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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당신의 바다 이야기

호스피스 봉사자의 시선

by 미묘

매섭게 차가웠던 겨울이 갔다. 어느덧 얇아진 옷소매를 팔꿈치까지 접어 올린다. 호스피스 병동으로 향하는 길에 마주하는 화단의 꽃이 작년보다 더 빨리 피었고, 햇살도 매일 더 부드러워진다. 나는 여전히 이곳, 호스피스 병동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그분을 만난 것도, 따뜻한 봄날의 오전이었다.


발마사지를 해드리는 내내 병실 침대에 누워 창밖만 바라보고 계셨다. 창문으로 새어 들어온 햇볕이 환자의 주름 사이를 분주하게 오갔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건조한 피부와 부기, 무엇보다도 공허함으로 가득 찬 눈빛이 씁쓸했다. 적막했던 공기를 뚫고 시작된 환자의 이야기는 담담하게 이어졌다.


"평생 낚시만 하고 살았어요."


일과 낚시에만 빠져 살았다. 밤낮없이 일하고 쉬는 날이면 낚시하러 가고... 그렇게 수십 년이 흘렀다고 하셨다. 갯바위 낚시를 좋아했던 터라 며칠을 바다에 묶여 지내기도 했다. 손바닥보다 큰 물고시를 낚은 날보다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는 날이 많았지만, 바위를 내리치는 파도가 그땐 그렇게 좋았다고. 그래서 그렇게 살았노라고.


그러다 문득 이런 말을 하셨다.


"그땐 몰랐어요. 돌아보면 평생 쓰레기만 쥐고 산 것 같아요."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발에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만 끄덕였다. 여전히 창밖만 바라보고 있는 환자는 봄바람보다 더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남들처럼 열심히 살면 그게 최고인 줄 알았는데, 정작 쓰레기만 쥐고 살았다고 했다. 결국엔 가족도, 나 자신도 돌보지 않은 시간이라고.


치열했던 시간이 지나고 이제야 진짜 내 삶을 살아 보려고 생각한 즈음 몸속에 암이 퍼져 있었음을 알았다. 삶의 무게를 내려놓으니, 아내와 걷는 병원 정원도 바다 앞에 펼쳐진 모래사장을 걷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동안 한 번을 함께 하지 못한 게 미안하고 속상하다고, 이제는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바다에 갈 수 없다고...


"이제 나는 알 것 같아요. 자신의 삶을 자기 의지대로 살아가는 게 가장 큰 행복인 것 같아요. 대단할 필요 없어요. 그냥 내가 나로서 사는 거. 그저 돈 벌어다 주는 게 가족들한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안에 내가 없었어요. 바다에 내 마음을 던져두는 게 아니라, 마음을 함께 나눠야 했어요."


마사지하던 손을 잠시 멈추고, 환자의 이야기를 한참 곱씹었다.


그렇게 몇 주를 더 만나며 바다낚시 이야기를 들었고, 환자 명단에서 그분의 이름을 찾지 못한 어느 날은 바다가 많이 생각났다.






그날 이후로 내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뀐 건 없다. 무엇을 해야 '잘 사는 것'인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세상의 눈을 떠나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으려 애쓰는 날이 늘었다.


잠들기 전, 곰곰이 떠올린다. 지금 내 손에 움켜쥐고 있는 건, 쓰레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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