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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u Mar 27. 2023

이름 없는 대학을 떠나며

나는 참 성공적인 대학 생활을 했다.

학점이 4점을 넘겼거나, 전공을 세 개 해서가 아니라, 매 순간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철학을 배우고 싶어서 철학과에 진학했고, 모르는 게 있으면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누구에게나 배웠다. 잘못된 게 있으면 잘못됐다고 말하고, 교수에게 잘 보이려고 아부하지 않았다.


돈이 없으면 정당하게 벌어 쓰려고 여러 알바를 했고, 사람들과 놀고 싶으면 재밌게 놀았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사랑한다고 말했고, 사랑을 받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을 때는 그것을 인정하고 충분히 괴로워했다.


물리학과 경제학을 배워보고 싶어서 복수전공을 했고, 좋아하는 공부라 점수가 나쁘지 않게 나왔다. 그뿐이었다. 복수전공을 하기에 앞서 내가 문과 출신이라던가, 지방대에 다닌다거나 하는 변명을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변명하고 거짓말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낸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많은 연봉과 좋은 차를 얻고, 무언가 대단한 사람이 되려고 스스로를 학대하고 구박한다.


하지만 삶은 그다지 대단한 게 아니다. 나도 당신도 그저 한 마리 짐승이고,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갈 뿐이다.


삶을 비관하는 게 아니다. 삶에 대해 붙여놓은 여러 거짓된 수식을 지우고, 가장 단순하게 진실을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는 무언가 대단한 업적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온 것처럼 말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그냥 우연히 태어났다. 모두의 삶이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삶은 그냥 살아가면 된다.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을 가질 필요도 없다. 때로 행복해하고, 또 그만큼 괴로워하고, 슬퍼할 때는 슬퍼하며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된다.


그러자면 스스로에게 솔직해져야 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이고, 하기 싫어하는 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나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고 스스로를 타이르고, 길들일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라야 스스로의 삶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 계속 거짓말하고 변명해 가며 그 정답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할 뿐이다.


정든 학교를 떠나며, 후배들에게 한 가지 선물을 하고자 한다. 취업 자리를 알선해 주거나, 토익 토플을 열심히 하라고 하는 선배가 되고 싶지는 않다.


그 선물이란, “스스로에게 변명하지 말 것.” 이 한마디다.


철학과가 없어지고 문화콘텐츠로 학과명이 바뀌며, 학생들의 자존감이 낮아져 있는 걸 자주 확인한다.


“우리가 공부를 못했으니까 지방대에서 만났지.”, “우리는 지방대라 안 돼.” 같은 식의 자조 섞인 농담을 할 때가 그런데, 사회를 공부하는 인문학도가 학벌주의에 빠져 스스로를 괴롭힌다는 건, 이공계에서 덧셈 뺄셈을 못 하는 것처럼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지방대여서 뭘 못하는 게 아니라, 못할 거라는 생각이 진짜로 그 일을 못 하게 한다. “이래서 안 돼.”, “저래서 안 돼.”, “남들 다 하니까 토익, 토플을 해야 해.” 같은 변명을 늘어놓지 말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최대한 안 하면 된다.


어떤 강의가 재밌어 보이면 “학점 관리 해야 해.”, “어려울 거야.”, “난 못할 거야.” 같은 변명하지 말고 무작정 들어보고, 놀고 싶으면 놀고,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말하자. 해보고 안 되면 마는 것이다. 삶의 정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들이 잘살았으면 좋겠다. 내 대학 생활의 성공은 솔직한 내 모습을 받아준, 당신들의 덕이 크기에. 내가 떠나도 더 좋은 학과, 더 나은 우리가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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