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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무지니 Feb 06. 2023

자리 옮기는 날, 부서장이 전화를 했다.  

만나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팀장님과의 2개월여 만의 면담 끝에 다른 부서로 가게 됐다. 


내가 옮기게 된 부서는 입사하기 전에는 우리 부서 내부의 파트 조직이었는데 점점 중요성이 올라가면서 독립하게 된 그룹이었다. 편의상 이전 부서를 A, 옮기게 된 부서를 B그룹이라고 하면, A부서장은 B부서를 엄청 싫어했다. 그것도 대놓고 티 나게. A, B부서 간 매년 워크숍을 가는 행사도 없애버렸고, A부서에 있을 때, B부서랑 회식을 하거나, 교류가 있으면 다음날 부서장한테 불려 가서 박살이 나야만 했다. B부서도 여사원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여사원 케어를 부탁한다며 회식에 가끔 부르는 일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무슨 007 작전 벌이듯이 몰래 나가야만 했다. 


그런 상황이었는데 보란 듯이 내가 B부서를 가게 된 거다. 일이 가장 비슷하기도 했고, 평소에 친분이 있었으니 B부서에서도 마다할 일이 없었다. 그 덕에 부서 전배를 갔는데 다들 너무 익숙해서 내가 전배온 사람이라는 인식조차 없었기는 했지만. 


지금은 회사 사무실은 거의 듀얼 모니터를 사용한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그게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었다. 부서 주무를 한다고, 부서에서 하나를 더 주더라. 자산 관리 측면에서 보면, OA기기는 원래 부서 경비로 사는 거고, 자산 관리자는 사용자가 하는 걸로 되어 있다. 

하지만 내 딴에는 그래도 다들 쓰는 듀얼 모니터도 아니고, 가지고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가 너무 애매하더라. 뼛 속까지 가스라이팅 당한 거지. 암튼 그래서 다른 선배한테 한번 물어봤다. 


"선배 이 모니터 어떻게 해요?"

"나도 듀얼 모니터 쓰고 있고, 어차피 자산관리자도 넌데 그냥 가지고 가~" 

"우선 누구 쓸 사람 있는지 알아봐 주세요, 그래도 없으면 가지고 갈게요" 

"그래, 그런 거까지 신경을 쓰고 그러냐~"


2011년 5월 6일

(하도 기가 차서 날짜도 기억한다) 


어린이날이 목요일이라 징검다리 휴가를 많이 쓰는 연휴 기간이었다. 그래도 5년 넘게 일하던 부서에서 전배를 가는데, 사람들 다 징검다리 연휴라고 쉬고 있는 그날, 굳이 이사를 가라고 하더라.(부서장이) 진짜 사무실에 10명이나 있었나... 결국 그 모니터는 받겠다는 사람도 못 찾아서, 짐 싸면서 같이 챙겨서 이사를 했다. 그래도 전배라고 인사하려고 가보니 부서장은 자리에 없었다. 회의를 갔다고 했던가, 외근을 나갔다고 했던가. (그냥 자리를 피한 거 같기는 하다) 


한참 이사하고 자리 정리를 하고 있는데, 부서장한테 전화가 왔다. 


"야무진, 너 모니터 가지고 갔어?"

"네, 자산 이관자도 못 찾았고, 필요하다는 분도 없어서요."

"야, 그거 횡령인 거 몰라? 우리 부서 업무에 필요하다고 산 건데 그걸 네가 왜 들고 가! 다시 갖다 놔" 



역시는 역시다. 그거 미리 인폼해 놓고 가면 덧나? 굳이 이사 다 하고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해서 다시 가져다 놓으란다. 그래서 뭐 어떻게 했냐고? 다시 들고 내려가서 선배들 눈앞에서 씩씩 거리면서 쾅! 내려놓고 왔지 


"ㅋ 부장님이 횡령이라고, 가져다 놓으라고 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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