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직 소방관이었다. 그땐 내 이름보다 ‘국가의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다. 36년 동안 공무원이라는 신분으로, 국가가 정해준 길 위에서 살아왔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었고,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였으니 그만큼 값지고 의미 있는 삶이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나는 내 삶을 살지 못했다. 늘 정해진 시간표 안에서 움직였고, 국가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존재했다. 그 울타리는 단단했지만, 그만큼 나를 가두는 틀이기도 했다.
나는 국가가 주는 월급으로 살고, 국가가 정한 임무를 수행하며, 국가가 보장한 ‘안정’ 속에 서 있었다. 겉으로는 단단해 보였지만, 실은 내 삶의 주도권을 국가에 맡긴 채 살아온 셈이었다.
퇴직 후에서야 알았다. 더는 그 울타리에 기댈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비로소 깨달았다. 이제야 진짜 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지금 나는 가족을 돌보고, 나를 위한 시간을 살아간다. 그동안 미뤄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내 마음의 온도를 찾아간다. 국가의 이름이 아닌 ‘나’라는 이름으로 하루하루를 새기며 살아가고 있다.
살다 보면 누구나 기댈 곳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 잠시 쉬어갈 수 있다. 하지만 그 기대가 전부가 되어선 안 된다. 기댄다는 건 결국 내 두 발로 걷는 힘을 포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다짐한다. 더는 누구에게도 내 삶을 맡기지 않겠다고. 국가에도, 직장에도, 사람에게도. 내 삶의 무게중심은 내 두 발 위에 두고 살아가야 한다. 비로소 스스로 서는 법을 배울 때, 자유는 조용히 찾아온다.
퇴직 후의 삶은 내게 많은 걸 가르쳐 주었다. 빈 시간이 아니라, 스스로를 채워가는 시간임을. 멈춤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용기의 순간임을. 그리고 무엇보다, ‘내 이름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벅차고 고마운 일인지. 이제 나는 안다. 인생의 진짜 무대는 은퇴 이후에 펼쳐진다는 것을. 그 무대의 주연은 오직 ‘나 자신’이라는 것을.
<블로그 이웃 공감 댓글>
작가님, 퇴직하고 나면 더 이상 그 울타리에 기댈 수 없고 내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 마음에 들어옵니다. 저도 몇 년 후 회사를 그만둘 계획을 하고 있는 중이라 지금 막연하게 계획하는 것과 그게 현실이 되는 건 하늘과 땅 차이일 것 같아요. 나의 이름으로, 가족을 돌보고 나를 돌보며 읽고 쓰며, 나의 삶을 살 계획을 작가님처럼 잘 세워야겠어요.
<작가의 답글>
말씀처럼 막연한 계획과 현실의 간극은 분명 크지요. 하지만 준비하는 그 시간 자체가 이미 새로운 삶으로 가는 가장 단단한 디딤돌이 됩니다. 저 역시 두려움 속에서 한 걸음씩 나아갔습니다. 완벽한 준비는 없지만, 시작한 사람에게만 길은 열리더군요. 분명, 자유롭고 단단한 후반전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저 역시 그 길을 먼저 걸으며 조용히 응원하겠습니다.
<독자에게 전하는 메시지>
누구나 두 번째 삶 앞에서는 두렵다. 하지만 두려움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다. 우리는 늘 누군가의 이름으로 살아왔다. 회사원으로, 부모로, 배우자로. 이제 그 이름 뒤에 숨겨졌던 ‘나’를 다시 불러야 할 때다. 이 세상에 같은 이름으로 두 번 피는 인생은 없다. 그러니 이제는, 당신의 이름으로 살아가라. 그 이름이 곧, 당신의 인생 두 번째 챕터의 제목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