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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u Feb 04. 2023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사람은 다면체

1.

내가 그녀와 헤어졌던 건, 그녀를 사랑하지 않아서라기보다 모든 면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좋은 면을 사랑하고자 하면 그 이면의 모든 모습들 또한 껴안아야 했고, 그곳에서 느끼는 아픔이 더욱 커질 때 나는 이별을 말했다. 그것은 감정적인 결심이라기보다는 이성적인 판단이었고, 나는 여태껏 그 판단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나는 덜 행복한 대신, 더 불행하지도 않은 삶을 선택했고, 예상대로 그렇게 무미건조하게 살아온 것이다.     

하지만 가끔 상상력은, 그렇게 입체적이었던 시절을 해체해 행복한 모습만을 모아둔 단면을 내게 보여주곤 한다. 그러면 나는 ‘참 좋았었지’하는 회상을 한 뒤에, 어떠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그 이면을 떠올리려 노력한다. 상상력은 언제나 우리에게 단면만을 제시하지만, 사랑이란 그 이면의 모습도 받아들여야 하는 입체적 행위라는 것을 종종 잊을 때가 있다.


2.

요즘에는 ‘왜 이렇게 사랑이 어려울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나이 때문일까. 새로운 사람을 만나 호감을 느끼고, 연애의 감정까지 이어가는 것이 어렵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되었다.


호감을 느꼈던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을 자주 마주하지 않으면,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사랑 아니면 미움 한쪽으로 편향되어 간다. 그 사람이 했던 말 한마디에 어떤 뜻이 담겨 있을까, 혹은 그 사람의 어떤 버릇을 보건대 어떠한 점이 나를 불행하게 할까를 끊임없이 상상하는 것이다. 상상력은 그렇게 사람의 편집된 단면만을 비추고 키워, 그 사람을 사랑하고 미워하게 한다. 그때 사랑하고 미워하는 대상은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나의 상상인데도 말이다. 타인에게서 시작되긴 하더라도, 사랑과 미움은 모두 내 마음속에서 커지는 것이다.


3.

사람은 ‘입체’를 상상할 수 없다.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장면을 통해 그것이 입체라는 것을 ‘이해’할 뿐, 결국 우리가 직접 보고 상상하는 장면은 모두 평면적이다.


하지만 세상과 사람은 입체적이다. 물체의 이면에는 아직 내가 보지 못한 뒷모습이 있고, 사람의 이면에는 아직 나에게 드러내지 않은 또 다른 모습이 있다. 평생 상상만을 짝사랑할 것이라면 상관없지만, 실제 세상에서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 이면을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사랑할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 본다. 나에게 “사람은 다면체”라는 것을 가르쳐준 이를 사랑할 때, 우리는 각자의 이면부터 드러내 서로를 끌어안아 주었고 그래서 나는 당신을 사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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