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의 지 (無知의 知)'
단연코 또래 중에 '너 자신을 알라'라는 유명한 격언을 모르는 이는 한 명도 없을 것이라 확언한다. 하지만 그래서 그 중 몇이나 본인을 알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의 출처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의견이 분분하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서로 원조집이라 주장하는 음식점들과 같이) 출처와는 별개로 참 대단한 문장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언젠가 '시간이 없어 길게 씁니다.'라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 관점에서 봤을 때 이 문장은 한 사람이 평생을 들여 썼다 해도 그 값어치가 충분하다.
앞서 말했듯이 이 문장에 대한 출처와 해석은 수없이 다양하므로 그저 내가 이해하고 써먹고 있는 바를 말하자면 '무지의 지(無知의 知)', 다시 말해 '모름을 앎'에 대한 해석이다.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인지'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디까지 인지하고 있느냐'는 '어디까지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가지고 있느냐'와 같은 말로 아는 만큼 보이기에 넓은 시야를 보유함은 일반적으로 좋다. 본인이 무지함을 안다는 것은 사고의 범위가 넓음을 뜻한다.
얼마 전, 유튜브 '서울대 까는 남자, 서까남 TV'에서 영상 한 편을 보며 내가 얼마나 모르는지 또 한 번 깨닫게 된 일을 예시로 들고자 한다. 채널의 주인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였는데, 재학 당시 과외를 통해 재벌가의 자제들과 연이 닿았다고 말한다. 소위 우리가 말하는 일반적이지 않는 삶을 사는 그들의 사고방식을 묘사하길 그들은 우리와 같은 일반적인 삶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일반적이라 생각하는 삶 또한 일반적인 삶이 아님을 우리도 재벌들과 마찬가지로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덧붙인다. 왜냐하면 그들이 면허 취득과 동시에 슈퍼카를 한 대씩 소유하는 것처럼 우리 또한 일단 이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는 권리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에어컨이 나오는 시원한 집에서 포근한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는 삶은 그리 당연한 삶이 아니다. 현재 유튜브의 활성 사용자 수는 무려 20억 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반대로 말하면 무려 50억 명이나 유튜브를 이용하지 않고 있다. 전 세계 에어컨 보급률 또한 미국과 한국이 90%, 중국은 60%, 멕시코는 16%, 인도는 7%에 그친다. 구구절절 설명했으나, 결론은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 생각보다 모르고 있음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상상이상으로 모름 투성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의 환경, 나의 직업, 나의 관계 그리고 '나, 그 자체'조차도 모른 채로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본인이 무지함을 아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 '인지하고 있음의 증명'이라고 짧게 앞단에서 설명하였는데, 정확히는 '메타인지를 하고 있음의 증명'이기 때문이다.
*메타인지(Metacognition)
: 자신의 인지 과정에 대하여 한 차원 높은 시각에서 관찰ㆍ발견ㆍ통제하는 정신 작용
메타인지란 우리가 하고 있는 일반적인 인지 과정보다 한 차원 더 높은 시각에서 인지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인식에 대한 인식'이다. 메타인지는 보다 객관적인 판단을 가능하게 하고, 쉽게 좌절하지 않으며, 높은 학습능력을 수반한다. 이 원리를 깨닫고 개인적으로 건강과 일의 능률이 모두 크게 나아짐을 체감했다.
가장 흔한 상황을 예로 들면 좋을 것 같아, 친구와 연애 상담 중이라 가정해보자. 친구가 애인과 어떠한 사유로 작은 갈등이 반복되어 이를 해결하고자 상담을 요청해왔다. 여기서 메타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직관적으로 싸운 이유를 분석하고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해결 방안에 대해 제시할 것이다. 그리고 친구에게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 생각하고 만족스러운 귀갓길에 오른다. 이러한 상황이 두세번 반복되었을 때, 본인은 자칭 '연애박사'가 되어있게 된다. 메타인지 능력이 높은 사람 또한 마찬가지로 갈등의 원인에 대해 분석하고 본인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 조언을 건낸다. 다만, 딱 하나 다른 점은 본인이 모르고 있음을 전제로 한다. '나도 잘은 모르지만, 내 생각을 말하자면 이런 이유로 싸운 거 같은데, 나라면 이렇게 해결할 것 같아.' 짧은 한 구절의 말이지만 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다. 어디까지나 나의 지식과 경험에서 하는 말이며 이는 주관적인 의견으로, 객관적인 정답이 아님을 말한다. 단순히 현재 일어난 문제와 그에 대한 해결에 대한 것에서 한 차원 더 나아가 우리가 모르는 다른 이유들이 있을 수 있음을 가정한다. 메타인지가 가능한 사람은 가능성을 열어두기 때문에 생산적인 토론이 가능하다. '너는 이렇게 해야 돼.'라고 나름의 정답만을 제시하는 친구에게는 '하지만 내 생각은 이런데?'라는 의견이 받아드려지지 않을 확률이 높다. 문제는 이렇게 확신에 둘러쌓인 일차원적인 인지 구조, 즉 '모름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은 악순환을 반복해서 초래한다는 것이다. 모름을 모른다는 것은 아는 것이 전부인 줄 안다는 것이고, 이는 객관적인 평가를 못하게 하며 시간이 갈수록 본인의 시야와 관점을 좁혀지게 만든다. 좁혀진 시야는 다시금 나의 인지 범위를 한정짓게 만들어 악순환의 고리를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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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랑은 말이 안통해."
어느 분야든 내가 그 부분에 있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구나 본인이 잘 모르는 분야에 있어서는 겸손해지기 마련이다. 언제나 실수는 겸손하지 못할 때 일어난다.
네가 모르있다는 것을 알라.
나의 모습을 3인칭으로 바라보는 메타인지를 가능케 하는 첫번째 방법은 '내가 무지함을 아는 것'이다.
위 글은 처음이라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운 현생 1회 차 한 20대 청년이 기록하는 일, 사람, 환경 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유용한 정보가 또 다른 이에게는 공감이 또 다른 이에게는 지난날에 대한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청춘기록 #청춘을글이다 #日記