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먹는다는 것.
나에게 병원밥이 그렇다. 배불리 먹고 돌아서서 집에 오는 길에 군것질거리를 손에 들게 하는 것.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배고픔을 느꼈다. 뱃속에서 요동치는 꼬르륵 소리는 없었다. 병원 환자들과 동일한 밥을 먹는 건 아니다. 봉사자들도 병원 내 직원 식당을 이용한다. 오래전 급식을 먹던 학창 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식판을 들고 줄을 선다. 오늘의 메인 반찬이 무엇일지 예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어렸던 그 시절보다는 비교적 젊잖아 졌다지만, 줄을 서서 반찬을 확인하며 마음속으로 울고 웃고 하는 모습은 그때와 다를 바 없다. 사물함 문 한쪽에 한 달 치 급식 식단표를 붙여 놓고 맛있는 반찬에 형광펜을 그어 놓던 그 모습.
저녁 식사까지는 시간이 제법 남은 늦은 오후였다. 괜스레 냉장고 앞에 서서 문을 열어 본다. 왼쪽, 오른쪽 살펴보다 마땅치 않았는지 쭈그리고 앉아 냉동실을 뒤적거린다. 냉동 만두를 한 봉지 꺼내 들고 한껏 분주해진다.
좋아하는 양념에 만두를 찍어서 한 입 베어 물었다. 문득 오늘 오전 만났던 환자의 말이 만두 사이로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밥 먹고 돌아서서 또 밥을 찾는 마누라가, 그땐 참 미웠어요. 밥 먹으면서 짜증도 부리고 소화 안된다고 화도 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밥을 찾는 마누라가 이상했고 화나게 했죠. 내가 암에 걸렸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 이게 다 마누라 때문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스트레스받게 했던 마누라 때문에 내가 이런 병에 걸렸다고 생각해서 항암 하는 내내 원망하고 그랬어요."
항암 치료를 하다가 호스피스에 들어올 때까지도 아내를 원망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얼마 전 자녀들을 통해 아내가 중증 치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온 가족이 환자의 항암 치료에 몰두하느라 아내의 치매를 조기에 발견하지 못한 것 같다고 스스로를 탓했다. 늘 혼자 병실에 계시던 환자의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먹먹해졌다. 그 말을 건네는 환자의 공허한 눈빛이 마음을 더 아릿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날 화나게 했던 그때부터 마누라의 치매가 시작되고 있었을지 모르겠어요.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렇게 화를 내고 원망까지 했으니... 지금 내가 곡기를 끊은 게 열흘이 되어 가요. 벌 받는 거 같아... 마누라도 오래 고생 안 하고 저 세상에서 같이 만났으면 해요. 요즘 상태가 더 안 좋아졌는지 아이들이 통 지 엄마를 데려오지 않네."
링거로 최소한의 영양만 주입받는 환자의 손등에 푸른 멍이 가득했다.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을 거란 걸 알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더 천천히 부드럽게 발마사지를 하고, 마사지 크림을 조금 덜어 환자의 손에 꼼꼼히 펴 발랐다.
입으로 무언가를 먹는 행위. 그걸 빼앗기기 전까지는 그 행위가 얼마나 위대한지 알지 못한다.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는 고통은 오래가지 않아 사그라진다. 식욕을 점령한 암 덩어리가, 금세 환자를 쇠약하게 만들기 때문일까.
멈칫했던 만두를 한 입 더 베어 물다가, 깜빡 잊고 지나쳤던 식사 전 기도를 했다. 그리고 불량하고 나태한 신자가 모처럼 식사 후 기도도 했다.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주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