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는 너가 꿈에 나왔어. 하이얀 건물 안 수많은 사람들을 헤집고 다니다 보니 너를 만났고, 우리는 헤어진 적이 없다는 듯이 반갑게 인사했어. 정말 오랜만이었어. 유치한 말장난도 다시 주고받고, 너가 앞장서면 나는 뒤에서 네 손을 잡은 채 기차 놀이를 하며 계속 걸었어. 우리 그렇게 장난치며 놀기를 좋아했잖아. 그런데 너도 나도, 이게 꿈인 걸 알고 있었어. 너는 곧 내가 꿈에서 깰 거란 걸 알았고, “이렇게라도 만나 놀아서 재밌었어, 나는 잘 지내. 너도 잘 지내구. 좋은 하루 돼.”하고는 슬픈 기색도 없이 작별 인사를 했어. 그저 너를 이렇게 좋게 만나 행복한 느낌만 든 채, 나는 꿈에서 깼어. 새벽 네 시의 어두운 내 방은 너무도 쓸쓸했어.
성수역 1번 출구,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그 짬뽕집이 생각나. ‘보통’ 한 그릇을 시켜도 양이 꽤 많아서, 앞접시 두 개에 짬뽕을 나눠 먹던 그날들. 눈치는 좀 보였어도, 그날 그렇게 육천 원을 저녁값으로 쓰고 나면 더는 돈 쓸 일이 없었고, 우리는 너가 아르바이트했던 빵집을 지나, 내가 아플 때 너가 약을 사줬던 그 약국을 지나 공원으로 향했어. 아, 그러고 보니 그 길에 있던 횟집이랑, 감자탕집은 끝내 가 보지를 못했네. 좋은 날에 한 번은 가기로 했었는데.
서로의 무릎을 베개 삼아 누운 공원의 밤하늘엔 별이 하나 없어도, 우리는 이야기를 지어내며 별에 이름을 붙였어. 나는 사실 그때 그날, 너 생각만 했던 것 같아. 좁디좁은 공원을 몇 바퀴씩 돌고 나면 막차 시간이 다가오고, 나는 너를 그 골목길에 있는 너의 집 앞까지 바래다주고는, 한참 안고 있다가 너가 문을 열고 들어가기까지 지켜봐. 그제서야 내가 뒤돌아가면, 너는 내가 골목 어귀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더라. 참 좋은 날들이었어.
그렇게 가난하게 사랑했던 그날들, 유치한 말장난에 해맑은 웃음을 터뜨렸던 그날들이 가끔은 그리워. 헤어질 즈음에는 너를 그렇게 증오하던 나인데, 시간이 지났다고 나쁜 기억은 다 잊었나 봐 바보같이. 너를 다시 만나지는 않을 거야. 나는 너를 만나 행복한 만큼 불행하기도 했으니까. 그래도 그때는 너를 많이 사랑했어. 지금도, 사랑하지는 않지만 많이 그립기는 하다. 잘 지내? 나는 잘 지내. 내가 누군가를, 다시 너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