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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찾아봐도, 그럴 듯 한 이유가 없다.

호스피스 봉사자 이야기

by 미묘


호스피스에 왜 가는지에 대한 물음은 수시로 찾아온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자원봉사를 10년 넘게 하고 있지만, 가족이나 아주 가까운 친구 몇몇만 내가 자원봉사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일까, 호스피스에 가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물을 때가 더 많다.


시작은 그랬다. 나에게 보답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나누자는 원대한 포부. 하지만 십여 년의 시간 속에서 나의 첫 마음은 흐릿해지고 물안개를 가득 머금은 수묵담채화처럼 담백해졌다.


일요일 정오가 넘어가면 불현듯 시간이 아깝다고 느껴진다. 마치 별똥별을 보듯 일주일에 단 하루 있는 휴일을 초 단위로 흘려버리곤 한다. 그럴 때 문득, 월요일 아침마다 향하는 호스피스 자원봉사에 대해 사뭇 진지한 생각을 하곤 한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꼭 가야 하는 걸까? '난 왜 가는 거지?'


습관은 무섭다. 월요일 아침이 되면 급하게 일어나 전철을 탄다. 그리고 세포가 움직이는 대로 몸을 맡기고 정신을 놓는다. 아무리 멍을 때려도 기가 막히게 환승을 하고 병원에 잘 도착한다. 내가 호스피스에 가는 이유를 굳이 골라 보자면, 내 일상에 유일한 습관이라고 할까.


더 무서운 건 '만성피로'다. 제법 익숙해져 버린 호스피스 병동에서 오만함을 발휘하곤 한다. 환자와 보호자와 함께 울먹이고 마음 아픈 시간들이 있는가 하면, 거의 가수면 상태에 빠져 기계적인 발마사지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마스크에 숨어 하품을 연달아하면서 가장 강렬하게 묻는다. '난 왜 여기 온 거지?'


이런 나를 마주하며 부끄러운 마음을 키운다. 그런 것도 모르고 대게 병동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내게 따듯한 말들을 아낌없이 해 주신다. 젊은 사람이 여기에서 자원봉사도 하고, 천국에 갈 거라고. 그러면 나는 대답한다. "천국은 못 갈 것 같아요. 밖에서 마이너스로 살다가 여기서 조금이나마 플러스 한 덕분에 겨우 0이 된걸요."


오르락내리락 정신없이 살다가 결국엔 0으로 수렴하는 리미트 그래프처럼, 오늘도 난 정신없이 하루를 보낸다.


일상은 피카소가 그려 놓은 입체파의 작품을 보는 것 같다. 초등 저학년들과 함께하는 하루는 제각각의 모습으로 면면이 다르게 구성된다. 칭찬과 단호한 어조를 넘나들며 유쾌한 수학의 세계로 시작해서 깊은 사고까지 도달해 간다. 이런 주 업무는 차치하고, 구토, 코피, 콧물, 대소변 실수까지... 부가적인 사건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럴 때 나의 모습이 썩 마음에 든다. 그런 것쯤은 별거 아니라는 건방진 태도.


태도만큼이나 실력이 나이스하다. 호스피스 자원봉사 10년의 짬이 발휘된달까. 누군가에게 큰 사건으로 남게 될 일을 작은 해프닝으로 만들어 준다. "누구나 그럴 수 있고, 별 일 아니니, 수학 문제 푸는 것에나 집중해."라고 말하며 덤덤하게 대처한다. 그러면 사건의 당사자나 강의실 안의 다른 어린이들도 놀란 마음을 추스르고 수학 문제를 푸는 데 집중한다. 물론 힐끔거리기도 하고 친구를 놀리는 발언에 혼구녕이 나기도 하지만.


내가 얻은 작은 능력치라면 이런 거 정도? 여전히 난 무엇을 위해, 왜, 호스피스 병동에 향하는지 알지 못한다. 정답을 알 수 없지만, 그래서 또 습관처럼 호스피스에 간다. 인생에 노련해진 할머니가 되었을 때, 그때쯤이면 호탕하게 웃으면서 그동안 호스피스에서 자원봉사했던 나의 마음을 또렷이 말할 수 있을까?


"나... 여기 왜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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