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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일기 (2)

합의결렬

by 도미니

 결국은 참지 못하고 문자로 보냈으나... 얼굴을 보지 않고 말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하찮은 문자 따위로 이혼이야기를 한 이유는

1) 그와 얼굴을 보며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더 이상.

2) 지금 당장, 지금 당장, 내 화나는 속을 꺼내보이고 싶다. 이혼으로.

3) 오빠 나 할 얘기가 있어 블라블라 이 절차 하기 싫다.

4)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 가서 일주일치 밀린 빨래를 하고, 밀린 집안일을 하고 싶지 않다. 일단 집에 들어가면 모두 나의 일이고, 그것을 하지 않는 것은 결국 책잡히는 일이 된다.

이런 4가지 이유였다.

내 외부연수가 계속되면서 아기는 친정에서 지내고 있었다. 이제부터 약 3주간은 재택이라 집에서 지내야 하는데, 시험이 끝난 그와 단둘이 앉아있고 싶지가 않았다.

작년, 올해와 같은 시험이 끝나고 본 그의 모습은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서 스마트폰을 하는 것이었다. 검색을 하려면 제대로나 앉아서 하지. 앞에서 아기가 왔다 갔다 해도 변함이 없이 비스듬히 누운 건지 앉은 것인지 모르겠는 자세로 전화기를 붙들고 있는다.

정말 하루 종일.

한 번은 보다 보다 못해 일어나서 앉든가 뭐라도 좀 하라고 하니, 버럭 화를 내었다. 자기는 시험 본 것을 채점을 하고 있었단다. 남편이 본시험은 문제지 공개가 안되어 채점이 어렵다. 그래서 아마 하루 종일 검색을 하며 문제를 복기해 보나 본데... 아니 당락이야 이미 결정된 것을 그렇게 복기해서 무엇하며? 그걸 저렇게 하루종일 며칠에 걸쳐할 일인가?

그리고 엄연히 가정생활을 하며 해야 하는 일들이 있는데, 지금 채점하는 것이 부부간의 공적인 업무에 해당하는가....? 저걸 하기 위해 저러고 누워있으면 아침부터 아기를 등원시키고 집안일을 하며 또 아기를 하원시켜 데려온 나는 그걸 참아야 한다는 것인가...?

남편은 그렇게 커온 사람이다. 그 집에서 남편의 자존심은 제일 중요한 것이었고, 그래서 아무도 남편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의 일이 무엇이든 세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고, 배우자인 나도 그것을 제일 중요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다시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회의를 하며 극악의 문자를 주고받다 보니 한계가 있어서 일단은 집에 가서 이야기를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오랫동안 가보지 못한 집이라, 사실 집안 꼴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와 싸우고 괴롭게 지냈어도, 그 집은 결국 내 손으로 모든 것을 꾸며놓은 우리 아기와 나의 집이기도 했다.

그렇게 향한 집은,

열리지 않았다. 그는 비밀번호를 바꾸었다. 아마 내 문자를 받고 화를 길길이 내며 제일 먼저 한 일이 비밀번호 바꾸기였겠지. 지금 당장 열지 않으면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겠다고 했고. 그러면 또 씩씩거리며 열어줄 것을 알고 있었다. 그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어머니이고, 제일 창피한 사람도 어머니이다.

이 집이 어머님 집이고, 그러니 넌 우리 어머니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나도 결혼 후 얼마간은 어머님의 마음에 차게 해오지 못한 혼수로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었으나, 이제 그럴 이유가 없다. 돈은 정말 중요한 것이긴 해도,

세상엔 돈보다 중요한 것이 많아. 넌 내 가사노동의 가치가 50만 원도 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난 너와 살면서 집안 살림을 도맡아 했고, 아기를 낳았어. 그것만으로도 내 존재가치는 충분해. 넌 또 여기가 우리 엄마 집이니 나가라는 식으로 도어록을 바꿨겠지? 그런 유치한 수작 이제 안 통해. 우리가 이혼도장을 찍기 전까지 여기는 내 집이야. 넌 함부로 내 출입을 제한하지 못해.

이런 말을 시작으로

이혼협의를 하려고 했으나 되지 않았다. 양육권을 줄 수 없다고 한다. 책임은 다하지 않아도 집착은 강한 사람이라, 이렇게 나올 것 같았다. 나와 아기. 특히 아기는 자신의 소유물이라 절대로 뺏길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처음엔 나에게 양육비도 달라고 했다가 ㅋㅋㅋㅋㅋ 와 정말 지금 생각해도 웃기다. 본인이 키울 테니 양육비를 보내라는 이야기에 처음으로

"헛소리하네 병신"

이라고 대꾸했다. 내 입에서 저런 막말이 나온 것도 같이 살면서 처음이다. 그러더니 이제 또 본인한테 병신이라고 했다며 난리가 나서. 암튼 보는 것도, 말을 섞는 것도, 정말 괴롭고 힘든 작업이었다.

양육권협의가 되지 않으면 협의이혼은 시작할 수 없다. 자녀가 있는 부부가 협의이혼을 하려면 양육권 합의서를 함께 제출해야 한다. 합의서는 필수서류로, 없이는 협의이혼절차 자체를 시작할 수 없고 그러면 소송으로 가야 하는데... 그때의 나에게는 소송의 기운도, 자금도 없어서 차마 소송으로 가겠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천만 원 가까이할 변호사비가 아까웠고, 소송과정이 몹시 부담스러웠다. 새로 들어간 직장에 적응하며, 소송을 진행할 자신이 도무지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바보같이 양육권합의를 안 해줄 것을 알았으면서, 이런 구체적인 상황은 설정을 해보지 않았다니. 당연히 안 해줄 사람인데 뭘 믿고 덜컥 이혼하자고부터 먼저 말을 한 것인지. 내가 나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 순진했던 거지....? 아기가 없으면 난 살 수가 없는데, 아기를 지키면서 소송을 어떻게 해... 저 집은 나랑 다르게 돈도 많은데, 소송으로 가서 아기 빼앗기면 그땐 나는 어쩌면 좋지...

결국 무릎을 꿇고 빌었다.

나 좀 봐줘. 너 내가 아기 어떻게 낳았는지 알잖아.. 어떻게 젖먹이고 여기까지 왔는지 잘 알잖아.. 얘 없이 내가 어떻게 살아....

아니면 이대로 나랑 같이 살을 수 있어? 오빠 성격에 나한테 병신이라는 소리 듣고도 나랑 같이 살 수 있어? 다른 부부들은 그러고도 살더라. 서로 쌍욕하고 싸우고도 다시 웃으며 잘 살더라. 나 여태 살면서 오빠한테 잘못한 거 없잖아. 내가 속옷을 떨어지게 한 날도 끼니마다 같은 반찬 먹게 한 날도 없어. 나 정말 열심히 했잖아. 그러면 오늘 일 없었던 것으로 하고 그냥 같이 계속 살아. 난 할 수 있어. 난 우리 아기랑 같이 지내는 것 밖에 관심이 없어서 이렇게 싸우고도 없던 일로 하고 살 수 있어.

근데 오빠 그런 거 못하잖아...... 나 소송이 너무 부담스러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아. 우리 이미 부부 같지 않게 살은 지 오래야... 제발 양육권 나 줘.. 부탁이야.


합의는 결렬되었다. 7월 중순이 지났는데, 식탁에서 현관까지 걸어 나오는 발걸음이 서늘하다.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앞으로 나는, 우리 아기는 어떻게 될까.

괜히 섣부르게 이혼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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