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제 May 24. 2023

우리는 어디에 살고 싶은 걸까?

살수는 있지만, 사는건 글쎄 : 평택 지제세교지구

  “여기는 상가가 한 두개 빼고는 다 차있네. 부동산 중개소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그래도 학원도 있는 걸 보면 확실히 사람 사는데 같아.”

  지제 세교지구로 들어왔다. 여기는 상가건물 일층 전체가 공실로 주욱 늘어서 있던,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건너편 첨단대로와는 사뭇 달랐다. 또한, 8차선 대로로 아파트가 갈라져 있던, 고덕의 현재 대장 아파트인 고덕국제신도시파라곤아파트와는 다른 활기참이 느껴진다.

  “응 바로 옆에 이마트도 있고. 나는 진짜 이마트가 자리선점 하는 거 보면, 부동산회사 맥도날드 급이라고 봐. 건물 낡은 거보니 꽤 오래된 것 같은데? 이거 언제 들어온 건지 함 찾아봐 봐.”

  “와… 이마트 평택점은 2001년 11번째로 문을 여는 39호점…”

  “거봐 거봐. 아직 입주 안 한 아파트도 천지인데 22년 전에 문을 열었다고? 내가 볼 땐 이마트는 땅장사 하는데야. 허허벌판에 일단 이마트 짓고 나서 그 주변에 아파트 올리게끔, 지구단위계획 바꾸려고 정부와 지자체에 로비할지도 몰라.”

  “응... 용진이 형이면 그럴 수도. 이마트는 1993년 창동점이 국내 최초이고, 그 옆에 월계점이 국내 최대규모래.”

  “근데 서울 말고 수도권에, 남양주 별내 신도시나 이천역점 주변에 아무것도 없이 이마트만 혼자 덩그러니 있었는데, 막 별내역에 GTX 들어오다고 하고, 이천역세권 개발도 시작하고, 주변에 신축 아파트들이 막 올라오잖아.”

  “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그래서 본사가 있는 성수점도, 빅픽쳐로 성수전략정비구역을 보고 들어와 있는 건가..? 우리도 이마트 새로 들어가는 주변에 땅 좀 알아봐야 하는거 아냐?”

  “아서라! 땅은 초고수들의 영역이야. 게다가 '재벌집 막내아들'의 세계를 어찌 알겠니. 우리 같은 사람들이…”




  지제 세교지구에서는 지제역더샵센트럴시티만 평택지제역을 걸어 다닐 수 있어 보였다. 끝동에서도 도보로 10분 내로 갈 수 있을 듯한. 단, 왕복 8차선의 신호등 받는 타이밍이 잘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 평택지제역자이아파트에서는 걸어서 가긴 어려워 보인다. 

  “근데 여긴 신도시인데 왜 전기차 충전하는 데가 안 보이지?”

  연택은 무리를 해서 찰진 운전의 재미를 느끼게 해 준, 15만km를 탄, 2016년식 폭스바겐 골프GTD를 팔았다. 그리고 디젤에서 가솔린도 하이브리드도 아닌, 제네시스GV60로 갈아탔다. ‘우르릉~’ 엔진소리를 들으며 밟는 것도 좋아하지만, 연비도 중요시하는 연택은 과감히 순수 전기차를 선택했다.

  전기차로 바꾸고 나서 생긴 버릇은 충전도 하지 않을 거면서, 가는 곳마다 전기차충전소를 찾는 일이다. 연택은 ‘방전포비아’가 있다. 아침에 집에서 나갈 때는 아이폰14pro의 배터리 숫자 100%를 봐야지만 마음이 놓인다. 충전기 케이블도 늘 가방 안에 있으며, 집에 올 때까지 30% 이하로 내려가는 법이 없다.

  반면, 예진의 갤럭시S22울트라의 배터리는 대부분 빨간색이다. 예진은 빨간불이 들어와야만 충전기를 찾는다. 자기 전에 충전기를 꽂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같이 살면서 연택은 예진의 핸드폰 배터리관리가 일상이 되었다. 문득, '갤럭시는 원래 배터리가 빨리 다나?' '내가 앞으로 써야 할 갤럭시S23의 배터리가 빨리 나가면 어쩌지?' 라는 얕은 공포감에 휩싸이며, 비전 있을 듯한 비전동으로 향한다.




  “어... 저거 저렇게 빌라같이 낮은 아파트들 뭐라고 불렀더라?

  “테라스하우스, 타운하우스, 뭐... 딱히 정해진건 없는듯해.”

  “여긴 그렇게 럭셔리해 보이지는 않네. 왜, 그때 네 친구... 누구지? 아... 이름이 기억이 안 나네. 그 왜.. 그..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이던 애 있잖아... 파주 운정 쪽에 바비큐파티 한다고 갔었을때, 거기 비하면 이건 그냥 빌라처럼 생긴 아파트 같은데...?

  “아, 윤지네? 운정신도시 라피아노1단지. 거긴 럭셔리 테라스하우스콘셉트이니까.”

  “여긴 좀 아닌 듯하고, 근데 그거 알아? 나도 라피아노인지 뭔지, 그런데 살고 싶긴 해.”

  “진짜? 그런데 집값 안 올라! 여기 봐봐... 어라? 근데 많이 안 빠졌네...? 주변보다도 더 비싸. 뭐지? 왜지? 거래가 없어서 그런가? 아닌데에... 3월과 4월에도 거래된 게 있어. 흠... 뭐지? 알수가 없네... 호수 때문인가? 아님, 진짜 오빠 같은 사람들의 수요가 있는 건가?”

  “흐흐.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을 수도. 왜, 있자나 우리 아버지, 아파트 사시면서도 1층에만 사셨잖아. 땅의 기운을 받아야 한다고. 나도 그 영향을 받아서인가...? 나도 낮은 아파트가 좋더라고. 그래서 우리 신혼집 살 때도, 아버지가 2층이라 좋아하셨던듯 해. 로열동 로열층 살고 싶었는데. 왠지 높은 데서 좋은 뷰 내려다보는 성공의 이미지 같은 거 있잖아.. 시그니엘처럼”

  "성공부터 하고 얘기해! 근데, 난 살아보니 저층의 뷰티가 있긴 해. 베란다 바로 앞의 나무들로 계절을 느낄 수 있고. 엘베 안 기다리고 음쓰 버리러 가기도 편하고. 물론 오빠가 편한 거지만 서도"




  “어 저기다. 시대코아 아파트, 저쪽으로 가보자.”

  용죽지구 옆 신명나리 아파트에 차를 세웠다. 임장을 왔으니 예진은 발품을 팔아야 걸어야 한다고 했다. 계속 운전만 하느라 당 떨어짐을 느낀 연택은, 네이버 맵을 켜고 배스킨라빈스를 찾는다. 나름, 예진을 따라 임장을 다녀본 그는, 맛집을 찾을 땐 리뷰를 볼 수 있는 네이버 맵을 켜고, 아파트를 볼 땐 카카오맵을 켠다. 모든 걸 정리하고 구분하기 좋아하는 그의 성향이 반영되어, 맛집과 아파트의 별표를 확실하게 구분하기 위한 그만의 방식이다.

  “갑자기 날이 덥네. 내가 배스킨라빈스 찾았어. 한 컵 먹자. 당 떨어져.”

  “그래! 그러자. 배라 어딨어? 가깝네~ 그러면 비전현대하고 한빛 보고, 아이스크림 사서 현대이화까지 돌고 다시 오면 되겠다”

  “그러자. 근데, 시대코아는 꼴랑 두동 짜린데? 이게 뭐 대단해?”

  “어 이게 평균대지지분이 33.29평이야. 나 이런 숫자 본 적이 없어. 3종인데도. 95년식이니까 곧 재건축 연한에도 들어갈 거고. 여기가 학군이 좋아서 가격이 안 빠지나 봐... 아, 아니다. 그게 아니라, 작년 이후 거래가 안 됐네.”

  “평대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여기 재건축되겠어? 시대코아, 현대비전, 동아모란 세개  다 합쳐야 겨우 될까 말까 하겠다. 아닌가?”




  자전거신호와 보행신호가 사이좋게 매달려있는 건널목을 건너 배스킨라빈스로 향한다. 연택은 요거트를 컵에, 예진은 민트초콜릿 칩을 콘에 주문한다. 칼로리 신경 안 쓰고 잘 먹는 예진이 연택은 참 좋아 보인다. 동시에, 같은 돈이면 콘 과자까지 나오는데, 왜 컵에 플라스틱 스푼까지 써가며 지구 환경을 오염시키냐고 구박하던 기억도 잠시 떠올랐다.

  배라를 각자의 방식으로 먹으며 주변을 돌아본다. 마음이 편해지는 구축 아파트 단지다. 30년 넘은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고, 피톤치드까지 뿜뿜 하는 느낌이 든다. 연택은 둔산동 크로바아파트에서 살던 어린 시절도 떠올린다.


  “난 이런데가 좋더라. 새 아파트 보다. 어릴 때 기억도 나고. 그래서 뭔가 푸근한 느낌이 들지 않아?”

  “오빤 진짜, 애늙은이 같아. 그렇게 막 테키한거 좋아해서, 아이폰도 최신형으로 쓰고, 우리 집에 말로만하면 다 되는 스마트홈도 설치하고. 반면에 또, AI메모리 솔루션팀에서 일하는 사람이 맨날 잉크 채워가며 만년필 쓰면서 구축 아파트 좋아하고. 참 신기한 인간이야.”

  “응 나란 인간이... 좀 이율배반적이긴 하지. 내, 속, 엔~ 내가 너무도 많아~”

  “으유... 못 말려.”

  “근데 진짜 이런 구축아파트단지 오면 좋지 않아? 너 어릴 적도 생각나고. 압구정현대도 지금 가보면 장난 아니겠다.”

  “내가 압구정 얘기하지 말랬지!”

  “어... 미안.”

  “가자. 동탄으로.”

  “응, 좀 자둬. 주말이라 올라가는 길이 좀 막힐 거야. 이번 주에 회장님 방문 있다고 자료 만드느라 야근하고, 푹 자지도 못했잖아.”

  “응응, 쫌만 자께~”


  연택은 애플뮤직 최근재생목록에서 Max Richter의 from Sleep을 재생한다. 예진은 얼마 전 연택이 차에서 푹 자라고 사준, 씨가드목베개를 찌익 하고 두르고 잠들 자세를 취한다. 압구정 얘기 때문인지 잠들이 않고 두 눈을 뜬 채 조수석 쪽 창문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오빠! 저거봐! 혹시, 진짜 복수하고 싶은 친구나 뭐 그런 사람 있어? 아님, 그 SK하이닉스 티엘한테 저기 상가 소개해주자. 우리도 지제로 간다고 하면 되잖아! 퇴직 선물로 멋지게 던져주고 나와!”

이전 01화 그럼, 우리 어디로 이사 가는 거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