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벽돌로 지어진 장미빌라 가동의 이웃들은 서로 친하지 못하다. 내가 어렸을 때 아파트에서는, 이사를 가면 주변의 이웃들에게 떡도 돌리고 반찬도 나누고, 엄마가 집에 없을 땐 잠깐 옆집에서 시간도 보내곤 했던 것 같은데 이곳엔 그런 것이 없다. 이곳의 사람들은 조용히 이사를 와 기척 없이 지내며, 계단에서 사람을 마주쳐도 고개를 숙이고 이야기가 없다.
나도 이 동네에 처음 왔을 때는 주변의 이웃들에게 인사할 겨를이 없었다. 파산이나 빨간딱지 같은 무서운 말들이 휘몰아쳐 도망치듯 쫓겨온 이곳에, 아버지는 우리 남매에게 자주 미안하다고 하셨고 조금만 버텨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가자고 하셨다. 다들 이곳을 보금자리나 종착지가 아니라 어려운 상황에 쫓겨 어쩔 수 없이 잠깐 머무는 곳으로,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닌 곳으로 생각했다. 이곳에 이사 오는 사람들의 눈에서는, 자기 집을 장만했다는 행복감보다,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감정을 읽기가 쉬웠다. 나에게도, 가족들 모두가 그런 표정을 한 채 작은 집에 흐트러진 큰 이삿짐을 한참 동안 정리 못 하던 무더운 여름이 있었다.
201호에는 젊은, 아니 어린 신혼부부가 산다. 하지만 왜인지 둘이 아니라 그 또래의 여자가 한 명 더 사는데, 어떠한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 집에는 생수와 배달 음식이 자주 배달되고 항상 쓰레기가 버려져 있다. 지나치며 아내인지 동거인인지 모를 그 두 여자 중 한 명과 눈을 마주친 것이 이웃인 우리가 한 소통의 전부였다.
402호에는 노부부가 산다. 전세나 월세가 아닌 자가로 집을 산 그들은 처음 이사를 와서 자발적으로 주변을 정리하고 쓰레기를 치웠지만 오래가진 않았다. 이곳의 사람들은 이곳이 자신의 집이 아닌 것처럼 쓰레기를 정리하지 않고 마구 버리는 경향이 있다.
우리 밑 집에는 40대 중후반의 한 남자가 살았다.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어머니는 그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했다. 금방 죽을 것 같은 거무죽죽한 얼굴에 말수가 없는 그는 외출이라고는 병원을 오가는 것뿐이고 눈빛이 이상해 금방이라도 사고를 일으킬 것 같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그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집에서 소음을 내지 않으려고 했고, 어지간해선 그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하루는 집 화장실로 밑 집의 담배 냄새가 심하게 올라왔던 적이 있었다. 보통 같았으면 밑 집에 가서 얘기했겠지만, 우리는 그냥 아무 말 없이 화장실 틈새에 실리콘 칠을 하는 것으로 이 일을 해결하기로 했다.
활짝 열린 그의 현관문을 처음 본 것이 그 며칠 뒤의 일이었다. 집 안에서는 의외로 환한 얼굴로 가구를 옮기고 있는 중년 남성의 모습이 보였다. 무언가 잘 되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는 것 같았다. 굳이 걱정할 것이 없었다고 안도했는데, 그날 밤 어머니에게 그 남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남자는 우리 집에 담배 냄새를 올려 보낸 며칠 뒤 더욱 검어진 얼굴로 병원에 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그날 본 인상 좋은 남자는 망자의 집을 청소하고, 집 안의 가구를 버리러 온 청소업체 인부였다.
그가 죽고 나서야 그를 찾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의 집 현관문에는 가스 점검 3차 방문 후 ‘살고’ 계신다면 꼭 연락을 달라는 도시가스공사의 안내문과, 장애인 협회의 안내문, 대부 업체가 찾아왔다 간다는 안내문이 덕지덕지 붙었다. 우편함에도 그를 찾는 회사와 협회의 편지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그의 삶 중에서도, 사람이나 가족 대신 회사와 협회만이 그를 찾고 쫓은 것 같았다. 그에게는 이곳이 현실을 부정하고 재기를 꿈꾸는 마지막 도피처마저 되지 못한 듯했다.
화장실 배관을 타고 온 담배 냄새가 이웃인 내가 맡은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숨이었다. 삶에서는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던 그가 쫓겨 간 삶 밖의 그곳에서, 그는 아직 사람이 살고 있는 장미빌라 가동에서보다 더욱 편안하게 지내고 있을까. 반지하의 점집에서 피어오른 향이 새벽의 건물을 가득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