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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믿듯이 널 믿을게

사춘기 엄마의 자세

by 김글인 Mar 27. 2025

둘째 딸도 중학생이 되었다. 중3이 된 큰 딸과는 달리 여전히 어린애 같고, 스스로 하는 습관이며 여러 면들이 내 눈에 차지 않아 잔소리를 독차지해 오고 있던 녀석이다. 초등학교 졸업을 하고 긴 겨울 방학을 보내는 동안에도 천하태평이었다.


"너 이제 중학생 되는데, 그렇게 핸드폰만 들고 있으면 안 돼."

"아니지. 중학생 되면 공부 많이 해야 되니까 지금 놀아야지."


큰 아이 때 어땠던가 되짚어본다. 큰 아이도 사실 별다르지 않았다. 중학교를 대비해서 열심히 공부하는 자세를 장착해야 한다는 건 엄마만의 생각이지, 아이들의 생각은 아니었다. 큰 아이의 지난 2년을 옆에서 지켜본 엄마의 욕심에, 두 번째 중학생은 더 많이 준비된 상태를 만들어놓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큰 아이와는 대화가 많았기 때문에 아이의 사고패턴과 생각의 방향성을 짐작할 수 있었고, 아이의 생각이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내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컨트롤 가능한 바운더리 안에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둘째 녀석은 달랐다. 친구와의 일상에 어떤 일들이 있는지,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대화를 시도하려고 하면, 단답형의 대답만 돌아왔고 긴 소통이 어려웠다. 저런 건 아빠를 닮았지, 두 딸이 이렇게 다르다. 낯선 사람들 앞에 서면 소심하게 굴고, 친구관계도 단짝 친구 하나와 어울리고 있어서 내심 걱정을 하고 있었다. 중학교 가면 친구도 두루두루 사귀고, 공부도 점점 열심히 하면서 발전해 나가야 할 텐데, 나는 조바심이 났다. 긴 겨울방학은 잔소리를 넘어 엄마가 도 닦는 시간이었다.


드디어 입학을 하고, 공교롭게도 중학생이 된 첫 주에 둘째에게 초경이 찾아왔다. 첫째는 일찌감치 5학년에 했던 터라 꽤 늦었다 싶었다. 첫째는 더 어린 때라 그랬는지 나도, 아이도 처음 겪는 상황이라 약간의 당황과 함께 어벙벙했던 것 같다. 그러나 둘째는 주변 친구들의 경험담을 귓동냥으로 들었을 테고, 언니의 초경, 생리통을 봐왔던 터라 호기심, 마음의 준비, 생리 용품의 준비까지 모든 준비가 돼있어서 자연스러운 기분이었다.


"엄마, 빨강머리 앤은 뭘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대?"






입학하자마자 2박 3일 수련회를 다녀온 둘째가 말했다.


"글쎄 규림이가 갑자기 가방을 다 싸들고는 선생님한테 가서 얘기를 하더니, 강당에서 나가는 거야. 아파서 집에 가나? 생각했지. 그런데, 좀 이따 다시 오더라고. 무슨 일인지 몇몇 친구는 아는 것 같았는데 나한텐 얘길 안 해줘서 기분이 좀 그랬어."


또 약간의 소외감을 느꼈다는 소식에 나는 내심 덜컥했다. 그런데 예전의 아이였으면 친구에게 느낀 섭섭함 때문에 친한 사이로 이어지지 못하고 거리를 두게 됐을 텐데, 이제는 한 단계 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규림이가 생리 중인데 옷에 다 샜나, 그래서 옷 갈아입으러 갔다 왔나, 생각이 들더라고. 왜 안 알려주냐고 꼬치꼬치 물은 게 미안해지더라."



브런치 글 이미지 1



여자 친구들끼리 느끼는 내밀한 동질감이, 대인 관계에서 융통성을 발휘한 것이었다. 정말 옷을 갈아입고 온 건지 진실은 알 수 없지만, 관계에서 생길 수 있는 오해 포인트를 혼자서 잘 다뤄내고 자신의 감정을 차분히 정리해 낸 녀석이 너무나 기특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다른 친구들에 비해 아직 어리구나, 느꼈었다. 친구들에게서 소외감을 느끼는 때에는 내가 더 몸이 달았었다. 내가 겪은 것에 비춰 상대를 이해하는 능력은 이런 동질감이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사춘기 시기의 아이들은 이런 경험의 속도가 제각각이고, 이것이 친구들과의 정서적 소통에 장애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가끔 친구들이 속닥거리는 분위기에서 외떨어져 있는 소외감을 토로했던 때, 이 녀석은 이유도 모르는 채 외로웠을 것이었다. 그때 친구들은 그들끼리의 내밀한 얘기를 나누느라 아직 공감하지 못할 친구에겐 쉬쉬했던 건 아닐까.


중학생이 된 후 부쩍 어른스럽게 느껴지는 둘째는 동질감과 함께 자신감도 붙었는지, 친구들과 우르르 방송반에 지원서를 내고 면접을 보는가 하면, 면접 때 얼굴 익힌 선배를 복도에서 마주치곤 쭈뼛대는 친구들과 달리 '안녕하세요!' 인사도 했다고 했다. 과목마다 다른 선생님이 들어오는 색다른 환경에 흥미로워하는가 하면, '정말 성격 이상한 선생님'과 '말을 노래하듯이 우아하게 하시는 국어선생님' 등 선생님 품평을 하기도 했다. 선생님 뒷담이라니, 이제야 진정한 사춘기가 시작됐구나.


3월의 끝을 바라보는 시점에, 한 달 만에 부쩍 자란 듯 한 아이를 바라본다. 여전히 책상 위는 쓰레기장을 연상시키고, 집에선 드러누워 폰과 합체된 모양새다. 하지만, 어느새 좋은 습관을 주입해 줘야 될 것만 같은 조바심은 사라지고, 알아서 잘하겠지 하는 믿음이 생겼다. 몸의 변화가 사고의 변화도 가져오는 것일까. 아니면 중학교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생각이 쑥쑥 크고 있는 것일까. 나는 긴 겨울방학 동안 뭘 그리 잔소리를 해댔을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거늘, 이 녀석도 닥쳐올 환경에 적응하며 살 길을 모색하는 보통의 정상적인 사람이거늘. 잘하겠거니, 믿어주면 되는 것을. 앞으로 2년간 나는 신을 믿듯이, 이 녀석을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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