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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수발러가 되기까지

이 나이 먹고 제일 잘하는 거

by 미묘


학원에도 졸업식이 있다. 모든 반에 적용되는 건 아니지만, 우리 학원의 경우 특정 레벨에서 행해진다. 아이들과 학부모들 간의 결속력이 단단하게 졸업까지 유지될 수 있다는 것, 상위 레벨의 자부심으로 졸업까지 버틴다는 것이기도 하다.


오늘은 고작 초등 3학년 아이들이 중등 대수파트까지 마무리하며 졸업식을 하는 날이었다. 나와는 2년 정도를 함께 공부했던 아이들이다. 7살 꼬물이 시절에 만나서 어느덧 10살이 되었지만 여전히 큰 꼬물이들이다.


다른 선생님을 도와 졸업식을 진행하는 내내, 나는 마치 그림자가 된 듯 졸업식을 보조하기 시작했다. 다 컸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이었지만 피자, 치킨, 떡볶이를 먹을 땐 책상 주변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기도 했다. 졸업장을 수여하고 학부모님들이 준비한 커다란 케이크를 자를 때까지 묵묵히 아이들과 교감하며 졸업식을 함께 했다.


말하지 않아도 쓰레기봉투를 옆에 준비해 놓고, 아이들이 흘린 음식물은 그때그때 치웠다. 종이컵, 앞접시, 포크, 음료수... 중간중간 필요한 것들을 바로바로 챙기며 생각했다. '나 왜 잘하지...?'


스스로에게 후한 스타일은 아니다. 타인의 잘못엔 이해심이 발동되지만 나 자신의 실수는 용납하지 못하는 타입이다. 그렇다고 실수를 안 하는 완벽한 사람은 아니기에 늘 스스로의 부족한 부분을 깨달으며 스트레스를 가득 채워 살아간다.


그런 내가, 스스로를 향해 '잘한다'라고 되뇌었다. 흐릿하게 기시감이 들어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리고 호스피스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호스피스에서 만나는 자원 봉사자들의 대부분은 60대~70대이다. 물론 40-50대도 소수 있었다. 최근 들어 젊은 청년들도 종종 보지만 그건 아주 드문 일이었다. 최근 1-2년을 제외하고 10년 동안은 그분들과 팀을 이뤄 봉사를 했다. 적게는 6명부터 많게는 8, 9명까지 팀원이 구성되었다.


일명 '월요팀'에서 사랑받는 막내로, 기특한 젊은이로 10년을 보냈다. 회사에서는 월급을 받으면서도 '시키는 일'에 불만을 갖곤 했다. 하지만 여기서는 무급임에도 불구하고 '시키지 않는 일'도 재빠르게 처리하곤 한다. 사람 마음이란...


함께 하는 봉사자들에겐 연륜이라는 멋진 무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나이를 먹지만 연륜에서 묻어 나오는 지혜의 깊이는 사람마다 다르다. 호스피스에서 만나는 봉사자들은 그 깊이감이 달랐다.


우리가 만나는 암환자들을 마음 깊이 공감하고, 한마디 위로를 건넬 수 있는 건 우리 팀 봉사자들을 따라갈 수가 없다. 난 그게 가장 어려웠다. 대신 나에겐 한없이 가벼운 엉덩이라는 무기가 있다.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서면 평상시의 느릿느릿 나무늘보 같은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환자들을 샴푸, 목욕, 발마사지하는 건 많은 부가적인 과정이 필요하다. 침상에 물을 가져다가 누워계신 채로 샴푸 하거나, 거동하지 못하는 환자를 목욕실로 옮겨 목욕시켜드리기도 한다. 보통 3명이 한 조가 되어 움직여도 사계절 관계없이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작업이다.


방수매트를 가져다 놓거나, 적절한 타이밍에 환의를 챙기는 것 등 수없이 많은 센스가 필요하다. 자원봉사자라는 동등한 역할에 어른 공경을 한 숟가락 보탠다. 그렇게 나는 10년에 걸쳐 프로 수발러가 되었다.






암만 수발을 잘 든다고 해도, 사회에서 돈 받고 일할 땐 정말 '일'을 잘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못지않게 중요한 건 팔로워십 아닐까?


다양한 집단에는 소수의 리더와 많은 팔로워가 함께 한다. 그리고 리더십만큼이나 팔로워십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어떠한 일을 할 때, 리더의 역량보다 능동적인 팔로워십이 일의 성과를 좌우한다는 통계도 있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끌어 가는 카리스마는 없지만,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능동적으로 수행해 나가는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은 나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직장 상사들에게 직접 듣고자 하면, 다른 의견일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상 중 하나인 팔로워십을 손,발로워십이라 말하고 싶다.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하며 대가를 바란 건 아니었지만, '프로 수발러'라는 귀한 능력이 탑재되었다. 이상하게 주는 것 없이 미운, 혹은 반항하고 싶은 직장에서 수년간의 경험으로 완성된 프로 수발러로서 '일하는 센스'를 발휘해 보려 한다.


아, 다짐이 무색하게 일단... 내일 출근하기 싫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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