 완벽해서 다행이야.”
“그 정도면 너치고는 잘한 거지.”

이 모든 말의 핵심은 칭찬인 척 하면서, **‘네가 조금 나대지 않았으면 좋겠어’**라는 메시지를 덧붙이는 데 있다.
칭찬이 아닌 척 하는 공격보다, 칭찬인 척 하는 공격이 더 무섭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끝까지 말한다.
“나는 진심이었는데?”
“그냥 웃자고 한 소리야.”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받아들여?”

그리고 결국 ‘예민한 사람’이 된다.
조금만 불편함을 표현해도, ‘그 정도로 기분 나빠할 일인가?’ 소리를 듣는다.
그 말이 왜 불편했는지를 설명해야 하는 사람은 늘 듣는 쪽이다.
감정을 느끼는 쪽이 설명의 책임까지 진다.

이런 말들 속엔 사실 의도된 서열 정리가 숨어 있다.
그 사람은 나를 인정하는 듯 말하지만, 동시에 감시한다.
너무 튀지 마, 너무 잘하지 마, 너무 힘들어하지 마.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볼지 모르니까.
그리고 내가 너를 어떻게 보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나는 이젠 칭찬을 들을 때 더 조심스럽다.
그 말에 기대서 스스로를 증명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그 말이 내 가치를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정리하려는 건 아닌지 살펴보게 된다.
그 말이 진심으로 다가올 때는 언제나, 내가 힘을 빼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나를 정말 좋아해주는 순간은,
내가 무언가를 잘해서가 아니라,
못 해도 괜찮은 사람으로 대접받을 때였기 때문이다.

요즘은 나도 그런 말을 안 하려고 노력한다.
무심한 칭찬이 누군가에게 피로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넌 원래 잘하잖아”라는 말은,
사람을 인정하는 말이 아니라,
그 사람의 고생을 지워버리는 말일 수도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 정도는 너니까 가능하지.”
이 말은 결국
“너는 이걸 해내야 한다”는 기대의 말이기도 하다.
실패할 자유를 주지 않는,
항상 유능해야 하는 사람으로만 살아가게 만드는 말.
나도 그런 말 앞에서 무너졌던 적이 있었기에,
이제는 누군가의 노력과 버팀을 “당연한 것”처럼 말하지 않으려 한다.

어떤 말은 칭찬인 줄 알고 웃었는데,
나중에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씁쓸해진다.
그 말이 내 마음 한 귀퉁이에 상처처럼 남아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나는 이렇게 묻는다.

“그 사람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리고 결국 깨닫는다.
문제는 그 사람이 한 말이 아니라,
그 말이 내 안에서 어떤 기억과 엮였는가에 있다는 걸.
어쩌면 그 사람이 악의 없이 던진 말일 수도 있고,
정말 나를 생각해서 한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서 어딘가 익숙한 통증을 느꼈다.
그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이제는 이런 말 앞에서 웃지도, 당황하지도 않는다.
대신 가만히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그 말을 그렇게 말하는 사람과, 오래 함께할 필요는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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