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차를 기다리며
성향이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겠지만, 나의 '말'은 어떤 장소에서 누구와 함께 하는지에 따라 변하는 폭이 크다.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말수가 적어진다. 매주 만나며 제법 친근해진 환자와 보호자도 있지만, 말보다 눈빛으로 마음을 나눈다. 때로는 말 한마디보다, 눈을 맞추고 마음으로 내미는 작은 손길 하나가 큰 위로가 되기도 한다.
보통은 그들이 지나온 암투병의 격정적인 순간들로, 지쳐있는 사람들을 많이 마주한다. 그러다 종종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보호자를 만나기도 한다.
"귀한 일 하시네요, 나중에 저도 이런 봉사를 하면서 살아보고 싶어요."
호스피스 병동의 무게를 체감하고 있기 때문일까. 내게 말하는 눈빛이 참 단단했다.
환자의 입을 통해 이런 말을 들을 땐 마음이 먹먹해진다. 누군가의 회한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앞으로 하겠다는 다짐이 아닌 지난날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가 짙게 묻은 말.
환자를 돌보던 가족, 보호자가 이런 말을 건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한다.
"꼭 해보세요. 봉사라는 게 누군가를 돕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상하게 제가 받는 게 더 많은 일이더라고요."
'호스피스'라는 말이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는 '죽음'이라는 이미지로 덧씌워져 있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가능하면 최대한 모르고 살고 싶은 곳처럼. 하지만 병동에 들어온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더 일찍 호스피스에 들어왔으면 좋았을 텐데요."
"겁이 나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럴 때마다 나는 바란다. 더 많은 사람들이 호스피스를 알고, 공감하고, 함께해 주기를. 그래서 나도 모르게 적극적인 사람이 되곤 한다. 조용한 병동 안에서 난 혼자 바쁜 홍보대사가 된다. 일상을 나누는 주변 사람들에게는 쉽게 꺼내지 않는 봉사 이야기가 이곳에서는 메인 주제다.
호스피스 봉사 12년째 막내다. 올해도 '호스피스 신규 봉사자 모집'안내문을 보며 괜스레 기대해 본다. 1년 차가 들어오기를... 물론 그동안 새로운 봉사자들을 많이 만났지만, 늘 수십 년씩 차이나는 나이에 어른 공경을 우선시하게 된다. 선후배가 없는 봉사자들의 세계에서 난 늘 후배가 된 듯 엉덩이를 가볍게 한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자라온 탓에 어른이 움직이기 전에 먼저 앞장서는 습관성 엉덩이가 장착되어 있다.
호스피스 봉사에 관심을 보이는 보호자에게 적극 홍보를 하면서 잊지 않는 말 한마디가 있다.
"봉사하면서 가까운 가족을 하늘나라에 보내게 되는 일을 겪으면, 호스피스 봉사를 한동안 중단하게 돼요."
지금은 이 시간을 온전히 보내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야기한다. 가족을 떠나보낸 상실이, 너무 가까운 자리에서 비슷한 풍경으로 마주하면, 눈에 담긴 환자의 모습이 내 각족의 마지막 순간으로 겹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남겨진 사람에게 호스피스 병동은 어쩌면 슬픔과 그리움이 뒤섞인 곳이 될 터였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가족을 떠나보낸 봉사자에게 수개월의 휴식이 권장된다. 애도의 시간을 충분히 받아들여야 한다.
호스피스 병동은 이렇게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 가장 조용하게, 가장 깊게 그 사람의 삶을 품는 공간이다. 나는 이 공간이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고 따뜻하게 다가가기를 바란다. 그러면 언젠가는 이곳을 위로와 안온함으로 찾아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1년차가 들어와도 여전히 난 (자칭) 귀여운 12년차 막내겠지만, 인생의 관록을 겸비한 1년차를 기다린다. 아직은 인생에서 배워야 할 게 많은 애송이니까. 언젠가는 슬기로울 호스피스 봉사자 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