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를 비우면 안 되는 때였는데, 자리 비우면 생기는 일
타이밍도 적절하게 연초부터 준비했던 10주짜리 연수프로그램에 입과하게 됐다. 한창 바쁠 때라 10월로 미뤄놨었는데, 부문 과정 말고 그룹 과정으로 입과 할 수 있게 인사팀에서 배려해 준 덕에 지난 일이 있고 얼마 되지 않아서 바로 갔다. 합숙 과정이었으므로, 10주간 사무실 자리를 비운다는 이야기기도 했다.
10주는 참 금방도 지나갔다. 복귀하고 얼마 안 되어서 부서장 고과 면담이 있었다. 상반기는 개인 역량에 관한 평가기도 했고, 비록 시상 범위에는 못 들어갔지만 본선 진출해서 나쁘지 않은 결과를 가진 논문도 있었기에 별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왜 그랬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그룹장님과 면담을 하게 됐다. (고과 면담은 파트장님이랑만 하면 된다, 근데 왜 그랬었지?)
교육 복귀하자마자 들은 이야기로는 정말 매우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새로 업무를 받기 전에 갔고, 기존 업무는 마무리가 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업무는 그다지 어려울 일이 없는 상황이었다. 너무 억울하고 황당하기까지 했으나 그냥 듣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입사한 이래 일 못한다는 이야기는 대놓고 그때 처음 들었다. 공사당한 거다. 그 Cell리더한테...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다른 파트로 가는 걸 알아보는 게 좋을 거 같네. 우선 어디가 좋을지 본인도 고민 좀 해보고, 나도 문제없이 가려면 어디가 좋을지 생각해 보고 다시 한번 이야기합시다"
사원 때 내가 제일 따르던 상사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나한테 한 번은 물어볼 법도 했는데, 아무런 질문도 없었다. 친분을 떠나서 저런 상황이 되면 나한테도 한 번 물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정말 이상하리만치 답답한 상황이었다. 나 없는 10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굳이 누구한테 물어보지 않아도 알 거 같은 쎄~한 느낌.
"파트장님, 거기 사람 안 필요해요?"
친한 옆 파트장님과 선배들이랑 술 한잔 하면서 물어봤다. Cell리더께서 얼마나 탄탄하게 공사를 해두셨는지 이미 내가 그룹장과 그 Cell사람들의 눈 밖에 난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바로 옆에서 일하던 다른 파트장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고, 친분도 있던 터라, 생각 있으면 자기네 파트로 오라고 했다. 그러더니, 어차피 본인들도 사람이 필요하니 그룹장께 본인이 직접 말하겠다고 하더라.
내 입장에서 고마운 일이었다. 사실 사람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해 주면 내가 그쪽으로 갈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질 수 있으니까. (어디나 사람이 필요하기는 하다)
"그룹장님, 바쁘십니까? 저희 XX동에서 술 한잔하고 있는데 잠시 시간 되시면 들러주시죠~"
아~ 이런 부지런한 사람들. 갑자기 연락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룹장은 바로 우리가 있는 술집으로 오셨다.
"그룹장님, 야무진 선임이 예전에 저희 공정을 해보기도 했었고, 마침 저희도 사람이 필요합니다. 다른 파트 이동을 고려하고 계시다면 저희 파트로 보내주시면 어떨까요?"
"누가 그래, 야무진이 그래? 너네 야무진이 지금 있는 파트에서 사람들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알아? 그리고 일은 내가 쟤랑 더 오래 했어! 생각 없이 애가 징징댄다고 다 받아줘?"
"네? 아니, 다른 파트 어디가 좋을지 고민해 보라고 하셨다길래..."
"그걸 니들끼리 정해? 쟤는 거기 가도 니들 힘들게만 할걸?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는데, 니들 제정신이야?"
내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심지어 바로 맞은편에. 그룹장은 마치 내가 거기 없는 사람처럼 난리를 쳤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그룹장이랑 이야기하기 전에 말해본 건 잘못했다 치자. 하지만 어차피 그룹 내부 이동이고, 나를 받을 파트장과 이런 이야기도 못하는 거였던가? 아니, 그리고 내 눈앞에서 내가 갖다 버릴 패니, 니들이 생각 잘못했다고 말하는 건가?
눈물이 앞을 가렸다. 8년 차 가까이 돼서 인제 사람들 앞에서 울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눈물이 나와서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다. 인사고 뭐고 그냥 그 자리 박차고 나와서 집으로 왔다. 집에 도착하니 선배들한테 계속 전화가 왔다. 문자도 오고 난리지만 보고 싶지가 않았다.
다음 날 눈이 반쪽이 돼서 출근했다. 그렇다고 출근을 안 할 수는 없으니까.
"야, 너 어디 도망갈 데 찾아봐라. 여기 더 있으면 안 되겠더라"
내가 가고 나서 선배들은 그룹장한테 1시간을 넘게 일장 연설을 들었다더라. 야무진 선임은 일도 못하고 교활한 면이 있어서 내가 아끼는 너희들한테 보낼 수는 없다. 그러니 접어라. 니들이 잘 몰라서 그런데 애가 아주 별로다. 내가 예전에 신입 때부터 데리고 있어 봐서 안다. 뭐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어린 여자애 하나한테 휘둘려서 사리분별 못하는 놈들이라고 난리를 쳤단다.
"방법이 있겠어요, 그냥 가라는 데로 가야지."
결국 다른 파트로 갔다. 여기서는 그렇게 나를 쓰레기 취급을 하시더니, 그쪽 파트에는 별말씀이 없으셨는지 그런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자리 이동하게 됐다. 이런 일이 있는 동안 Cell리더 이야기만 있고, 우리 파트장 이야기는 없었네? 그 파트에서 유일하게 나를 옹호하던 우리 파트장은 나의 자리 이동과 동시에 파트장을 내려놓았다. 그 자리는 다른 사람이 앉았고. 참 죄송한 일이다. 그저 나랑 같이 일을 했을 뿐인데...
거기서 잠시 일하다 얼마 되지 않아 그 부서에서도 이동을 했다. 부서 이동은 인맥이다. 새로 오신 팀장님 덕분에 탈출도 가능했다. 저 때 나름, 내 편들어줬던 선배들은 참 고맙다. 덕분에 버틸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직장생활에는 공작과 정치가 난무한다는 거, 저런 일에 저렇게 공을 들이는 사람이 있다는 거 하나는 확실히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