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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제 Jun 29. 2023

1억을 날렸다.

투기의 물타기와 투자의 뒷걸음질 : 동탄1신도시

  롯데백화점 동탄점에서 나왔다. 두더지들은 다 일을 끝마쳤지만, 아직 지하화가 완성되지 않아 동탄 1을 넘어가려면 에둘러 가야 한다. 경부고속도로 아래로 뚫려있는 왕산들 지하차도를 통해 동탄 1로 넘어간다.


  ‘오빠가 작전주로 다 말아먹어서 그렇잫아!!!’라는 말이 연택의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마지막으로 주식에 손대기 전까지 그는, 나름 재미를 보고 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베프인 석준이 덕분이고 때문이었다.


  여의도중학교 같은 반 단짝이었던 석준은 어릴 때부터 돈에 밝았다. 연택은 석준과 함께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떡볶이를 계산하고 있다던가, 몇 번 해보지도 못한 게임을 빌려 주기도 하는 등, 늘 그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래도, 연택은 석준이 좋았다. 아마 친구가 아니었다면 상당히 재수 없었을 녀석이긴 하지만. 그래서 더 신뢰가 갔는지도 모른다. 석준이가 투자를 하고 있는 종목이니. 절대 잃지 않으리라는 믿음.


  석준은 연택이 중학교 때 놀러 다니던, 여의도 고수부지 바로 앞 목화아파트에 아직까지 살고 있다. 아버지가 은퇴하시고 양평의 전원주택으로 들어가시면서 증여를 해주셨다. 석준은 그 집에 신혼살림을 꾸렸다. 와이프는 SK증권 시절, 현장 방문을 나갔다가 만났다. 지점 창구에서부터 시작해 본사 팀장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석준은 몇 년 전에 보험개발원에 경력직으로 옮겼다. 목화아파트는 여의도 금융커플의 완벽한 직주근접이다. 날 좋은 요즘 같을 땐 걸어서 퇴근하면 상쾌하단다.


  부러우면 지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부러운 거다. 2017년 결혼당시 물려받았던 아파트는, 29평 뒷동이라 한강 뷰는 안 나오지만, 13억이 넘게 올라 지금은 21억이 훌쩍 넘는다. 묵직한 한방이다. 어떻게 석준의 인생은 저렇도 편할까.

  둘은 아이는 없고 강아지를 키운다. 주식투자하면서 골프 치러 다니는 그들이 연택은 무척이나 부럽다. 특히, 광주에서 평택으로 동탄으로 이사집을 찾아다니고 있는 자신과 비교를 해보니 더더욱 그렇다. 비교를 하면 늘 비참해지는 건 연택이다. '공부는 내가 늘 더 잘했는데...'


  투자와 투기의 개념도, 돈 개념도 없는 연택은 그렇게 물타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투자금이 1억원이 되었다. 

  그때 까지도 몰랐다. 이 일이 얼마나 커지게 될 줄은.


  대출이 들어간 자산도 자산이라고, 당시 매매가 대비 1억 3천만 원이 오른 e편한세상광주역이 마치 순자산인 양, 자산을 불린다는 생각에 아무 생각 없이 주식투자를 하고 만다. 실거주집의 자산가치 증가가 소비나 무분별한 투자로 이어지는 자산효과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연택은 뇌과학을 공부했으면서도 뇌의 지배욕구와 안정욕구의 싸움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행동하고 말았다. ‘부자가 된다’라는 도파민이 돌린 희망 회로에 취해.



  

  “예진아, 그래서 이 동네 분위긴 어떤 것 같아?”

  “다른데 많이 다녀보지는 않았지만, 그냥 2기 신도시의 전형 같아. 2기중에 제일 먼저 들어온 곳이긴 하니까. 2기라기보다는 조금 쌔거 같은 1기 신도시 느낌? 뭔가 되게 안정적인 느낌이야.”

  “그러게 여기가 16년차니까... 도시가 만들어지는데 10년은 넘게 걸린다는 말이 몸소 느껴지네. 우리 집 근처는 아직 아무것도 없잖아. 근데 여기 상가들은 새로 생기고 망하고를 반복해, 사람들이 필요한 것만 남은 너무나 안정적인 상권같아. 맛집들도 즐비하고. 진짜 도시는 사람 같은 가봐. 도시처럼 완성되는데도 시간이 걸리고,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유기적인 관계들로 거리가 바뀌고, 상가가 바뀌는 것도 그렇고. 나무도 자라고, 그래서 익숙해지고, 편안해지고, 안락해지고. ”

  “이런데 살면 편하긴 하겠다. 근데 여긴 그냥 늙어만 가는 아파트잖아. 난 실거주라도 집값이 오를 집에 살고 싶어.”

  “얼마 전에 김시덕 박사 유튜브 나온 거 봤는데 ‘삼세권’이란 말이 있대. 삼성 캠퍼스 덕분에 집값 오른 지역들. 여기도 삼세권이자나 오를걸?”

  “뭐 영향은 있겠지만, 삼세권은 새로 짓는데, 용인 남사면이나, 이제 오빠네 평택캠퍼스 같은데 얘기하는 거지.  여긴 오래돼서 기흥캠퍼스나 디스플레이 밖에 없고 이미 다 반영된 거자나.”

  “그른가? 그럼 진짜 어디 살아야 되나...?”




  1억을 날렸다. 


  그 뒤론 연택은 주식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핸드폰에 앱마저 지워버렸다.

  연택 자신이 한건, 묻지 마 투자도 아닌 투기였다. 주식투자와 부동산투자를 구별하지 못하고, ‘투자는 하면 안 되는 것’이라는 생각에 갇혀버리고 만다.


  그 후, 연택이 석준이를 만난다고 하면, 예진이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1억 손실에 대한 2억원의 아픔이 조건반사된다. 3년 전, 그렇게 1억에 석준과 연택의 25년 우정은 끝났다. 석준은 카톡에는 남아있지만, 채팅하기 버튼은 쉽사리 눌러지지 않는다.  지금은 무얼 하고 사는지 궁금하다. 코인 투자로 망하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우정도 돈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거구나 싶다.




  돌아오는 차 안, 연택은 석준 생각에, 예진은 살집 생각에 침묵이 흐른다. 전기차의 조용함이 더 적막한 공간을 만들어 낸다. 예진이 연택의 아이폰을 가져가 애플뮤직으로 음악을 튼다. 디스플레이에 Zion. T의 “나쁜놈들” 이 뜬다.


부자가 되고 싶어.
부자가 되고 싶지 그렇지?
네가 건물주든 땅부자든 어쩌거든
네가 뭐가 됐든
부자가 되고 싶을 거야


  ‘부자가 되고 싶은 예진의 앞길을 막고 있는 내가 나쁜 놈인가?’ 라는 생각이 연택의 머릿속을 스친다.

아무 말 없이 오는 내내 연택과 예진은 두 손을 꼭 잡고 경기도 광주로 돌아왔다.


  연택은 후다닥 씻고 나와 구스 IPA를 잔에 따르고, 거실 중앙에 위치한 월넛 한통짜리 우드슬랩 테이블로 향한다. 코스터 위에 잔을 올려놓는다. 예진의 버드와이저 캔과 잔도 가져온다. 짝퉁 루이스폴센 조명이 짙은 고동색의 나무무늬와 IPA의 뽀얀 맥주 거품을 비추고 있다. 멍하니 나무의 무늬를 따라 시선을 옮기고 있다. 예진이 방에서 머리를 말리고 나와 앉는다. 연택이 묻는다.


  “그래서, 어디 살 거야?”

  “아 진짜 그때 작전주만 안 들어갔어도, 우리한테 1억은 있는 거잖아”

  “1억짜리 수업 들었잖아... 너무 비싸긴 했지만.”

  “아 어디 정말 오송 같은 데 또 없나?”

  “그건 정말 천운이야.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지... 어떻게 8개월 만에 4천만원으로 1억을 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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