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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일기 (1)

프롤로그

by 도미니


소장을 접수한 지 꼭 6개월이 되었다. 정말 이혼하고 싶다고 생각은 내내 해왔지만 사실 이렇게 실행에 옮길 거라고 예상은 전혀 못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일이 이렇게까지 진행이 되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울 때가 많다. 갑작스럽게 이혼을 질러버린 내 소감은, 서글픔 반. 놀라움 25%. 그리고 과연 이것이 정말로 진행이 될 것인가 하는 의문이 25% 정도인가 보다.


지난 시간을 더듬어보면, 이혼 이야기를 꽤 많이 하고 다녔다. 실제로 할 수 있을 거라고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생각하지는 못했는데, 정말 생각을 많이 했음이 분명한 것이.... 주변에서 크게 놀라지 않았다. 좀 당황하긴 했지만 음 그렇구나... 그렇게 됐구나.. 정도였다. 다행인 것은 상담을 진행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소장 접수 약 40여 일 전부터 나에게 확신을 주고자 건강가족지원센터에 상담신청을 해서 시간을 억지로 내어 진행하고 있었다.


처음 상담사가 상황을 듣고 '이혼해도 좋을 것 같아요. 남편분은 바뀌진 않을 것 같네요.' 했을 때 사실은 '어.. 정말 이혼이라고?' 하는 거부감이 있었는데, 중간에 연수로 2주인가 쉬었다가 상담을 재개하였을 때에는 어느새 '선생님, 저 소장을 접수했어요..' 하는 말을 꺼내고 있는 내가 좀 신기하고 놀라웠다.


남편과는 작년 2월 1일 이후로 제대로 이야기해 본 적이 없다. 크게 싸우고, 내 나름 크게 충격을 받고 나서 모든 기대를 접어버리니 살기는 편했던 것 같다. 물론 화는 정말 많이 나서, 한동안 얼굴을 펴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정말 많은 고민과 생각을 했다. 한번 얼굴을 마주치고 웃은 적도 없었고 오직 필요한 말만 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여 욕은 먹지 않으려고 할 도리는 무표정하게 그저그저 했다. 일을 하면서도 청소와 빨래를 하고 새 반찬으로 저녁을 지었다. 출장을 가서 집에 없을 때에는 일주일치 밥을 해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그래도 이러나저러나 이혼을 요구했을 때, 욕을 먹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남편의 시험이 7월 16일 이어서 이를 악물고 참아왔다. 그 기간을 증거를 수집하는 기간으로 생각하자 하기에는 사실, 증거수집이란 것이 너무 험난하고 어차피 출장과 연수로 마주칠 일도 별로 없었던 터라 그럴 만한 상황도 생기지 않았다. 혼자서 아기를 데리고 이리저리 놀고 또 땀을 뻘뻘 흘리며 다니는 것이 몹시 힘들어도 하소연할 사람도 없다는 것이 좀 화가 나긴 했다. 아기를 돌보는 것이 고돼서가 아니라, 이렇게 열심히 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를 평가절하한다는 사실이, 화가 난 것이었는데 이런 억울한 마음도 소장으로 전달될지는 알 리가 없다.


엄마가 아기를 돌보는 것은 다른 가족이 돌보는 것의 7배의 품이 든다. 우리 아기는 어떤 놀이를 좋아할까. 어떤 활동을 하면 도움이 될까. 생각해서 찾아다닌다. 빅데이터를 굴려 최근에 한 놀이는 제외하고 가능한 새로운 자극을 주고 싶은 것이다. 난 운전도 못하고, 게다가 경제력이 없던 시절의 습관까지 남아 아이를 업고 쨍쨍한 햇볕 아래를 걸어 등하원을 시키고, 버스를 타고 재밌는 놀이터와 공원을 찾아다녔다. 가방엔 아기에게 먹일 물과 기저귀, 여벌옷과 간식, 때로는 도시락. 당연히 집에 아기와 있을 때도, 둘 중 하나가 심히 아프거나 하지 않으면 영상은 보여주지 않는다.

강의를 나가야 할 때와 운동을 갈 때 한두 시간 정도 아기를 남편에게 한두 번 맡긴 적이 있었지만, 낮잠시간에 맞췄다. 그는 아기가 잘 때 아기를 돌보고, 아기가 깨면 영상을 보여준다. 밖에서 종종거리며 강의준비를 하고 헐레벌떡 집으로 뛰어들어온 나에게, 자신은 아기를 돌봤으니 당연히 니가 차려내는 저녁을 먹겠다던 사람이다. 그와 나의 가정에서의 시간의 밀도는 차원이 달랐다.

그럼에도 들어야 했던 그의 이상한 이야기와 태도들을 이제 더 이상 견디고 싶지 않았다.

남편이 시험을 보는 날인 7월 16일은 시댁에 가서 나름 그때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었다. 잘 포장된 주꾸미 볶음을 배달시키고 난 보고서를 쓰러 갔다. 형님네 간식인 에그타르트까지 해서 10만 원 정도를 썼었나. 일을 마치고 시댁에 돌아가니 시험을 보고 온 남편이 와 있었고, 그러고 친정으로 가다가 또 작은 다툼이 있었다. 사실 그 다툼은 싸울만한 것은 아니었는데, 아마 나도 화가 차 있었겠지. 그만 살자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다음날 용산에서 보고서를 쓰다가 문자로 통보했다. 이제 정말 그만 살자고.

정말 정말 화를 내는 그를 보며 그저 궁금했다. 왜 저럴까. 왜 저러는 걸까. 그럼 너는 이대로 우리가 같이 살 거라고 기대했던 거니. 서로 말을 안 한 지가 지금 몇 달이 되었는데. 내가 연수를 가서 너한테 전화 한 통을 하지 않았는데. 넌 그러는 나를 보며 정말 아무 생각을 안 했니. 사실 생각해 보면 그는 시험 때문에 사고가 정지되어 있을 수도 있다. 내가 먼저 고시에 붙어버려서 아주 화가 났을 테니까. 아주 옛날, 이야기하기도 창피하지만 연애할 때도 그랬다. 토익을 같이 봤는데 내가 먼저 900이 넘자, 자기 영어공부해야 한다고 굉장히 경직된 태도를 보였었다. 그럼 이제까지 한 건 영어공부가 아니고 뭐였길래.

로스쿨 입시 때도 그랬지. 같이 봤는데. 내 점수가 더 잘 나오니까. 엄청나게 방어적이 되었었다. 이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그 태도는 나를 만나 나에게 시간과 정성을 쏟느라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았으니, 앞으로는 그러지 않고 공부에 전념하겠다....? 그런 모습이었다. 그전까지는 내키지 않는다는 나를 로스쿨에 보내겠다며 시험만 보라고, 나는 LEET 점수만 만들어놓으면 본인이 원서접수고 뭐고 다 하겠다고 하더니만 정작 그의 점수가 나보다 훨씬 낮게 나오자 마음이 힘들다며 안색을 바꾸고 발을 빼던 그 모습이 정말 눈에 선하다. 사귄 지 얼마 안 됐을 때인데 그때도 정말 오만 정이 떨어져서 헤어지려고 했었다.


내가 지금처럼 멀쩡했다면 그때, 그때 헤어졌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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