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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제 Jun 15. 2023

집사기 좋은 날이었다.

1주택자의 첫 투자 : 청주 흥덕구 오송읍

페이크 다큐멘터리 3일

- 2일차 : 2020.5.8(금)



“다목적 방사광 가속기 부지로 충북 청주 오창 선정
“1조짜리 방사광가속기, 충북 청주 품으로 갔다”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연택은 밖으로 나와 광합성을 하며 어슬렁 거린다. 다음 실시간 뉴스에 뜬 기사를 클릭하고 읽고 있다.

  ‘오... 진짜, 오창으로 선정됐네. 6천만원이면, 오창롯데캐슬을 살 수 있다고? 근데, 이거 들어온다고 집값이 그렇게 오르나?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포항에도 있는 거자나? 그럼 포항집값도 올랐었어야지… 지진때문인가? 오창에 들어오는건 4세대 선형이 아니라 원형인 업그레이드 버전이라서?’




  "오빠, 어제 ‘소설가 연택씨의 일일’ 얘기좀 해봐. 반차내고 청주 돌아다니다 왔다며.”

  “응응, 미팅 끝나고 점심 먹고, 한 세시간 정도 돌아다닌 듯해.”

  “오빠는 정말 ‘구보’씨같아. 목적없이 걷는거 좋아하고.”

  “목적이 없다기 보단, 목적의식은 있지. 난 오래된 동네를 걷는게 좋아. 곧 사라질 것 같은 것들이. 안티크가구 처럼 막 화려하고 그런거 말고, 그저 순수하게 오래된 것. 옛날 동네를 마냥 두리번 거리며 걷는거야. 탐험하듯이. 시간여행처럼.”

  “그르니까. 그게 그거지. 으유... 그냥 어슬렁.”

  

  “아참, 예진아, 근데 너 방사광가속기 알지?”

  “응. 근데 그게 갑자기 왜? 오빠네 회사에 뭐 있어?”

  “아니 그게 아니고, 내가 어제 우연히 연수원동기 만났거든, 경석이라고. 근데 그 친구가 청주에서 일하면서 부동산투자하고 그러나봐. 사택담당이라 그쪽일 하다가 부동산 관심갖게 되었다고 하더라고. 근데, 그친구가 말이 좀 많은 스타일이라, 어제 자기 투자한 얘기 막 엄청 주저리주저리 했거든. 솔직히 난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청주 오창에 방사광가속기가 들어오는게 그게 부동산에서는 엄청난 호재라는 거야. 근데, 오늘! 오창이 확정이라고 기사 떳어. 지난달에 샀던게 4천이 올랐다는데, 확정 되었으니 이젠 더 오르려나?“

  “어? 그래? 어딘데?”

  “오창 롯데캐슬 어쩌구던데...”

  예진은 갤럭시 S22를 집어들고 호갱노노앱을 연다. 

  “와 진짜 그러네. 오창롯데캐슬더하이스트! 와... 이 시간에도 927명이나 보고있어! 내일 가볼까?”

  “에이... 빼꼼이 투자자들 판일텐데 우리같은 사람들이 가서 뭐할라고.”

  “아니 뭐, 그냥 공부하는 셈 치고 가보는 거지. '이런것도 있구나...하고.' 나 가끔 새우탕컵라면 먹을때마다, 대청호에서 먹었던, 진짜 새우탕 수제비 생각났었는데, 바람쐬러 드라이브겸 새우탕먹고 올라오면서 오창 들러보자!”

  “난, 어제 바람 는데… 글구 우리 돈도 없자나”

  “오빠랑 나 보너스도 있고, 이래저래 모아보면 한 4천정도는 되지 않을까? 어때? 가는거다~! 안타깝지만, 나는 오창 물건 검색좀 해봐야 하니, 오빠가 설거지도 해야겠다! 히히. 고마워~!”

  “나원…”




페이크 다큐멘터리 3일

- 3일차 : 2020.5.9(토)


  여느때 느껴보지 못했던, 꾸물꾸물하게 구름이 낮게 내리어져, 곧 비가올듯 날이갤듯 알 수 없는 날씨다. 연택과 예진의 투자가 어떻게 될지 알수 없는 것처럼. 청주로 향하는 중부고속도로에서,그냥 새우탕 먹고 오는 나들이로 출발했던 연택은 예진의 비장함이 느껴진다.


  “오빠, 내가 어제 늦게까지 봤는데… 오창은 이미 너무 마니 오른것 같아. 호가도 그렇고. 가보면 매물도 없을 것같고… 흥덕구는 워낙 비싸고, 그렇다고 갭 붙은 구도심쪽은 잘 모르겠고…”

  “뭐… 오늘 꼭 사야하는 건 아니자나. 누가 사라고도 안하고! 공부하는셈 치고 부동산 한번 들렀다 오는거지~. 대청호 새우탕도 먹고, 아. 그리고 나 엇그제 먹었던 <중앙모밀> 또 가도 돼. 진짜 맛나. 너도 함 먹어봐야해!”


중부고속도로 옆으로 2500세대 39층의 오창롯데캐슬더하이스트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오빠!!! 저기 먼저 가보자!”

  “응? 대청호 안가고?”

  “응응!! 얼렁빠져! 오창IC로 나가~!”




  단지내 상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예진이 어제 검색한 매물이 가장 많았던 <중앙롯데캐슬>부동산으로 향한다. 두팀 정도가 있고, 사장님은 계속 전화를 받고 있는다. 안에서 대기하고 있는 40대 중반의 사람들은 갤럭시 폴더를 뒤적거리며, 투자자라는 포스를 온몸으로 뿜고 있다.

  전화가 끊기자, 여사장님이 우리에게 눈길을 주신다. 매물이 있냐는 예진의 소심한 질문에,

  “여기 이분들도 매물작업하는거 기다리고 있는 중이에요. 지금 매물은 없어요. 딴데 가봐도 마찬가지일거에요.” 라고 말하며, 다시 전화를 돌린다.


  그렇게 부드러운 문전박대를 당한 연택과 예진은 아무말 없이 단지를 걷다, 왠지 모르게 손님이 없어 보이는 <오창롯데캐슬>부동산으로 가본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 사장님이 멍하니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었다. 대기팀도 없고, 전화도 울리지 않는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여기 투자물건 좀 있나요?”

  “여기? 다 끝났슈~ 어제오지 그랬슈~”

  그리 급한거면, 어제 오지 그랬냐는 사장님의 충청도식 유머에 연택은 살짝 기분이 나빠졌다. 오기가 발동한 연택은 경석에게 전화를 건다.


  “경석님, 저 연택이에요. 쉬시는데 죄송해요. 경석님 말 듣고 오창 한번 와봤는데… 와 여기 장난아니네요… 네 여기 오창롯데캐슬이요… 그러니까요… 하나도 없어요. 여긴 다 끝난 듯 하네요… 네? 어디요? 아. 오송이요? 오송에도 롯데캐슬이 있다고요? 네에. 거기한번 가볼께요~ 감사합니다~!”




  오창에서 오송으로가는 20분간 예진은 부동산을 검색한다. 어제 오송쪽도 조금은 찾아봤지만, 방사광가속기와는 관계가 없을 것 같아 자세히는 안봤다. 연택은 오른편에 2,500세대가 넘어 보이는 청주리버파크자이를 보면서, 덩그라니 그것도 자이가 왜 저기 있는지 이해가 안된다.


  “찾았다! 오송세움부동산. 여기는 블로그에 활발히 하고, 물건도 많은 것 같아. 여기로 가보자. 호반베르디움 쪽이야”


  연택이 단타치던 코미팜 공장을 지나, 왕복 2차선의 시골길을 달려 오자 갑자기 <스타벅스 청주오송점>이 보인다. 왼쪽은 논밭, 오른쪽엔 스타벅스. 주변으로 네다섯개 아파트 단지들이 모여있다. 오송 단지들을 한바퀴 돌아 연제저수지 앞에 차를 세운다.




  “투자하시게유? 오송상록롯데캐슬? 거긴 어제보다 1~2천은 올랐어유. 모아미래도나, 베르디움은 갭이 쪼꼼 있고오, 칸타빌은 단지가 작아 물건은 없고오…”


  오창보다는 약간 조용한 분위기 였다. 번호표를 뽑지 않아도 되는. 하지만 전화기는 계속 울려댔다. 연택과 예진은 선뜻 아무런 말도 못하고 두리번 거리고 있다. 투자자판에 끼어든, 1주택자 뜨내기 이름표가 이마에 붙어있는 그들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실장님이 물건을 하나 내주신다.


  “지금 롯데캐슬은 다 끝났고, 할 수 있는게 그 옆에 휴먼시아 몇개 있어유. 사장님이 원래 휴먼시아에서 부동산 하다가 이리로 옮긴건데, 거기 입주할때 사람들한테 전화 돌리고 있으니, 좋은 것도 곧 몇개 나올거여유. 물건 작업 하고 있을테니까아. 일단 가서 함 보고와유~ 집은 보고 사야제~”


  동호수와 비밀번호가 적힌 쪽지를 건네주신다. 연택과 예진은 꾸뻑 인사하고 부동산을 나선다. 연택과 예진의 두눈이 마주친다. 자신들에게 진심으로 잘해주는 느낌과 호갱이 된듯한 느낌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묘한 느낌. 그렇게 롯데캐슬을 지나 휴먼시아로 간다.


  “휴먼시아…?? 휴거지, 빌거지, 엘사… 뭐 이런거 아냐? 기사에서 본것 같아.”

  “오빠. ‘아 그게 뭔상관이야~ 내가 살거 아닌데~!’”

  “어… 글킨 하네. 그게 투자지…”


  둘러본 집은 연택과 예진이네 보다 넓은 33평으로, 10여년이 넘은 체리색 몰딩과 대리석 마감을 하고 샹들리에가 달려있는 전형적인 그 시절의 아파트였다. 조합원 물건 이었는지 식기세척기와 초음파 세척기, 쌀통도 옵션으로 들어가 있었다.




  “어때유? 괜찮츄? 휴먼시아가 롯데캐슬 따라가는 단지라 같이 오를꺼여유, 하나 해 둬도 괜차나아~. 내가 젊은 사람들이 돈 벌겠다고 하는게, 우리 옛날 생각나서 특별히 보여준거여. 물건이 몇개 더 들어오긴 했는데, 거기가 제일 나아유~”

  사장님이 한마디 거든다.

  “여기가 오송생명과학국가산단이여유. 뭐냐 그 방사광가속기 때매 난리나긴 했지먼서도, 오창이란 다르게 여긴 길게봐도 되는곳이구먼. KTX오송역 있지, 그 주변으로 다 개발되지, 여긴 오창보다 훨 나아유~ 아 글고, 갭 4천이면 거저여. 낼 되면 이거 5천되고 6천 될거유~”


  연택의 머릿속엔 오창에서 들었던 ‘어제오지 그랬슈~~~~’가 소용돌이 친다. 연택의 표정을 읽었는지, 예진이 잠깐 밖으로 끌고 나온다.

  “오빠?? 진짜 할라고? 아니 관심도 없던 사람이 갑자기 왜그래?”

  “응? 이거 왠지 느낌이와. 이거 하자.”

  “오빠가 뭘 안다고 느낌이 느낌이야!!! 근데, 솔직히 나도 좀 괜찮을것 같긴해… 하까…? 떨려…”




  “네 사장님, 이걸로 할께요. 계약금은 언제 어떻게 해야돼요?”

  “요즘 분위기가 보통이 아니라서, 가계약금 천만원은 걸어야 해유. 집주인이 분위기 보고 안한다고 하면, 배배도 받을 수 있으니까네, 그냥 천만원 으로 혀유~”

  “배배요…?”

  “하이 참 이사람들이… 고거이 배액배상이라고, 계약해지하믄 두배로 돌려받을 수 있는 거니까 글케 하셔유.”

  “네 알겠습니다.”

  “근디, 명의는 누구꺼로 할꺼유?”

  “아, 제 명의요.” 예진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하고는 연택에게 속삭인다. “오빤 광주집 있으니까 이건 내 명의로 할께. 나도 내 명의 집 한번 가져보자! 오빠 통장에 천만원 없자나.”




  인생에 첫 투자. 2억3천만원에 갭 4천. 예진은 일생일대에 최고로 비싼 쇼핑을 한다.

  연택과 예진은 가계약금을 쏘고, 부동산을 나와 멍하니 연제 저수지를 바라본다.

  “오빠, 우리 잘 한거겠지…?”


  집사기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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