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가 상처받을까 봐 걱정돼서 그러는 거야."
누군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다정한 말처럼 들렸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나를 걱정하는 말인데, 왜 이렇게 숨이 막힐까. 왜 이런 말이 나를 위로하는 대신 무겁게 짓눌렀을까.
‘너를 위해 하는 말이야.’
이 말은 어쩌면 우리가 살면서 가장 자주 듣는 조언의 포장지일지 모른다. 부모님이, 선배가, 친구가, 때로는 스쳐 지나가는 타인이 나를 위해 해준다는 조언.
하지만 그 속에는 정말 나를 위한 진심만 담겨 있을까?
"다 널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늘 나를 걱정해주셨다.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게 네 몸에 좋을 리가 없다."
"네가 그렇게 예민하게 굴면 사회생활 힘들어."
"너무 꿈만 꾸지 마라. 현실을 봐야지."
이 말들은 겉으로는 사랑과 배려로 포장되어 있다. 하지만 그 말들 속에는 부모님의 불안, 두려움, 가치관이 녹아있다. 그분들이 겪은 세상의 험난함, 혹은 자신의 좌절을 반복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겠지.
나는 그 말들을 듣고 자라며 스스로를 조심스러운 사람으로 키워냈다. 실수를 두려워하고, 너무 튀지 않으려 애쓰고, 언제나 계획을 세우고 대비하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그 덕분에 안정적인 삶을 살기도 했다. 큰 실패 없이, 무난하게, 어른들이 말하는 '괜찮은 삶'을 만들어왔다. 하지만 가끔,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내 목소리는 어디 있는지 헷갈릴 때가 있었다.
혹시 나는 ‘누군가를 위해 하는 말’을 너무 많이 들으며 살았던 걸까?
‘조언’이라는 이름의 통제
‘너를 위해 하는 말이야’라는 문장은 사실 상대방의 선택지를 은근히 좁힌다.
"내 말 안 들으면 너 후회할 걸."
"네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야."
"그건 정말 위험해. 나는 네가 다칠까 봐 걱정돼."
이 말은 내 선택이 어리석거나 부족하다고 암시한다. 그리고 그 판단의 주도권을 상대가 가져간다. 물론 진심 어린 충고도 있지만, 종종 그 말은 상대방의 불안을 내게 전가하는 방식이 되기도 한다.
상대는 자신의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내 행동을 통제하고 싶어 한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때, 나는 거부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거절하면 마치 사랑을 거부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쓴 적도 많다
사실 나도 누군가에게 비슷한 말을 해본 적 있다.
"그건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닐 것 같아."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 그냥 조금만 더 참고 버텨봐."
"네가 이렇게 하면 상처받을까 봐 걱정돼."
그 순간 나는 진심으로 그 사람을 걱정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건 나의 불안이기도 했다. 그 사람이 모험하는 게, 내 기준에서 위험해 보이는 게 두려웠던 것이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불확실성을, 상대가 선택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말의 주어를 바꾸어보기
‘너를 위해서’라는 말을 할 때, 우리가 진짜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일지 모른다.
- 나는 네가 실패할까 봐 두렵다.
- 나는 네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기 싫다.
- 나는 네가 내 기대와 다른 길을 가는 게 불안하다.
- 나는 네 선택을 책임질 자신이 없다.
이렇게 말하면 상대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더 솔직해진다. 그 순간 조언은 통제에서 벗어나 진정한 대화가 된다. 상대는 내 불안을 이해하고, 자신의 선택을 다시 고민해볼 기회를 갖게 된다.
나를 위한 것과 너를 위한 것
누군가 "너를 위해 하는 말이야"라고 말할 때, 나는 이제 이렇게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그 사람은 지금 누구의 안정을 위해 이 말을 하고 있을까?"
정답은 없다. 다만,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것만으로도 감정의 무게가 가벼워진다.
사랑의 다른 방식
진짜 사랑은 어쩌면 ‘위험을 감수하게 내버려두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넘어질 수 있고, 실패할 수 있고, 상처받을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가 원할 때 곁에 있어주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사랑은 훨씬 큰 용기와 신뢰를 필요로 한다.
"네가 어떤 선택을 해도, 나는 네 편이야."
이 말은 ‘너를 위해 하는 말이야’보다 훨씬 깊고 단단하다. 이 말은 상대를 조종하지 않고, 대신 그의 삶을 존중한다. 그리고 이 말이야말로, 내가 살면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이었다.
다시, 그 사람을 떠올리며
예전의 내가 만난 한 친구가 떠오른다. 내가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고민할 때,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뭐라고 조언을 하긴 어려워. 그냥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하지 않길 바라."
그 말은 무책임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내 삶의 책임을 지고 선택할 수 있게 해준 말이었다. 그의 그 말이, 내게는 평생 남았다.
글을 마치며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너를 위해 하는 말'을 주고받는다. 그 말들은 때로 위로가 되지만, 때로는 보이지 않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잘 모르는 사이, 누군가에게 족쇄를 건네주기도 한다.
그러니 이 문장을 쉽게 쓰거나 듣지 않으려고 한다.
"너를 위해 하는 말이야."
이 말을 하기 전에, 나는 먼저 내 마음을 들여다볼 것이다. 이 말의 뒤에 숨은 불안과 사랑을 분리해서, 솔직하게 말해보려 한다.
‘나는 네가 다칠까 봐 두려워. 하지만 네가 행복하길 더 바래.’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비로소 진짜 ‘너를 위한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