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자원봉사자 이야기
하나부터 열까지 다 널 위한 소리
가수 아이유가 그랬던가. 다 널 위한 소리라고. 오늘따라 애정하는 가수 아이유의 목소리가 호스피스 병동에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봄비가 내리는 날. 봄의 시작 치고는 바람이 매서웠다.
고요한 듯 분주한 호스피스 병실에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대신했다. 어느샌가부터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금기시되는 사항은 아니지만, 환자들이 안녕하지 못했을 밤을 보냈다면 나의 물음에 적절한 대답을 찾지 못할까 봐 괜스레 마음을 쓴다.
오늘도 기웃기웃 병실 공기를 살피며 들어갔다. "봉사자입니다~ 발마사지 해 드릴까요?"
환자의 손을 꼭 잡고 있던 보호자가 기다렸다는 듯 나를 반겼다. 호스피스 병동에 오신 지 며칠밖에 되지 않은, 새로운 환자였다. 발마사지를 해드리는 내내, 70대 초반의 환자와 그를 간병하는 아내가 손을 잡고 계셨다. 거친 숨과 가래로 의사소통이 원활해 보이지 않는 환자였기에 옆에 꼭 붙어 있는 아내가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였다.
"또~ 또! 손으로 콧줄 빼지 말라니까?!"
아내가 핸드폰 메시지를 확인하려고 남편의 손을 잠시 놓은 사이, 환자가 콧줄을 빼려고 하셨다. 다행히 미수에 그쳤지만.
아내에게 손이 묶여 버린 남편이 "으~으!"하고 소리를 내자, 발마사지 하는 나의 눈치를 살피며 아내가 말했다.
"조용히 좀 해~! 어젯밤에도 계속 소리 내서 나도 잠 못 자고, 여기 병실 사람들 다 잠 설쳤어! 으이구~"
신기하게도 아내의 잔소리에 남편이 즉각 반응했다. 조용해진 병실 공기를 뚫고 아내가 이야기했다.
"미우나 고우나 내 옆에 오래 있어줬으면 좋겠어요. 하루 종일 손 잡고 있는 게 나도 피곤한데, 평생 같이 살면서 이렇게 오래 손잡고 있었던 적이 있나 싶어..."
하나부터 열까지 다 널 위한 잔소리에는 70대 노부부의 애정이 가득 묻어 있었다. 그때였다.
아줌마~ 아줌마~
눈 감고 있던 환자가 허공을 바라보며 이렇게 외쳤다. 나는 얼른 발에서 손을 떼고 환자의 반응을 살폈다. 림프 순환 마사지라서 발마사지의 강도가 세지는 않다. 하지만 혹여 환자가 불편했을까 싶어 즉각 발마사지를 멈췄다. 그런데 옆에 있던 아내가 씩씩 거리며 말했다.
"아니, 옆에 마누라가 떡하니 손 붙잡고 있는데, 어떤 아줌마를 찾는 거야? 누군데?! 이름 대봐~!"
대답 없이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남편을 향해 아내의 잔소리가 계속 됐다. 대체 이름이 누구냐, 마누라가 옆에서 고생하는 건 보이지도 않냐... 이야기를 계속하면서도 남편이 행여 콧줄을 뺄까 싶어 꼭 잡은 두 손은 놓지 않았다. 사실... 여기엔 약간의 오해가 있었는데, 나는 환자가 한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었다.
"하지 마~ 하지 마~"
힘들었던 지난밤도 싹 잊고 통잠에 이르게 할 발마사지라고 자부하지만, 만사 귀찮음엔 방도가 없다. 처음부터 아내가 원했던 발마사지였고 환자는 컨디션 악화로 힘든 시간을 보냈었기에 발마사지가 영 마뜩지 않았었다.
잔소리하는 아내의 표정이, 세월을 뛰어넘어 신혼의 알콩달콩했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70대 할머니의 주름 사이로 장난기가 가득했다. 나를 향해 찡긋 웃어 보이며, 남편에게 '미자 아줌마? 영길이네 아줌마?' 등의 실명을 거론했다.
옆 환자의 보호자와 통합 간병인이 기웃 거리며 쿡쿡 웃었다. 꽃잎을 다 떨구던 차가운 봄비가 어느새 그쳤다. 구름을 비집고 모습을 드러낸 햇살 덕분인지, 일흔 살 할머니의 귀여운 잔소리 덕분인지, 병실에 온기가 도는 것 같았다.
"발마사지 그만하라고 하셨던 건데... 억울하게 잔소리를 콤보로 들으셨던 환자분. 할머니가 민망하실까 봐 오해는 풀어 드리지 않고 왔네요. 부디 오늘 밤은 평안하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