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지만, 살수 없는 : 동탄2신도시
‘지제역더샵센트럴시티가 7억 5천이라고 하고, 광주집 팔아 3억 보태고, 4억 5천 대출받으면 LTV60% 정도이고.. 그럼 매달 원리금이...’ 연택은 경기대로를 따라 평택에서 동탄으로 향하는 길에 계산을 해본다. 예진은 피곤했는지, 음악 탓인지 잠이 들었다.
연택은 자율주행을 걸어놓고 핸들에 두 손을 올린채, 운전석 너머 보이는 삼성전자평택캠퍼스를 고개를 90도로 꺾어서 보고 있다. 한참을 멍하니 무방비 상태로 GV60 운전석에 실려, 왼편에 가로수 넘어 힐끗힐끗 보이는 평택캠퍼스를 바라본다. 연택의 첫 번째 이직이다. 또라이 같은 TL에게 정말 지제에 분양상가를 소개해주고 싶다.
하지만 새로운 직장에 대한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직장생활을 어느 정도 경험하다 보니, ‘모든 건 다 사람이다’ 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운 좋게, 좋은 조건으로 회사를 옮기게 되었지만, 여기라고 그런 또라이가 없다는 보장은 없다. ‘또라이 질량 보존 법칙’에 따라.
‘잘할 수 있을까...? 그런 놈은 또 없겠지...? 이번에는...?’
“오... 여긴 평택이랑 지제랑 또 다른데? 왠지 고급져…”
“어, 깼어?”
“응... 나 얼마나 잔 거야...? 여기 동탄이야?”
“응. 한 30분 정도 잤나? 남동탄으로 들어왔어. 일단 동탄호수 쪽에 <라크몽>이라고 쇼핑몰 있거든? 거기 뷰 좋은 애프터눈티 카페가 있대. 거기서 커피 한잔 하자”
“아까 배라 먹었잖아. 괜찮아. 글고 그런데 인스타 하는 애들만 득실득실 하지, 거기보다 <폴바셋>에서 파는 마들렌 하고 까눌레가 더 맛있을걸? 괜히 돈 쓰지 말고 그냥 가자.”
“아, 그른가? 그럼 일단 차 세우고 동탄호수나 가보자.”
라크몽에 주차를 하고 지하 1층으로 올라오니, 푸드코트 ‘merry ground’는 사막과 숲길, 정원, 캠핑 등 다양한 콘셉트로 섹션이 나눠져 있다. 뭐, 애들 데리고 오면 아주 좋아할 듯은 하지만, 연택과 예진은 아이가 없으니 그냥 정신 사나울 뿐이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아주 많다. 푸드코트를 지나 호수공원으로 나온다.
“와, 여긴 왤케 사람이 많아... 고덕이나 지제는 아무것도 없으니, 다 거기서 온 것 같아. 쇼핑하고 밥 먹고, 호수 한 바퀴 돌며 바람 쐬러. 가깝고 먹고 놀기 좋으니까.”
“까치까치~!”
유난히 까치를 좋아하는 예진은 까치가 보일 때마다 반사적으로 특유의 아이 같은 인토네이션으로 ‘까치까치'라고 외치며 기분 좋아한다.
“오늘 우리 집 구하려나? 예진이가 좋아하는 까치가 확 하고 날아가네~”
호수공원에서 바라보던, 남동탄의 대장인 린슈트라우스. 여기엔 <레이크꼬모>라는 상가 아케이드가 위에 주상복합이 올라가 있다. <스타벅스>는 물론 <테라로사 커피>와 <아비코 카레>, <채선당> 등 웬만한 쇼핑몰에 들어갈만한 브랜드들이 들어와 있었다. 연택은 ‘퇴근길에 맥주안주 사 오기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으나, 거의 반사적으로 동시에, 우리 집 바로 아래가 이런 아케이드이면, '사람들이 많이 왔다 갔다 하는 게 괜스레 싫을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런데 살아본 경험이 없어서 '신포도' 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남동탄 호수공원에서 올라와 북동탄의 대장아파트 트리오인 동탄역시범 단지들을 둘러본다. 한화꿈에그린프레스티지, 더샵센트럴시티, 그리고 우남퍼스트빌. 대로를 한 바퀴 돌아, 진짜 대장을 맘 편히 둘러볼 요량으로 롯데백화점에 주차를 한다. 앱을 켜 두 시간 주차할인을 받고, 동탄역으로 올라온다. 나와보니 동탄역롯데캐슬이 너무나도 웅장하다. 연택은 마치 초등학교 시절 소풍 가서 63빌딩을 올려다보는 느낌이 든다.
동탄역 쪽으로 향하는 중, 붙어있는 플래카드에 시선을 고정하고 건널목을 건넌다.
20년 21년 23년?? 계속되는 공사완공 지연
손가락으로 공사하냐? 두더지도 너보다 낫겠다!
공사현장이 궁금한 연택은 점프를 해가며 펜스너머로 경부고속도로 지하화 사업을 살펴본다. 서울방향은 지난 3월에 개통되었고, 부산방향이 올해 말까지 개통이니, 두더지가 할 일은 다한 듯해 보인다. 입구 쪽으로 가보니, 동탄역은 지하 6층이 승강장이다. 내려가보진 않았지만, 승강장까지 어림잡아도 최소 7분 정도는 걸릴 듯하다.
다시 길을 건너 동탄역롯데캐슬 단지 내로 가본다. 요즘의 새 아파트 단지처럼 차 없는 도로이지만 걸을 곳도 없고 그냥 인도만 있는 느낌이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통로 같은 이곳에서 아이를 데리고 배드민턴 아빠의 모습이 왠지 안쓰러워 보인다. 바로 옆엔 롯데백화점 동탄점이 있다. 백화점 앞마당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있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고급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연택은 낯설고 물선 장면에 잠시 멍하니 있다가 예진을 쳐다본다.
“이게에... 주복이라 그런지, 사람 사는 그 ‘아파트 단지 느낌’은 안 드네... 놀이터도 모양새만 갖추고 있고, 실제로 놀 곳은 없어 보이네.”
“너무 높은 게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햇빛도 잘 안 들 거 같아.”
“그래도 뭐 먹기는 좋겠다. 스벅도 있고, 집에서 엘베 탈 때 사이렌오더로 주문하고 바로 픽업하면 딱이네. 근데 웬일이지? 롯데 공화국에 스벅이 들어와 있다니!”
“아, 진짜? 롯백엔 스벅은 못 들어와?”
“엔제리너스 있잖아. 스벅 있는 롯데백화점 본 적 있어? 이건 주상복합 상가라 그냥 들어오게 한 건가?”
“와! 마이 페이보릿 <쉐이크쉑>도 있네! 난 여기 오면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무조건 먹겠는데? “
“이 양키! 햄버거쟁아! 난 싫어. 이렇게 집 가까이, 그것도 바로 아래 백화점 있는 거”
“왜? 먹을 것도 많고, 진정한 백화점 슬세권이 자나~!”
예진이 중학교 다니던 때, '주말엔 무조건 외식'이라는 엄마를 위한 제도가 있었다. 그 날은 선택의 여지없이 예진이 ‘배달의민족’이 된다. 현대백화점 지하 1층 식당가 <한솔냉면>에서 회냉, 비냉, 물냉, 만두를 사고, 5층 식당가 <밀탑>으로 가서 우유빙수와 커피빙수를 포장해 와야 한다. 남녀공학을 다니던 예진은 같은 반 친구라도 만나게 될까 봐 한껏 차려입고 나가야만 했다.
“롯데백화점 노원점이라면 아무렇게나 하고 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 여긴 좀 과하다. 가자 이제. 슬슬 배고파. 동탄1로 넘어가서 얼렁 마저 둘러보고 밥 먹자”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 예진은 동탄점이 ‘롯데 답지 않아서’ 좋다고 한다.
롯데백화점 동탄점은 신세계백화점의 고급짐을 넘어, <더 현대 서울>스러운 느낌으로, 넓은 공간에 블랙엔 화이트로 변신을 시도했다. 지하에는 인스타그램용 맛집들이 즐비하고, 2030 세대와 4050 세대까지 모두 품을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오밀조밀하고 황금색과 붉은 대리석 조합의 소공동 롯데호텔이나 잠실 롯데월드의 롯데스러운 헤리티지를 잃었다고 연택은 생각했다. 롯데백화점 만의 약간은 시장통 같은 푸근함이 보이지 않았다. 롯데스럽지 않게 넓고 큰 매장과 매장 간의 간격이, 개방감과 세련미라는 공간의 미학으로 다가오기보다는, 오히려 어딘가 비어있는 휑뎅그렁한 느낌이었다.
새로 지어져 겉은 화려하지만, 무언가 비어있는 황량한 느낌의 ‘동탄2신도시’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은색 프레임과 회색톤으로 마감된 지하 슈퍼는, 저녁거리용 마늘과 청양고추 사러 가는 <하나로마트>는 될 수 없었다.
“동탄, 어디가 마음에 들어?
“난, 더샵센트럴시티. 백화점 하고는 딱 이 정도 거리가 좋아. 가끔 다니기엔. 동탄역도 걸어 다닐 수 있고, 단지도 넓고 깨끗하고. 공원도 있고, 초등학교도 있고. 거기 살까?”
“더샵? 롯데캐슬 뒤에? 그거 11억 3천인데…. 대출 풀로 받고 퇴직금 다 넣어도 모자라… 예진아…”
“힝… 그때 오빠가 작전주로 다 말아먹어서 그렇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