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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고지 - 말하지 않는 마음

호스피스 병동 이야기

by 미묘


봄볕 같은 할머니였다. 내 손을 꼭 잡는 할머니에게서 말간 온기가 느껴졌다.


"빨리 나아서 퇴원해야 하는데... 우리 영감이 아파요. 그래서 애들이 지금 간병하느라 고생하고 있어요."


말문이 막힌 채, 잠시 병실 창 밖을 응시했다. 나는 그 말 너머에 있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암환자였던 할아버지는 말기가 되어서야 병을 알았고,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로 가정형 호스피스로 연계하여 관리했다. 할아버지를 병간호하던 할머니는, 허리가 아파서 병원을 찾았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계셨다.


할머니 또한 말기암이었고, 척추로 전이된 암 때문에 허리가 아팠던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조심스레 '진실고지 보류'라는 말로 감추었다.


가정에서 자녀들의 간호를 받던 할아버지는 며칠 전, 끝내 세상을 떠나셨다. 그리고 자녀들은 '일단'말하기 않기로 했다. 할머니에게 말하지 못하는 비밀이 늘었고, 우리는 '웃음'이라는 보자기로 비밀을 꽁꽁 싸두었다.


환자 본인의 상태를 제대로 알고, 남은 삶을 소중히 살아내는 것. 그게 그 사람을 위한 거라는 걸,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남은 할머니의 마음에 어떤 파문을 일으킬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봉사자들도 아침 브리핑 시간에 당부를 받는다.

"호스피스라는 말은 하지 말고, 죽음 혹은 암이라는 단어도 피해 주세요."


마음속으로 한 번 더 되뇌고, 할머니와 마주한다. 나를 바라보며 밝게 이야기하는 할머니의 눈이 선하다. 빨리 나아서 집에 가겠다는 할머니의 말에, 그동안 호스피스에서 하지 않았던 대답을 했다. "네~ 나을 거예요. 식사 잘하시고, 좋은 생각만 해요 우리."


할머니의 눈가에 고인 미소가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 아릿하다. 말하지 않는다는 것, 때로는 말하는 것보다 더 큰 마음의 결정을 필요로 한다.


젊은 사람이 참 기특하다며, 내 손을 연신 쓸어내리는 할머니의 손을 더 꽉 마주 잡는다. 말로 전하지 못한 진심을 온기에 실어 본다. 언젠가 진실을 마주하게 될 할머니를 위해. 너무 많이 힘들지 않기를, 그리고 끝까지 용기 내서 살아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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