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모양은 다르다. 그 고통이 누군가의 삶을 잠식시키는 모습 또한 모두 달랐다. 경중을 판단할 수도, 섣불리 다가가 위로할 수도 없다.
큰 소리가 오갔다.
"엄마, 여기 이 사람들은 봉사하는 사람들이야. 엄마 발마사지 해준다고 오신 거야. 신경질부리면 어떡해."
엄마를 간병하고 있는 딸은 이제 겨우 스무 살을 갓 넘긴 듯했다. 이미 수일을 병원에서 지냈는지, 애써 힘내서 말하는 얼굴이 지쳐 보였다.
"저희는 괜찮아요~"
발마사지를 준비하며 말했다.
우리 목소리를 들은 환자는 화를 내며 지금 무슨 대화를 나누는 건지 물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어린 시절 엄마가 딸에게 그랬던 것처럼, 딸이 엄마에게 설명했다.
환자는 암이 전이되면서 최근 시력이 많이 저하되었다고 한다. 또한 빛에 예민해져서 항상 안대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상황에 대한 이해는 청력에 의존해야 했고, 본인 몸을 두고 행해지는 모든 의료 행위에 대해 불안감이 컸다. 그래서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했고, 낯선 사람의 접근을 경계했다.
환자의 귀 가까이 대고 작게 이야기했다. 지금 발마사지를 시작할 거고, 마사지 크림이 차가울 수 있지만, 곧 따뜻해질 거라고. 그리고 발이 불편하면 언제든 이야기해 달라고.
찌푸린 주름이 안대를 넘어 나왔다.
마사지 크림이 가득한 손으로 발을 어루만지며 마음속으로 빌었다. 덜 아프시기를. 그리고 평안한 마음으로 딸과의 소중한 시간을 보내시기를.
최대한 조용히 발마사지를 마무리하고 맞은편 할머니 환자에게 다가갔다. 병실을 지키고 있던 통합간병인이 환자를 향해 말했다.
"오늘 발마사지 하셔야죠~? 지난주부터 기다리셨잖아~"
할머니의 귀 가까이에 대고 있는 힘껏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수줍은 소녀처럼 웃어 보이는 할머니는 더 큰 목소리로 화답했다. "좋오치~"
그때였다. 맞은편 환자가 시끄럽다며 허공에 대고 화를 냈다. 일순간 모두 멈칫했으나, 할머니 환자는 이를 듣지 못한 건지 지난 한 주 발마사지를 기다린 이야기를 큰 목소리로 풀어냈다. 병실 침대에 누워 계시니 맞은편 환자가 잘 안보였을 것이다. 또한 노화로 인한 청력 저하로 여간 큰 목소리가 아니면 대화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봉사자들과 병실 통합간병인, 그리고 보호자들이 어쩔 줄을 몰라했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흔들리는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볼 뿐이었다.
이럴 땐 그저... 말을 줄이고 손으로, 눈빛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온화한 표정의 할머니를 바라보며 마스크 바깥으로 드러난 눈에 주름을 잔뜩 만들어 웃는다. 부드럽게 발마사지하는 손길에 마음을 가득 담는다.
마사지가 끝난 후, 병실을 가득 채우는 할머니의 씩씩한 감사 인사가 다시 한번 맞은편 환자의 심기를 건드렸지만 이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앞을 잘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암성 통증으로 고통받고 있다면 나는 더 예민하게 굴었을 것이다. (이건 우리 엄마가 인정한다. 우리 딸 신경질적이고 예민하다고.)
그 누구도 탓할 수 없고 그 누구의 편도 들어줄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나는 졌지만 잘 싸웠다.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없었지만 잘 흘러가게 두는 편을 선택했다. 잘 흘려보내는 것 또한 쉽지 않지만 종종 필요한 패배다.
#호스피스 #자원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