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존재감이 그렇게 없었니?
매년 팀단위 조직 개편이 생겼는데, 책임 되고 얼마 안 되어 팀 내 다른 그룹에 계시던 부장님께서 팀장이 되셨다. 우리 회사는 팀단위로 인사/노무 담당, 조직문화 담당 Staff가 있는데 전담으로 지정된 보직이라, 팀 직속으로 2년간 업무를 해야 했다. 담당자는 인사팀에서 지정한 여러 가지 조건이 있었는데, 우연의 일치(?)로 우리 팀은 그 조건에 맞는 사람이 몇 명 없었다.
원래 그 자리는 내정된 친구가 있었다. 팀장님이 우리 옆 그룹에 계실 때 부서에서 CA를 하던 여사원이었는데, 팀장님은 굳이 CA를 팀 직속에 다른 업무 없이 전업까지 해야 되냐~ 하셔서 그 친구가 하는 걸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인사팀에서 반대를 했다. 당시에 회장님께서 워크 스마트를 한참 밀고 계시던 때라서 조직문화 담당자의 자리가 중요하다며, 조건을 까다롭게 본다고 했다. 최소 책임 이상에 고과가 있어야 하고.. 뭐 그런 거였던가? (난 고과는 없었다. 진급하기 전에 막판에 겨우 하나 넣은 거?)
그래서 결국은 직군까지 변경하고 일 좀 하나? 하는 분위기로 간신히 적응하고 있던 그 부서에서 나와 팀 직속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그 친구가 팀장님이 계시던 그룹의 CA기도 했었고, 행사 관련한 걸 많이 하기도 했었어서 업무 인수인계는 그 여사원에게 받았다. 워낙 그룹장님, 팀장님에게 싹싹하기도 하고 팀 행사도 많이 도왔던 친구였다. 전연도에 나는 중국 장기 출장에, 부서에서도 왕따였던 상황이라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 그런 내가 팀 CA라고 하니 그 친구도 황당하기는 했겠지.
"언니는 잘 모르실 건데, XXX 행사를 해야 되고...."
나는 왕따 사건을 겪기 전까지 부서 행사는 다 도맡아 하던 사람이었다. 100명이 넘는 부서원 가족 송년회 사회를 5년이나 맡아서 했고, 1박 2일 워크숍은 내 PC에 장보기 매뉴얼이 따로 있었다. 제도 변경돼서 적응해야 하는 서류 작업 말고는 120명 정도 되는 부서의 행사정도는 뭐... 물론 우리 팀이 어르신들이 많이 계신 조직이라 쉽지 않긴 했지만. 워낙에 또래보다는 어른들에 특화된 편이었어서 별로 걱정이 되진 않았다.
"언니, 우리 팀장님은요...."
새로 오신 팀장님은 나 입사할 때부터 친분이 있었다. 과거 팀장님 몇 달을 괴롭혀서 옮긴 부서의 그룹장이 지금의 팀장님이셨다.
CA를 맡았을 때가 입사 10년 차였으니 팀장님과의 인연도 10년째 되던 해였다. 주 5일 술 먹어야 하던 시절에 3일 정도는 술을 사주시던 고마운 선배기도 하셨고. 우리 그룹장 하다가 다른 부서로 가시는 바람에 이게 다 나 버리고 도망가셔서 그런 거 아니냐고 투덜대기를 얼마나 했는데!
우리 팀장으로 오신다고 해서 한동안은 눈 안 마주치고 피하기도 했었다. 부서장 흉보는 후배를 어떤 부서장이 좋아라 하겠냐고...ㅠ.ㅠ
"팀장님 설명은 안 해도 돼. 나 팀장님이랑 입사 때부터 알던 사이라서..."
"그래요? 와~ 그런데 왜 몰랐지?" (굳이 사적인 친분까지 너한테 알리고 그럴 건 아니라서 그럴걸?)
한참 회사도 재미없고 팀 내 3개 그룹장 한 그룹은 내가 도망 나온 친정(?), 한 그룹은 왕따 당하던 부서, 한 그룹은 교류도 하나도 없었던 부서의 조직문화 관리자가 내가 되는 것이 맞나 싶긴 했다. 그 친구가 의욕도 넘치고, 하고 싶어 하던 자리인데 내가 괜히 들어가서 애매해졌나 싶어 미안하기도 했었다.
뭐, 얼마 되지 않아서 그 마음은 싹~ 잊어버리게 되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