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전에 법공부 하셨었다고 했죠? 그때랑 지금이랑 많이 달라졌어요. 지금은 남편분 특유재산이라도 혼인기간만 어느 정도 지속되면 분할이 가능해요."
신기한 이야기였다. 재산분할이 된다고...? 정말? 재산분할이...?!
남편은 어머님과 공동임대사업자로 등기되어 있다. 그러니 상당한 임대소득이 있지만, 그것은 실질적으로 어머님 것이라고 합의가 되어 있어 나는 자세한 재산상황을 알지 못했다. 공동임대사업자라면 부동산명의자 일 수 있냐고 물어보니, 공유명의자가 아니면 임대사업자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라고 한다. 그렇다면, 아마 상당한 재산이 그의 앞으로 있을 것이다.
주소만 알면 등기명의자를 조회할 수 있고, 주소를 모르더라도 법원에 재산조회신청을 하면 한 달 정도 걸려 그의 명의로 된 재산을 모두 조회할 수 있다고 했다. 연금보험이나 채권은요? 지금 전세권명의가 남편이면 전세금은 얼마인가요? 나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건 그 집 것이니까 내가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고, 알려고 들었다면 또 어떤 오해를 받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언감생심 신경도 쓰지 않았었다. 그래도 큼직한 부동산 두 개 정도는 들은 기억이 나서 주소를 조회해 보는 변호사의 얼굴이 신나 보인다. 성공보수가 걸려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얼떨떨해하는 나에게 소송을 진행할지 여부는 집에 가서 부모님과 상의한 후에 연락을 달라고 했다. 상담료 10만 원을 그 자리에서 보내고 마음이 결정되면 550에서 10을 뺀 차액을 입금하면 되고, 가압류를 하려면 30만 원 더. 가압류를 하지 않으면 재산을 빼돌리는 것은 순식간이니 하는 게 당연하지만 강요는 하지 않겠다고 해서 여전히 복잡한 얼굴로 사무실을 나왔다.
예상외의 수확에 교대역으로 걸어오는 길이 아까처럼 힘들지는 않았다. 양육권을 가질 수 있다. 내가 월급을 받고부턴 남편으로부터 한 푼도 받지 않았는데, 소송이 끝나면 제대로 양육비도 받을 수 있다. 소송에는 큰돈이 들지만 천오백만 원 정도를 예상했던 것에 비하면 훨씬 적은 금액이었고, 무엇보다 재산분할을 적게라도 단 10%, 아니 5%라도 받으면 변호사비용 따위 보전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렇다면 소송을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변호사님 동생이라면 어떻게 하라고 하시겠냐고 물어보니, 딸이라도 이혼하라고 하겠다고 대답했다. 요즘은 흠도 아니고, 이렇게 애매한 관계에서 고생하는 것보다는 명확하게 정리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일단 소송을 제기하면 다시 예전으로는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니 신중하게 결정할 일이라고. 고객의 입장에서는 꽤 믿음직한 말을 해주니 그래도 다소나마 마음이 놓였다. 이 사람 괜찮은 변호사 같구나 정말.
지하철역을 뒤덮은 변호사들의 광고를 보며, 그리고 작은 건물들마다 가득 찬 변호사사무실 표시들을 보며, 여기저기 넘쳐나는 누가 봐도 나 변호사예요. 하고 다니는 정장을 빼입은 사람들을 보며. 변호사가 되어 보겠다고 머리 싸매고 공부했던 내가 이런 일로 이 거리를 올 줄은 몰랐는데 혼란스럽기는 여전했다.
다음날.
새벽기도를 시작했다. 잠도 잘 수 없고. 무엇보다 너무너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잠에서 깨면 이 상황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결혼생활을 지속하는 것 또한 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아서 변호사의 표현처럼 어떻게든 이 애매한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고는 생각했다. 다만 이런 빠른 사태의 진행이 내가 믿는 하나님의 주관이 아니면 어떡하나 하는 것이 무섭고 괴로울 뿐이었다.
무거운 몸과 마음을 끌고 나아가면 정말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매일 아침 답을 주셨다. 더 이상 잘 수 없는데도 일어나기는 싫은 이상한 상황을 떨치고 일어나 성전에 나아가는 와중에도 내 마음은 알고 있었다. 우리 하늘아버지는 나에게 좋은 것을 주실 것이다. 이 모든 상황이 내 실수라 해도, 악마의 장난이라 해도, 결국은 그분의 주관 아래에서 모든 풍랑은 잠잠케 되고, 나는 평안하고 아름다운 바다를 즐겁게 항해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바다를 비추는 태양은 아름답고 바람은 선선할 것이며 우리 아기는 행복하고 영리하게 내 옆에 언제까지나 있을 것이라는 것을. 그러니 내 인생의 노를 주님께 맡기자. 모두 내려놓고 그분께 드리자 결심했다.
기도가 끝난 후 바로 540만 원을 계좌이체했다. 마이너스 통장에 찍힌 숫자가 훅 늘며 마음도 같이 흔들렸지만 바로 잡아야 한다. 일단 가압류는 조금 보류하더라도 소송은, 반드시 해야 한다. 그와 나의 관계를 당사자인 우리가 아니라 제삼자를 개입시켜 정리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그런 상황인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목표를 명확히 하자. 내 목표는 하루치이다. 그날그날 하루씩만 생각하기로 했다. 어떤 엉망인 모양이더라도, 밤에 잘 때 우리 아기의 발가락만 만지고 자면 된다. 아기의 발가락만 만지며 잘 수 있다면 그날은 성공이다. 난 정말 잘한 것이고, 더 바랄 것이 없다. 아기의 발가락. 동글동글하고 콤실한 냄새가 나는 아기의 발가락. 우리 아기의 발가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