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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Be kind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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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무 Jul 23. 2024

꿈에서 만나는 사이

할매와의 기억

1.


빨간 다라를 바닥에 펴놓고 할매는 배추김치를 담근다. 손이 작아서 도움이 안 되는 어린 나는 우리 할매 힘들까봐 할매의 팔과 어깨를 주물렀다.

"아따, 인자 다 했다."

"할매, 팔 안 아프나?"

"아파도 우짜겠노. 내일은 어떤 김치 담글까? 경남 김치? 안동 김치?"

"내 안동 김치 해도!"

"알긋다."

"근데 할매, 팔이 굵어졌다. 근육이 붙은거 같네."

우리 할매 살아계실 적 빼빼 마른 팔을 아직 기억하는데. 부러질듯 얇은 뼈에 살가죽만 붙어 있던 그 팔이 아니다.

"할매…. 앞으로도 만날 내 꿈에 나와줄 수 있나?"

할매가 씩 웃으며 말했다.

"못 할거 없재."

어린 나는 안다. 이게 꿈이라는 걸. 할매는 꿈에서만 만날 수 있다. 그렇게 할매의 팔을 주무르며 엉엉 울다가 꿈이 끝났다. 깨어나서도 울었다. 꿈이 생생했다. 일 하면서 울고, 밥 먹으면서 울고, 집안일 하다가 울고. 할매 꿈이 잊혀지지가 않아 하루종일 울었다.


2 .


"할매? 저거 우리 할매 아니가?"

우리 집과 내가 다니던 중학교 사이엔 큰 놀이터가 있었는데, 그곳에 우리 할매가 서 있는게 아닌가?!

"할매! 할매 맞나?"

할매는 나를 멀뚱히 쳐다봤다.

'우짜지…. 내 벌써 이렇게 커 버렸다. 우리 할매 살아있을 때 내 겨우 고등학생이었는데. 벌써 대학도 다 댕기고 회사 다니는 사람 되 뿌맀다. 내 이렇게 훌쩍 커 버려서 우리 할매가 내 몬 알아보면 우짜노?'


2년 전 어느 밤 꿈 속, 자주 놀던 동네 놀이터에서 우리 할매를 만났다. 나는 다 큰 성인이었고 할매가 나를 못 알아볼까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3.


전쟁이 난 것처럼 온 동네가 혼란스러웠다. 도로가 갈라지고 하늘에선 폭탄이 떨어졌다.

"이쪽으로 도망가자! 아직 도로가 안 갈라졌어!"

나와 같은 반 친구들은 갈라진 도로를 뛰어 다녔다. 잘못 뛰었다간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탄을 맞게 될 것이었다.

저 멀리서 옷을 단정히 차려 입은 채 손엔 가방을 들고 평화롭게 버스를 타는 할매가 보인다.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가는 모양이었다. 옆에는 할부지도 있다.

"할매! 지금 어디 가? 전쟁이 났는데! 위험하다!"

할매는 내 목소리를 듣지도 않은 채 버스를 탄다.  

나는 버스로 달려가 할매 손을 붙 잡았다. 그때서야 번뜩 떠올랐다. 맞다. 우리 할매 없는데. 벌써 세상 떠서 안 본지 한 달 넘었는데.

"할매. 지금까지 내 놓고 어디갔다 왔노. 또 내 버리고 어디가노."

고등학생인 나는 할매 손을 꼭 붙잡고 가지 말라고 엉엉 울었다.

"알았다. 네 인자 안 버린다. 잠깐 교회 갔다 오는기다."

할매는 세상 뜬지 한달이 훌쩍 지나서야 내 꿈이 나타났다.


4 .


후배 Y가 항암치료 받는 자신의 할매 이야기를 해줬다. 누나. 저 정말 힘들다고. 아파하는 할매 모습 보는 게, 이제 이별할 때가 된 거 같아서 매일 매일 슬프다고. Y 이야기를 듣다가 우리 할매 생각이 났다. 다 커서 그런지 어릴 적 할매 기억이 매일 나진 않았다. 그냥 종종 떠올랐다. 그러다 할매는 작년 겨울 내가 아파서, 열이 40도까지 올라서 정신을 못 차릴 때 꿈에 나타났다. 아무렇지 않게, 옛날 그 모습 그대로 나타나서 같이 저녁을 차리고 할배도 같이, 할배 친구도 같이 저녁밥을 먹었다.


내가 힘들다고 느낄 때, 아프다고 느낄 때 할매는 어찌 알고 무심하게 내 꿈에 나타난다. 요즘 내 힘든 거 우리 할매가 귀신 같이 알아 삣다. 근데, 할매. 이젠 옛날 처럼 안 된다. 내 머리가 다 커가 옛날 생각만 나면 너무 그립고 눈물부터 나삔다. 꿈에서 깼을 땐 현실이 너무 무거워서 예전에 할매 앞에서 재롱부리던 것처럼 웃는 게 힘들다. 어제도 할매가 내 꿈에 나와서 하루종일 울었다 아이가. 내 오늘 이 글 몬 쓰면 일 하다가 사람들 앞에서 울까봐 그냥 할매 얘기 다 적어 뿟다.


그래도 할매, 가끔은 내 꿈에 나와 줄거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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