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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글이 Jul 12. 2024

퇴사를 앞두고 5 - 두 번째 점보러 가는 날


점집에 찾아가 신점을 보고왔다. 내 바램과는 정 반대의 점괘가 나와 가슴이 답답했다.


사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사주, 점괘가 늘 한결같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얼굴만 보고도 내 직업을 맞추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점을 보면 마치, 난 현재의 직업을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고, 지금껏 천직이라 알고 살았다.


방황하는 시간을 갖으며, 좋아하는 것을 찾은 것 같아 기뻤고, 돈벌이가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고민하기도 했지만..  설령 돈이 되지 않더라도 좋아하는 것을 하며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강하게 들고다.


보살님은 점괘를 보시던 중, 딱히 물어볼 게 없는 사주라 느끼셨는지, 여기 왜 왔냐고 물으신다.  


직장을 그만둘까 고민이라 말하니, "다녀!" 하고 호통을 치신다. '다녀'라는 말이 내게는 무조건 다녀야만 한다는 말로 들렸고,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울긴 왜 우냐고.. 이렇게 점을 잘 봐줬는데, 봐줄 거 다 봐줬으니 빨리 일어나라고 또 한번 호통을 치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떠밀리듯 나왔다.


돈내고, 원치않는 소리 듣고, 혼만나고 왔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내 사주를 정확히 잘 봐주셨다는 느낌이 들기고, 고민하는 내가 혼란스럽지 않도록 명확하게 방향을 제시해준 것 같기도 했으니까.


더 당황스러운 것은 내 모습이었다. 흔들리지 않을 줄 알았다.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이렇게 계속 살아도 괜찮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고 있던 차라, 나름대로 확신을 갖고 있는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하긴.. 확신이 있었다면 그 곳에 찾아가지도 않았겠지. 마음이 불안하니,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심정으로 찾아간 것이다.


점잼이의 말 한 마디가 뭐라고, 몇 분 전까지의 마음이 금새 뒤집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직장에 복귀할 생각에 무얼 준비해야하지.. 고민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았다.


나는 왜 갑자기 부침개 뒤집듯, 마음이 순식간에 뒤집혔을까.


내 발목을 강하게 붙잡은 말은 "다녀"라는 호통보다는, 아이와 관련한 점괘가 영향이 더 컸다.  막내가 나중에 크게 될 인물인데, 내가 직장을 다녀야 잘 된다는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평소, 아이들보다 내 자신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하며 지내는 엄마라 생각했는데.. 막상 자식과 관련되는 이야기를 들으니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부모의 마음인가보다.


나에게만 국한된 얘기라면, 잘되도 못되도 내가 책임되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오기라도 부려볼 것 같은데, 자식의 운명이 내 손에 달렸다 생각하니,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기가 어려워진다.


지금 내 마음이 얼마나 불안정한 지를 느낀다. 복귀하는 걸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두려운 마음부터 든다.

 

어쩌면 좋아하는 걸 하며 살고 싶은 마음, 그렇게 못해 아쉬운 마음보다 두려움이 훨씬 더 큰지도 모르겠다.


오늘, 우연히 미신을 주제로 한 브런치 글을 읽다보니 정서적 불안감 위에 쌓아올린 기쁨, 안정감이라 해석하고 있었다. 공감한다. 맞는 말이다.

  

설사 내가 원하는 말을 점잼이에게 듣는다 해도 내가 만든 정서적 안정감이 아니기에 언제든 또다시 무너질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이 평온할 때에는 점, 미신이란 게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인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불안한 마음일 때에는 의지하고 싶어진다. 불안할 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이론이나 이성, 옳은 말이 아님을 다시 한 번 느끼는 순간이다.  


더 이상은 나 아닌 것들로 안정감을 찾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든다. 스스로 결정하고, 죽이되든 밥이되든 책임지면 되는 거라는 생각도 들고.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며, 오늘 두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다른 점짐에 찾아간다.

 

다이어트를 결심하는 사람들이 오늘까지만 먹고 내일부터 할게. 하는 말과 비슷한 것 같지만...그렇지 않기를 바라며.


혹시나 젊은 점쟁이는 다른 점괘를 내놓지 않을까하는  지푸라기 같은 희망을 걸어본다. 머리로는 무엇이 내게 도움이 되는 행위인 줄 알면서도, 오늘 난 합리적인 선택을 거부, 아니 잠시 보류한다.


인간이 이렇게 나약한 존재구나.. 싶기도 하고, 한편으론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노는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는 신기한 존재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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