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당신에게 “턱걸이 10개를 하세요”
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어떻겠는가? 분명
“미친놈 아니야”
이렇게 침 뱉듯 거칠게 말을 내뱉을 것이다. 그걸 해야 하는 이유가 지금까지 없기 때문이다. 아니, 그 이유만으로 여러분의 엉덩이는 꼼짝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이제 여러분의 직장 상사, 여러분의 돈 줄을 잡고 있는 분들이 이렇게 명령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일주일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철봉 10개를 시작하십시오”
라고 주문하듯 던져주면, 내 팔은 벌써 철봉을 꽉 잡고 몸을 이리저리 흔들고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내게 돈을 주는 사람이 직접 주문을 넣었기 때문이다.
“오늘 18시까지 끝내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기차 레일 속에서 계속 달리고 있을 이유다. 사람마다 그 이유와 답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내게 득이 되는 가장 효과가 빠른 돈이 들어와야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들 말들을 한다.
“선배님, 왜 일을 하십니까?” 저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이 입에 숟가락 들어가는 게 너무 좋아요.”
“전 그때가 가장 행복하답니다.”
일을 하는 목적이 분명하게 제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5년 후, 다시 후배에게 똑같은 질문을 받고 전 한참 동안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 어느 순간 그 목적을 달성했는지, 지나쳐 버렸는지도 모르고 계속 돌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 목적지가 한참 지나쳐 버렸다는 걸 이제야 보게 되었다. 먹고살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했고, 그 안에서 머무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까지 얻은 건 정신줄 놓고 기계처럼 돌아가는 몸에 배인습관들이었다. 몸속 깊숙하게 쌓여가는 찌꺼기들이 쌓여가고 있었다. 지금은 제가 가야 하는 목표지점을 확인한다. 그 과정까지 지켜볼 수도 있다. 그 고통과 즐거운 격차를 줄여 내기 위해서 한 발 한 발 아주 작은 성장에 올라서는 즐거움을 키우며 전진해 나간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그 일을 할 것인가? 왜 일을 하고 있는가? 과연 지금 즐거운가? 주변 사람들이 모두 한결같이 다른 곳으로 떠나가게 된다면 이제 어디로 흘러 들어갈 것인가? 불안하지 않을 자신 있는가? 사람들은 사람이 붐비는 곳, 돈이 있는 곳에 직장도 사람도 쌓여 있는 법이다. 대한민국 인구 절반이 서울에 있는 이유가 그것이다. 2024년 4월 29일 통계청에서 발표한 내용이다. 부업 인구는 50만을 돌파했다.
그럼 이제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그 기간 동안에 턱걸이도 못하고 곰탕을 정성스럽게 12시간 끓이지 못하게 된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자동차 할부금, 아파트 월세, TV 시청료, 핸드폰 데이터 이용료에서부터 아이 학원비까지 줄줄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뒤처지면, 내 집보다 더 높이 오르게 되면 여기서 절망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서 더 벗어나지 못한다. 지금까지 유지할 수 있는 것들과 만들어낼 수 있는 가치가 무너지게 된다는 걸 충분히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걸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살아간다. 나이가 들면서 계속 적인 노동은 불가능하다. 당연히 체력은 떨어지고 몸은 아프고 병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준비를 할 수가 없다. 하루하루 살아가기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을 함부로 바꾸지도 건들지 못한다. 추가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닌 현재 가치에서 조금이라도 떨어지는 걸 하나라도 막기 위해 우리는 필사적으로 살아간다. 내가 멈추게 되면 모든 것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건 내가 지금까지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누군가
“새로 시작합시다”
“이제 그만 중단해야 합니다”
“잠시 멈춰서 생각해 보세요”라고 들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 이유와 답을 주신 분도 질문도 충분히 생각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다가는 더 깊은 늪에서 양발을 빼지 못하고 방향을 틀지도,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 앞에 끔찍한 고통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할 것이다. 아주 편하고 안전한 곳에서 머무르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가면서도 내 옆집에 같은 곰탕집이 오픈하면 머리털과 수입이 반토막이 나고 내 꿈도 허공으로 같이 날아갈 것이다. 내 직장이 사라지거나, 내 급여는 올라도 물가가 더 크게 오르면 나이가 들면서 머무른 자리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지, 정말 힘들게 어렵게 살아왔으면서도
“왜 이렇게 잘 풀리지 않는 것인가”
“왜 이 모양 이 꼴인 거야” 하며
이걸 안주 삼아 씹어대며 강소주에 나발을 불고 다닐 것이다. 너무 끔찍한 내용이 아닌가요? 안전한 직장에서 근무하며 태풍이 불어도 끄떡없는 집채만 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시원하고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늘 찜찜하고 답답하고 속 시원하게 풀리지 않는 것들로 가슴에 품고 살아갈 것이다. 사람들은 계속 뛰어야 하는 허들이 없거나 도착해야 하는 정확한 목표 지점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넓은 바다 한가운데서 파도를 기다리다가 덩치 큰 누군가가 움직이게 되면 그 작은 물살에 타고 서핑을 즐기며 살아간다고 덧붙인다. 학자 집안에서 선생님과 교수가 나오고, 주변에 체육시설이 많을수록 운동선수가 탄생한다. 분명 그것을 고마워하고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자신의 환경을 탓하기도 하고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 전혀 모른 채 온갖 것들을 자신에게 득이 된다고 착각하며 빨아들인다. 특기나 장점이 없는 사람들 당당함을 어느 순간 잃어버린 사람들 늘 주변 사람들에게 밀치고 밀려난 사람들 자신을 정확하게 잘 알지 못하거나 스스로 바꾸지도 그 자리를 옮기지 못하는 사람들은 늘 타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 더 굽신거리는 이유다. 늘 누군가에게 도움 받아야 하고, 어렸을 적부터 자신의 일을 대신해 주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사람들 말입니다. 자신이 벌려놓은 일들을 주변 사람들이 치워주고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 늘 주변 사람들에게 의지하고 혹여나 그것이 맞는지도, 그것이 틀렸는지도 모른 채 의식하지 못하고 바쁘게 살아가기 때문이다. 정말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때 자신의 생각이 부족하거나 없을 때 타인에게 내 선택권과 주도권을 넘겨주게 된다. 장담하지만 그 결정이 잘못되었을 때 부모님을, 타인을 욕하며 주변 환경을 원망하며 이유에 답이라도 큰소리로 얘기할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친절하게 이야기하면
“어쩌라고”라고 말할 것이다.
“이거 뻔한 내용 아니야.” 아니, 읽은 김에 조금만, 몇 자 더 내려 보면 어떨까?
“왜 그렇게 성격이 급하십니까.”
그러니 지금 이 모양 아닌가! 나무가 하늘 높이 자라기 위해서는 뿌리를 충분히 내릴 수 있는 넓은 토지와 질 좋은 흙, 그리고 충분한 물이 필요하다. 여기까지 동의하는가? 당연히 긴 시간도 필요하다. 경주마가 편의점에서 파는 인스턴트 음식을 먹고, 시끄럽고 복잡한 세상에서 과연 훈련을 할 수 있을까?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까? 여러분은 어떤 환경, 어떤 주변에 놓여 있는지 주변을 한번 눈을 크게 뜨고 운전대를 처음 잡았을 때처럼 천천히 다시 출발하자. 하나하나 스스로 그것을 바꾸기 위해서 턱걸이 수를 늘리듯, 곰탕을 정성스럽게 12시간 끓여내기 위해 준비하듯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얼마나 준비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보자. 다시 돌려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