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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법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

by 메이다니

“그 말, 진심으로 한 거야? 왜?”
“나한테 그말을 왜 하는 거야?”
“뭐..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네. 난 아니지만”


말 한마디에 상황이 뒤집히는 시대다. 정치, 사회, 경제 할 것 없다.

심지어 가족, 친구, 연인 간의 대화에서도.


누가 어떤 감정으로 말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누가, 어떻게 들었는지가 전부다. 말의 진심보다 해석이 중요한 시대.


그래서 요즘 나는, 말을 아낀다.
그리고 아끼는 걸 넘어서, 점점 말하는 법을 잃어가고 있다.


처음엔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오해를 샀고,
나중엔 아예 말을 안 하기로 마음먹었다.
괜히 말 꺼냈다가 내가 무례한 사람이 되는 게 싫었고,
내 말이 엉뚱한 의미로 해석되는 걸 막기 위해
입을 닫는 쪽을 택했다.


그게 처음엔 나를 보호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를 지우는 방식이 되어버렸다.


요즘은 말하는 게 무섭다.
무슨 말을 해도 오해가 붙고, 무슨 뜻이든 다르게 읽힌다.
말을 했는데, 내가 하지도 않은 의도가 함께 따라온다.
그리고 그 말은 사람들 사이에서 제멋대로 자라고, 나를 대신해 나를 말한다.

그래서 나는 말하는 걸 피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말하고 싶은 걸 참는 연습이었다.
진짜 욱할 때도, 할 말이 많은 날에도, 입을 다물었다.
그게 어른스러운 거라고 믿었다.
감정적인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침묵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그런데 그걸 너무 잘 참다 보니까 이상한 일이 생겼다.
참는 걸 넘어서 말하고 싶은 감정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냥 지나가게 놔두자. 그냥 넘기자.
그렇게 넘기고 넘기고 또 넘기다 보니,
이젠 진짜로 아무 말도 못하게 됐다.


이런 감정, 아마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거다.
회사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모임이나 술자리에서도
이상하게 ‘말이 무기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내가 꺼낸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기분 나쁜 의도’가 되고,
그 사람의 표정이나 반응을 보고 나면 다음 말이 턱 막힌다.
그리고 나중엔, 아예 말 자체를 접게 된다.

예를 들어,

“다음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말조차
“이번엔 최선을 안 다한 거네요?”
“다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다음이 있을 줄 알고 이렇게 한 거예요?”
이런 식으로 해석된다.

그 말을 한 사람은 그냥 예의상 한 말일 수도 있고,

진심이기도 했겠지만
듣는 쪽이 그렇게 받아들이면 그건 그 사람의 해석이 되는 거다.

그리고 말은 결국 해석한 사람의 것이 된다.

이게 반복되면, 어느새 나는내가 말한 게 아니라, 사람들이 해석한 나로 존재하게 된다.
그러니 더 말을 안 하게 된다.

말은 점점 줄고, 그 자리를 침묵이 채운다.
그리고 나중엔 정말로, 말하는 법을 잃는다.


그런 순간들이 있다.
내가 꼭 말을 해야 하는 자리인데,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모르겠는 거다.

마음은 있는데 문장이 없다.
감정은 있는데 어휘가 없다.

말이라는 게 원래 마음에서 올라오는 리듬이었는데,
그 리듬을 너무 오래 눌러놓다 보니까
이젠 리듬 자체가 없어졌다.


가끔은 이런 내가 너무 이상하다.
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말이 안 나오는 나.
말을 안 했더니 사람들이 내 자리를 지워버리는 순간.
존재감이 없어진다는 게 이런 건가 싶다.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오해를 사기도 한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별 생각이 없는 건가?”
“너는 늘 조용해서 뭔지 모르겠어.”

그렇게 입을 닫은 죄로, 마음까지 없는 사람이 된다.
하지만 정말 마음이 없던 건 아니었다.
그저, 너무 오래 조심하다 보니
마음을 표현하는 데에 용기가 없어졌을 뿐이다.


나는 그게 무서웠다.
말 한마디로 ‘의도’까지 다 읽히는 시대.

심지어는 침묵까지도...
좋은 말도 조심해야 하는 시대.

‘말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게 더 중요한 시대.

그래서 말하는 걸 멈췄다.
그랬더니 나라는 사람이 점점 흐릿해졌다.
사람들은 내가 있는 자리에서도 나를 보지 못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왜냐면, 내가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나는 이제 말하고 싶다. 아니 사실은 언제나 말하고 싶었다.


다시 말을 하려고 마음먹은 후로는 '말의 방향성'을 다시 설정했다.

완벽하게 하지 않아도 되고, 오해받을 수도 있지만,

그 오해까지도 내 일부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조금은 단단해지고 싶다고 생각한다.


말을 한다는 건, 나를 드러내는 일이다.
그리고 드러낸다는 건 조금은 흔들릴 용기를 갖는 일인 것 같다.

모든 말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이 나를 오해 없이 이해할 수도 없다.
하지만 말을 아예 멈춰버리는 건
나라는 사람을 이 세상에서 지워버리는 일이다.


그러니까, 오늘은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해보려고 한다.

오늘도. 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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