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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무 Feb 01. 2024

K대 출신이라는 딱지

K대 나와서 왜 그러고 살아요?

1


"안녕하세요. ○○○아카데미입니다. 리무 씨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현재 학원·교육업 쪽에서 스몰잡을 하고 있던 나는 어느 학원으로부터 입사제안을 받았다.

"리무 씨 이력사항을 보고 입사제안을 드렸던 김 팀장입니다. 현재 □□학원에서 근무하고 계셔서 제안을 드렸어요."

"네."

"저희는 교육상담직 직원을 구하고 있습니다. K대 경제학과 정도 나오신 거면 저희 쪽에 관심이 있으실지 모르겠네요. 채용 공고 다시 보내드릴 테니까 검토하시고 연락 주세요. "

"?"


2


짧게만 일하고 도망쳤던 어느 조직이었다. 내가 입사하던 첫날, 상사는 조직의 보수체계에 큰 불만을 토로했다.

"우리 사업팀이 생기기 전에 보수 규정을 싹 바꿔버린 게 분명해. 이 돈 받아서 어떻게 일을 하란 말이야?"

"..."

"우리 같은 계약직은 가져갈 수 있는 수당도 없어. 배 주임. 야근 자주 해서 야근수당이라도 챙겨 가. 이 월급만으론 도저히 생활이 안 돼."

"... 하하. 저는 퇴근 이후에 더 바쁜 사람이어서요. 일 많을 때만 야근할게요."

"근데 배 주임 K대 나왔다고 하지 않았나?"

"네."

"왜 대기업 안 가고 코딱지만 한 월급 주는 이런 조직에 있어? 대기업 충분히 갈 수 있지 않나?"

"... 대기업이랑 성향이 안 맞아서요."

나는 대기업에 입사 지원한 경험이 매우 적다. 처음으로 취업 준비를 하던 시절 입사지원서는 무조건 많이 넣어봐야 한다는 소리에 멋모르고 공장식으로 생성한 자소서를 뿌리듯 지원한 적은 있지만. 현실 속 많은 사람들이 '결국 대기업이야'라고 할 땐, 나는 늘 '왜?'였다. 가고 싶다는 마음을 품기가 어려웠다.


3


- 열차 내에서 종교 행위는 원래 불법입니다.

코로나가 터진 지 얼마 안 돼서 감염병에 예민한 시국이었다. 대면 예배는 금지되었는데 왜 사람들은 북적거리는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하냐며, 우리도 지하철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자며 어느 목사가 선동글을 올렸다. 나는 시국이 어떻든 간에 지하철에서 종교 행위를 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는 원칙을 댓글로 달았다. 앗. 나의 원칙 주의가 어느 교인의 분노 버튼을 건드렸다.

-  리무 씨. 글의 본질을 파악하세요. 본질을. K대 나온 거면 공부 엄청 잘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럴 시간에 취업을 위해 기도나 하세요. 차별 금지나 기후 위기에 관심 갖는다고 인생에 도움 1도 안 돼요. 꼭 기억하시고 나중에 후회할 일 하지 마세요.

그 교인은 분노한 나머지 나의 페이스북 계정을 정주행 하며 내가 어떤 성향의 인간인지 파악하고 대댓글을 달아준 것이었다! 분노 버튼을 건드린 K대 출신의 어느 젊은 여자는 공부를 엄청 잘했던 걸로 추정되는데, 기득권의 의견을 대변해주지 않았다. 이 여자는 K대를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기득권이 되는 데 실패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세상 낮은 곳, 약자들에게 관심을 쏟는 것이고, 결국 취업을 위해 기도해야 할 방법 밖에 없다.(물론 그 당시 나는 직장을 다니고 있었지만 말이다.) 나를 염려하는 교인의 말이 인상 깊어 나는 아직도 그 댓글을 캡처해서 고이 간직하고 있다.


4


"공공기관 정규직 정도는 가야 취업 성공 아닌가?"

"야. K대 나왔으면 대기업 가야지. 우리 학교는 레벨이 낮아서 현대에서 캠퍼스 리크루팅 오지도 않아."

"우리 정도면 신입 초봉 4,000은 받아야지."

"너는 K대 나와서 왜 그런 아르바이트를 하니? 명문대생이면 고액 과외를 해야지. 왜 사서 고생을 해."


K대

K대!

K대!!!


나에겐 K대의 입시를 준비하고, K대에서 공부하고, K대 효과로 사회생활을 한 시간들은 그저 찰나였다. 학교에서의 추억이 소중한 것이지, K대라는 타이틀은 나에게 큰 의미가 없었다. 나의 정체성 중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


나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K대 출신'의 이미지에서 많이 벗어난 모습으로 살았다. 나에 관한 정보 중 아는 것이 그저 K대 출신이거나, K대에 꽂혀 있는 경우 상대방은 나에게 어떤 모습을 기대했다. 하지만 사회가 기대하는 모습 보단 늘 내 마음에 따라 살던 나는 기대에 못 미칠 수밖에 없었다.


당신이 생각하는 K대 출신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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